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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게임 속에 숨은 철학,사상을 배워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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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지금껏 많은 게임을 해왔다. 별다른 의미 없이 단순히 때려부수는 게임부터 이런 저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게임, 뜨거운 감동을 남기는 게임 등등. 예전에는 미처 몰랐지만 요즘 게임속에는 심오한 철학이 들어있는 경우를 종종 발견하곤 한다.

옛날 게임에는 스토리도 빈약하고 어떠한 사상이나 철학이 깃든 다는 건 무리였지만 요즈음의 현실은 다르다. 하지만 아는 만큼 보이는 법. 학교에서 머리 아프게 외운 사상과 철학, 이론을 친절한 시모나미가 게임을 통해 재미있게 알려드리도록 하겠다. 물론 정확한 철학적 개념보다는 어디까지나 흥미위주로 서술하였음을 양지해주시고 봐주셨으면 한다.

낭만주의

낭만주의란 매우 간단히 요약하면 고전주의의 이성강조에 의해 억눌린 감성과 몸이 다시 부활하는 사조이다. 고전주의는 이성적, 실재하는 것, 눈으로 보이는 것, 합리적인 것만을 추구하다 보니 인간의 영감이나 낭만, 환타지 등은 저 멀리 날려버린 것이다. 여기에 반발해서 나온 것이 낭만주의인데 판타지나 상상력을 예찬했다. 몸과 feel을 매우 중요시한 낭만주의에 걸맞는 게임은 무엇일까? 바로 이런 것들이다. 중국산 온라인 게임 ‘완미세계’나 스퀘어의 ‘파이널판타지’ 시리즈 등.

‘완미세계’의 레벨1부터 자유비행이란 컨셉과 호랑이, 여우로 변신하는 판타지적 요소는 인간의 자유로운 상상과 낭만을 잘 대변해준다고 할 수 있다.

‘파이널판타지’ 시리즈에서는 마법이나 엘프 같이 상상적 존재들이 너무도 자연스럽다. 하나의 독자적인 세계를 이루고 있는 게임 속 세계는 이성에 억눌린 사람들에겐 또 하나의 휴식처를 제공하며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펴게 한다.

▲ 완미세계’ 현실에서 불가능한 것을 게임을 통해 대신 펼쳐볼 수 있는 낭만주의적 게임

▲ 이런 미인의 존재는 현대인의 아픈 시신경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며 삶의 활력을 더해주기도 한다

리얼리즘

리얼리즘이란 사실주의라고도 불리며 사물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려는 사조이다. 즉 과학과 이성을 중시하며 낭만주의와는 대치되는 사조라고 보면 쉽겠다.

이 리얼리즘은 주로 사실적인 모습을 추구하는 스포츠게임과 어울린다. ‘위닝일레븐’, ‘피파’를 필두로 ‘MLB', 'NBA', 'NHL' 같은 게임 등은 시리즈를 거듭할 수록 실제 스포츠와 유사하게 진행되고 있으며 이전 게임에서는 반영되지 않던 실제 스포츠의 요소들(헐리우드 액션, 어드밴티지 판정, 오심 등)이 점점 게임 상에서 구현되기 시작하는 등 더 사실적인 모습이 실현되고 있다. 리얼리즘 계열의 게임은 유저들에게 가장 받아들이기 쉬운 사조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더욱 심화발전될 것으로 예상한다.

▲ 베컴 사실적인 모델링은 리얼리즘 게임의 필수요소라고 할 수 있다.

▲ 유니폼 당기기 조금만 지나면 침뱉기와 욕설, 꼬집기 같은 요소 등장도 기대해볼만 하겠다.

▲ 동팡저우, 이 분의 능력치엔 리얼리즘보다는 낭만주의가 어울릴 듯 하다.

실증주의

실증주의란 형이상학적 사변을 배격하고 사실 그 자체에 대한 과학적 탐구를 강조하는 사조이다. 이런 어려운 말은 말고 간단한 말로 표현하면 눈으로 보고 확인하기 전에는 믿지 않겠다는 뜻이다. 주변에서 무수한 억측과 각종 설이 난무하더라도 믿지 않고 오직 내 눈으로 확인한 것만 사실로 받아들이는 이러한 사조에 가장 어울리는 게임은 무엇일까?

‘화투’와 ‘카드놀이’가 가장 잘 어울리지 않을까? 상대의 패에 대한 예측과 설정이 게이머의 머릿속에 서고 그에 따른 대응방법(죽기, 연속고, 레이스, 콜, 따당)이 준비되지만 정작 상대의 패를 확인해야 모든 것이 명확해지는 이 게임의 룰은 실증주의와 가장 잘 어울린다. 상대가 쥐고 있는 패가 무엇이다라는 예상을 하지만 눈으로 보기 전까지는 믿을 수 없으며 카드를 뒤집어 보여야만 모든게 명확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형이상학적 사변(각종 예측과 분석)을 배격하고 사실 그 자체에 대한 과학적 탐구(상대가 가진 그대로의 패)를 강조하는 사조인 실증주의에 가장 잘 어울린다고 볼 수 있겠다.

▲ 상대가 혹시 탄을 돌리지 않을까 하는 우려는 일단 접어두고 상대가 내는 패를 유심히 지켜보자.

 

계몽사상

계몽이란, 아직 미자각상태(未自覺狀態)에서 잠들고 있는 인간에게 이성(理性)의 빛을 던져주고, 편견이나 미망(迷妄)에서 빠져나오게 한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즉 지식이 모자란 인간에게 여러 가지 지식을 알려주어서 몽매의 상태를 깨고 나온다는 뜻이다. 계몽사상의 의미가 반드시 여기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보다 깊고도 넓지만 게임 내에서 보이는 계몽사상은 이 정도로 한정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이러한 계몽주의가 두드러진 게임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에듀테인먼트를 표방한 일련의 학습용 소프트들이 그 예가 될 수 있겠다. PSP의 ‘토크맨’, ‘Win-TOEIC’, ‘Win-JPT' NDS의 ‘뇌단련’, ‘각종 트레이닝’, ‘마법천자문’ 등이 대표적이다. 게임이 가지는 유희적 성격을 통해서 재미있게 지식을 늘리고 이성의 폭을 넓혀준다는 점에서 위에 언급한 게임들은 계몽사상을 내포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게임을 즐기다보면 자신의 무식을 자각하게 되고 점차 이러한 것도 모르는 자신에 대해 분노하게 되며 분노플레이 내지 근성플레이를 하다보면 어느덧 조금씩 실력이 늘어가는 자신을 발견하고 흐뭇하게 여기게 된다. 그러는 사이 부지불식 계몽의 효과는 조금씩 자신을 잠식한다. 이야말로 게임업계의 브나로드 운동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 근성플레이의 결과는 아름답다

▲ 어린이들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마법천자문을 게임으로 즐겨보자

초현실주의

초현실주의는 이성(理性)의 지배를 받지 않는 공상 ·환상의 세계를 중요시한다. 또한 무의식의 세계 내지는 꿈의 세계의 표현을 지향하는 20세기의 문학·예술사조라고 한다. 얼핏 보아서는 사실주의와 대척점으로 서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즉, 초현실주의는 이성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일을 다루는 일이 많지만 반드시 현실과 동떨어져있지는 않다는 말이다.

여기에 비춰볼 때 초현실주의를 가장 잘 반영한 게임은 ‘진삼국무쌍’ 시리즈가 아닌가 싶다. ‘진삼국무쌍’은 현실적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내용의 게임이다. 무장 한명이 전장을 단독으로 누비며 단칼에 적들을 베고 일기당천을 몸소 실천하는 내용은 초현실 그 자체이다. 무장들은 만두와 고기, 술항아리만 있으면  지치지도 않고 수만번씩 칼을 휘두르며 적들을 무찌른다. 거기다 사용하는 기술들 역시 현실적이라고 보기 어려우며 말도 안되게 강한 캐릭터는 영웅에 대한 공상과 환상이 반영된 초현실주의적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거기다 사실주의와 완전히 대척되지 않는 초현실주의의 특성을 감안하여 보면 ‘진삼국무쌍’ 역시 역사적 사실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점, 어느 정도 역사적 사실 내에서 마음껏 상상력과 공상을 발휘하고 있다는 점에서 ‘진삼국무쌍’은 초현실주의가 잘 반영된 게임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자매품 ‘전국무쌍’에서 더욱 심화발전되기도 하였다.

▲ 어떤 인간이 이렇게 싸울 수 있는가

▲ 진삼 5 물위를 뛰는 남자 등장

음모이론

음모이론이란 객관적으로 눈앞의 진실이라고 나타나는 것 뒤편에 가려져 있는 “진실한 진실”이 있을 거라고 믿는 사람들이 만들어나가는 일종의 가설이다. 반드시 이럴 것이라는 보장은 없지만 음모를 꾸미는 자가 배후에서 진실을 은폐하고 모든 일을 조종하고 있다는 이론이다. 예를 들면 박정희 시해사건, 외계인의 존재, 아폴로 달착륙, 케네디 대통령 암살, 에이즈바이러스 등 그 소재는 다양하다. 주로 단순하게만 볼 수 없는 거대 사건 뒤에 이러한 음모이론이 따라붙으며 대중의 관심을 증폭한다. 이들 음모이론의 특징은 상당히 인과관계와 논리등이 치밀하며 사건의 최대수혜자가 받는 이익 등이 자세하게 명시되어 있어 단지 가설로만 치부하기엔 뭔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중문화와 연계하기 매우 좋으며 영화로도 자주 다뤄질만큼 친숙하기도 하다.

이러한 음모이론을 게임업계에도 끌어들인 작품이 있으니 그 이름 바로 ‘메탈기어솔리드(이하 MGS로 칭함)’ 시리즈이다. ‘MGS’는 어둠속에서 세계를 지배하는 수수께끼의 거대집단(MGS2의 패트리어트)과 미국정부의 배후조작(MGS3)은 음모이론을 등장시켰는데 이는 조금이라도 음모이론에 관심이 있는 대중의 이목을 집중시키는데 성공했으며 개연성이 있는 스토리 전개는 게이머에게 “저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품게 만들며 ‘저너머에 있는 진실’을 갈구하게 만들었다. 결국 이는 'MGS4'에서 밝혀질 것처럼 보이는 ‘패트리어트’의 정체와 진실에 대한 관심을 더욱 증폭시킬 것으로 보인다.

▲ mgs3 음모에 희생된 군인들

▲ mgs4 과연 음모의 진실은 밝혀질 것인가

마키아벨리즘

마키아벨리즘은 쉽게 말해 목적을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방법을 일컫는 말이다. 마키아벨리의 저서인 <군주론>에서 비롯된 용어로 군주는 국가의 존립을 위해서 어떠한 수단이나 방법을 가리지 말아야 한다고 언급한 것에서 유래된 용어인데 가장 큰 포인트는 그 목적이 선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만술이나 위선된 수단이 정당화 될 수 있다. 특히 전쟁에서는 더욱 그렇다. 명분과 도덕에 기반한 과정은 중요치 않다. 어떻게든 이기는 것 그 자체가 가장 도덕적이라는 관점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마키아벨리즘과 가장 부합하는 게임이 무엇이겠는가?

두말 할 것도 없이 ‘스타크래프트’가 떠오르지 않는가? 스타크래프트는 종족의 생존이라는 절대선(善)을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싸운다. 전쟁의 승리라는 최종 목표를 위하여 병사 개개인의 생명을 초개같이 내던지는데 게이머들은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 없다. 심지어 모자라는 서플라이를 채우기 위해 자신의 병사들을 일부러 죽이기도 하며 양동작전을 위해서 드랍십에 실은 병사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퇴각도 구조도 없이 죽을 때까지 싸우게도 한다. 한술 더 떠서 저그엔 스컬지라는 자살공격 유닛까지 있다. 배틀넷에서 동맹군을 배신하고 적들의 편에 붙기도 하며 아군이 있는 곳에 핵을 쏘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맵핵을 켜고 경기하는 게이머들도 허다하다. 이들에게는 오직 승리만이 중요시될 뿐 그 과정과 수단에서의 비도덕은 승리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고 있는 것이다. 실로 마키아벨리즘의 세례를 받은 게임이 아닐 수 없다.

▲ 마린은 하나의 소모품으로 전락하고 만다

▲ 승리를 위해서는 아군의 희생은 어쩔 수 없는 것인가

지금까지 게임 속에 녹아들어 있는 사상이나 철학, 이론 등을 간소하게 훑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반드시 본래의 이론의 취지와 딱 부합하는 내용은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반영이 된 게임을 대상으로 하였기에 큰 무리는 없을 것으로 본다. 여러분이 즐겨보신 게임 속에 숨은 철학이나 이론 등을 찾아서 대입시켜보는 것도 괜찮은 지적유희가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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