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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문학관] 시모나미의 `2007, 운수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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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메카는 특집으로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을 게임과 연관시켜 패러디 해 보았습니다. 1924년 월간 개벽에 발표된 '운수 좋은 날'은 한국 현대문학의 사실주의를 대표하는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라고 교과서에 써 있네요). 주옥 같은 한국 현대 소설이 게임과 만나 어떤 하모니를 이루었는지 함께 보시죠.

-게임문학관이 TV문학관 발끝이라도 따라가길 바라는 게임메카 편집진-        

새침하게 흐린 품이 눈이 올 듯하더니 눈은 아니 오고, 얼다가 만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이었다.

이 날이야말로 용산 전자상가 안에서 용팔이 노릇을 하는 김 사장에게는 오래간만에도 닥친 운수 좋은 날이었다. 아들 선물 사러왔다는 부잣집 마나님에게 바가지를 왕창 씌운 것을 비롯으로, 행여나 손님이 있을까 하고 매장에서 어정어정하며, 들어오는 사람 하나하나에게 거의 비는 듯한 눈길을 보내고 있다가, 마침내 봉인 듯한 양복쟁이의 지갑을 입심으로 끌어냈다.

첫째 번에 삼십 만원, 둘째 번에 오십 만원―아침 댓바람에 그리 흔치 않은 일이었다. 그야말로 재수가 옴 붙어서, 근 열흘 동안 돈 구경도 못한 김 사장은 십 만원짜리 수표 석 장 또는 다섯 장이 '파르락' 하고 손바닥에 떨어질 때, 거의 눈물을 흘릴 만큼 기뻤었다. 더구나, 이 날 이 때에 이 팔십 만원이라는 돈이 그에게 얼마나 유용한지 몰랐다. 컬컬한 목에 소주 한 잔도 적실 수 있거니와, 그보다도 PS3를 원하는 아내에게 PS3 한 대도 사다 줄 수 있음이다.

 

그의 아내가 게임으로 일관하기는 벌써 달포가 넘었다. 주야장천 복사 CD만 구워대는 형편이니, 물론 정품은 써 본 일이 없다. 구태여 쓰려면 못 쓸 바도 아니로되, 그는 정품이란 놈에게 돈을 주어 보내면 재미를 붙여서 자꾸 온다는 자기의 신조(信條)에 어디까지 충실하였다. 따라서, 남들에게 보인 적이 없으니 무슨 꼬장 인지는 알 수 없으되, 반듯이 누워 가지고, 일어나기는커녕 세로에 모로도 못 눕는 걸 보면 중증은 중증인 듯.

꼬장이 이토록 심해지기는 열흘 전에 PS2 하드로더가 뻑이 난 때문이다. 그 때도 김 사장이 오래간만에 돈을 얻어서 위닝 10과 '스맥다운 대 로우 2007'을 가져다 주었더니, 김 첨지의 말에 의지하면, 그 오라질 년이 천방지축(千方地軸)으로 넣고 돌렸다. 마음은 급하고, 전원은 채 들어오지도 않은 것을, 그 오라질 년이 트레이는 고만두고 손으로 빼내서 누가 빼앗을 듯이 처박질하더니만, 그 날 저녁부터 트레이가 고장났다, 하드가 뻑이 갔다고 눈을 흡뜨고 지랄병을 하였다. 그 때, 김 사장은 열화와 같이 성을 내며,

"에이, 오라질 년, 복돌이는 할 수가 없어. 못 틀어 병, 틀어서 병, 어쩌란 말이야! 왜 눈을 바루 뜨지 못해!"

하고, 김 사장은 마누라의 뺨을 한 번 후려갈겼다. 홉뜬 눈은 조금 바루어졌건만 이슬이 맺히었다. 김 사장은 눈시울도 뜨근뜨근한 듯하였다.

이 마누라가 그러고도 게임하는 데는 물리지 않았다. 사흘 전부터 PS3가 가지고 싶다고 남편을 졸랐다.

"이런 오라질 년! 위닝도 못 하는 년이 PS3는, 또 처박고 지랄을 하게."

라고 야단을 쳐 보았건만, 못 사 주는 마음이 시원치는 않았다.

인제 PS3를 사 줄 수도 있다. 꼬장부리는 아내에게 PS2를 고쳐줄 수도 있다.――팔십 만원을 손에 쥔 김 첨지의 마음은 푼푼하였다.

그러나 그의 행운은 그걸로 그치지 않았다. 짬뽕을 시켜먹고 그릇을 내어놓는 김 사장의 뒤에서 '아저씨!' 하고 부르는 소리가 난다. 자기를 불러 멈춘 사람이 오타쿠인 줄 김 사장은 한 번 보고 짐작할 수 있었다. 그 오타쿠는 다짜고짜로,

"Xbox360 얼마요?"

라고 물었다. 아마도 그 'DOAX2'를 하기 위함이리라. 오늘 사기로 작정은 하였건만, 용산은 넓고 해서 어찌할 줄 모르다가, 마침 김 사장을 보고 뛰어나왔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왜 피규어 가방을 들지도 못해서 질질 끌고, 김 사장을 뒤쫓아 나왔으랴.

"Xbox360 프리미엄 패키지 말씀입니까?"

하고, 김 사장은 잠깐 주저하였다. 그는 매장에 재고도 없는데 그 먼 창고까지 가기가 싫었음일까? 처음 것, 둘째 것으로 고만 만족하였음일까? 아니다, 결코 아니다. 이상하게도 꼬리를 맞물고 덤비는 이 행운 앞에 조금 겁이 났음이다. 그러고 집을 나올 제 아내의 부탁이 마음에 켕기었다. ―― 마누라는 그 퉁퉁 부은 얼굴에 유일의 생물 같은 유달리 크고 움푹한 눈에 애걸하는 빛을 띠며,

"오늘은 나가지 말아요. 제발 PS2좀 고쳐줘요. 내가 이렇게 사정하는데……"

라고 모기 소리같이 중얼거리고 숨을 그르렁그르렁하였다. 그 때에 김 사장은 대수롭지 않은 듯이,

"아따, 젠장맞을 년, 별 빌어먹을 소리를 다 하네. 맞붙들고 앉았으면 누가 먹여 살릴 줄 알아?"

하고 훌쩍 뛰어나오려니까, 마누라는 붙잡을 듯이 팔을 내저으며,

"나가지 말라도 그래. 그러면 일찍이 들어와요."

하고 목 메인 소리가 뒤를 따랐다.

 

"그래 Xbox360 프리미엄 패키지가 얼마란 말이오?"

하고 오타쿠는 초조한 듯이 김사장에게 묻는다.

김 사장은 오타쿠의 얼굴을 바라보며 혼잣말같이,

"코어 시스템이 24만원이고, 그 다음에는 프리미엄 패키지던가?"

라고 중얼거린다.

"43만 5천원만 줍시요."

이 말이 저도 모를 사이에 불쑥 김 첨지의 입에서 떨어졌다. 제 입으로 부르고도 스스로 그 엄청난 바가지에 놀래었다. 한꺼번에 이런 바가지를 시도라도 해본 지가 그 얼마만인가! 그러자, 그 돈 벌 용기가 마누라에 대한 염려를 사르고 말았다. 설마 오늘 내로 어떠랴 싶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제 일, 제 이의 행운을 곱친 것 보담도 오히려 갑절이 많은 이 행운을 놓칠 수 없다 하였다.

 ▲ 프리미언 패키지를 팔면 아내에게 플레이스테이션3를 사다 줄 수 있다

"43만 5천원은 너무 과한데."

이런 말을 하며 오타쿠는 고개를 기웃하였다.

"아니올시다. 성능으로 치면 프리미엄패키지가 코어시스템보다 두 세배는 좋답니다. 또, 번들 패키지(게임타이틀이 한 개 들어있는 콘솔패키지)로 드릴 테니 좀 더 주셔야지요."

하고 빙글빙글 웃는 김 사장의 얼굴에는 숨길 수 없는 기쁨이 넘쳐 흘렀다.

"그러면, 달라는 대로 줄 터이니 빨리 줘요."

관대한 어린 손님은 이런 말을 남기고, 총총히 돈을 꺼낸다.

김 사장은 마침 매장에 재고가 없다며 창고로 가서 가져 올테니 조금만 기다리라 하고 창고로 달음질 친다. 창고로 나선 김 사장의 다리는 이상하게 거뿐하였다. 달음질을 한다느니 보다 거의 나는 듯하였다. 다리도 어떻게 속히 움직이는지, 달린다느니 보다 마치 얼음을 지쳐 나가는 스케이트 모양으로 미끄러져 가는 듯하였다. 비가 내려 미끄럽기도 하였지만.

프리미엄 패키지+DOAX2까지 꺼내다 주고, 그 깜짝 놀란 43만 5천원을 정말 제 손에 쥐매, 제 말마따나 코어시스템보다 2배나 좋은 것을 팔았다는 생각은 아니 하고, 거저나 얻은 듯이 고마웠다. 졸부나 된 듯이 기뻤다. 제 자식 뻘밖에 안 되는 어린 손님에게 몇 번 허리를 굽히며,

"안녕히 가세요."

라고 깍듯이 재우쳤다.

김 사장은 취중에도 PS3를 사 가지고 집에 다다랐다. 집이라 해도 물론 셋집이요, 또 집 전체를 세든 게 아니라 안과 뚝 떨어진 행랑방 한 칸을 빌어 든 것인데, 보증금 500만원에 월세를 30만원 내는 터이다. 만일 김 사장이가 주기를 띠지 않았던들, 한 발을 대문 안에 들여놓았을 때, 그 곳을 지배하는 무시무시한 정적(靜寂)―폭풍우가 지나간 뒤의 바다 같은 정적에 다리가 떨리었으리라. 탁탁하는 버튼 소리도 들을 수 없다. 위잉하는 팬 돌아가는 소리조차 들을 수 없다. 다만, 이 무덤 같은 침묵을 깨뜨리는―깨뜨린다느니 보다 한층 더 침묵을 깊게 하고 불길하게 하는, '빡빡' 소리는 하드에 뻑이 날 따름이요, '띠링' 하고 로딩으로 넘어가는 소리가 없으니, 씨디가 헛돈다는 것도 짐작할는지 모르리라.

혹은, 김 사장도 이 불길한 침묵을 짐작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며, 대문에 들어서자마자 전에 없이 '이 난장맞을 년, 남편이 들어오는데 나와 보지도 안 해, 이 오라질 년.' 이라고 고함을 친 게 수상하다. 이 고함이야말로 제 몸을 엄습해 오는 무시무시함을 쫓아 버리려는 허장성세(虛張聲勢)인 까닭이다.

하여간, 김 사장은 방문을 왈칵 열었다. 구역을 나게 하는 기계냄새, 빨지 않은 옷가지에서 나는 땀내와 쉰내, 가지각색 때가 내려앉은 방안의 먼지내가 김 사장의 코를 찔렀다.

방 안에 들어서며 PS3를 한 구석에 놓을 사이도 없이, 주정꾼은 목청을 있는 대로 다 내어 호통을 쳤다.

"이런 오라질 년, 주야 장천(晝夜長川) 꼬장만 부리면 제일이야? 남편이 와도 일어나지를 못해?"

라는 소리와 함께 발길로 누운 이의 다리를 몹시 찼다. 그러나 발길에 채이는 건 사람의 살이 아니고 나무 등걸과 같은 느낌이 있었다. 이 때에, '빡빡' 소리가 '타닥'소리로 변하였다. 플스2에서 불꽃이 튄다. 불꽃이 튄대도 멀리 튀지는 않고 튄다는 것만 알려줄 뿐이라, '타닥' 소리도 겉에서 나는 게 아니고 마치 렌즈 속에서 나는 듯하였다. 돌다가 돌다가 렌즈도 닳았고, 또 씨디를 돌릴 기운조차 시진한 것 같다.

발로 차도 그 보람이 없는 걸 보자, 남편은 아내의 머리맡으로 달려들어, 그야말로 까치집 같은 아내의 머리를 들어 흔들며,

"이년아, 말을 해, 말을! 입이 붙었어, 이 오라질 년!"

"……."

"으응, 이것 봐, 아무 말이 없네."

"……."

"이년아, 죽었단 말이냐. 왜 말이 없어?

"……."

"으응, 또 대답이 없네. 정말 죽었나 버이."

이러다가, 바닥에 놓여있는 ‘메탈기어솔리드’ 타이틀을 보자마자,

"이 타이틀! 이 타이틀! 왜 깨지는 못하고 헛돌기만 하느냐, 응?"

하는 말끝엔 목이 메었다. 그러자, 산 사람의 눈에서 떨어진 닭의 똥 같은 눈물이 죽은 이의 뻣뻣한 얼굴을 어롱어롱 적신다. 문득 김 사장은 미친 듯이 제 얼굴을 죽은 이의 얼굴에 한데 비비대며 중얼거렸다.

"PS3를 사다 놓았는데 왜 하지를 못하니, 왜 하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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