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사 > 전체

[흥미기획] 한국형 MMORPG는 진짜 존재하는가?

/ 2

 

우리나라 온라인 게임의 초창기 <바람의 나라>, <리니지>, <뮤 온라인>으로부터 시작된 한국 MMORPG들은 10여년의 세월 동안 해외 RPG의 거센 도전에도 꿋꿋이 온라인 게임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이러한 초창기 게임들과 현재 인기를 끌고 있는 게임들을 비교해 보면 대부분 초기 RPG와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는데, 우리는 바로 이 초창기 MMORPG들이 확립한 틀을 가리켜 ‘한국형 MMORPG’라 부른다.

보통 ‘한국형’이란 말은 ‘우리 실정에 맞는’, ‘우리 정서에 맞는’이라는 뜻이 강하다. 하지만 과연 지금 한국형 MMORPG라고 불리는 게임들이 진정 우리 게이머들의 실정과 정서에 맞는 게임인가에 대해서는 물음표를 달 수밖에 없다.

네트파워에서는 이러한 고민을 바탕으로 현재 우리나라에서 인기리에 서비스되고 있는 국산 MMORPG들의 한계와 문제점들을 파악해보는 기사를 마련했다. 이는 진정한 ‘한국형 MMORPG’가 탄생할 때까지 우리 모두가 고민해야 할 숙제인 것이다.

글: ‘진정한 한국형 MMORPG를 위한 연구소’
소장 김용식(vader@jeumedia.com)
수석 연구원 이운진(danmu@jeumedia.com)

한국형 MMORPG, 어떻게 발전되어왔나

한국형 MMORPG의 한계와 문제점을 고민하고 진단하기 위해서는 우선 한국형 MMORPG는 어떻게 시작됐고 발전해 지금까지 이어져왔는지 전체적으로 조명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여기서는 초창기 국내 MMORPG의 대표격인 <바람의 나라>, <리니지>, <뮤 온라인(이하 뮤)>를 중심으로 알아보자.

과거 90년대 중반 케텔(KETEL), 피씨서브(PC-SERVE) 등을 통한 종량제 통신 서비스에서 최초로 등장한 온라인 게임은 흔히 우리가 ‘머드게임(MUD, Multi-User Dungeon)’이라고 부르는 것들로, 대표적인 것으로 <주라기 공원>이 있다. 이들 게임은 모두 텍스트 창에 명령어를 입력해 게임을 실행하는 형태로, 전투와 퀘스트 등 모든 내용이 텍스트로 표시됐다.

텍스트 머드 게임이 생겨난 후 최초로 화면에 ‘그림’이 등장한 RPG는 바로 1996년 4월 정식 서비스에 들어간 <바람의 나라>. 만화가 김진의 ‘바람의 나라’가 원작인 <바람의 나라>가 본격적인 한국형 MMORPG의 시작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전사, 주술사, 도적의 세 가지 클래스에 레벨 제한 140을 가지고 출발한 <바람의 나라>는 2000년 공성전과 문파 시스템 업데이트 및 조합 시스템 업데이트, 2002년까지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2, 3, 4차 승급 업데이트 등 수많은 패치를 거듭한 끝에 현재의 모습을 갖추고 있다.


▲ 부분유료화로 전환한 후에도 변함없는 인기를 끌고 있는 바람의 나라

<리니지>는 1998년 9월 상용 서비스를 시작했는데, 처음에는 군주, 기사, 요정의 세 클래스, 마을과 사냥터는 말하는 섬 단 하나로 시작했다. <리니지>는 정기적으로 ‘에피소드’ 형식으로 업데이트하는 ‘규칙’을 만들었는데, 이에 따라 마법사, 신규 영지, 공성전 등이 차례차례 추가되면서 2006년 지금도 동시접속자 5만명 이상을 유지하는 ‘초대박’ 게임이 됐다.


▲ <리니지> 등장한지 8년이 지난 지금도 대한민국
'대표 RPG'로 얘기 되고 있다.

<뮤>는 이들 두 게임보다 다소 늦은 2001년 11월 정식 서비스를 시작했다. 당시 ‘최초의 3D MMORPG’라는 차별화 요소가 인기몰이의 원인이었으며, 시작 마을과 사냥터가 묶인 형태의 맵인 로랜시아, 노리아와 함께 초?중반 레벨 전용 사냥터인 데비아스, 던전, 로스트 타워 등으로 정식 서비스에 돌입한 <뮤>는 이후 맵 단위 업데이트를 거듭하면서 성장을 거듭했다. 작년 3월의 공성전 업데이트, 작년 8월 스토리를 대폭 강화한 시즌 1 업데이트를 끝으로 아직까지 별다른 업데이트 계획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 한국형 MMORPG는 최고의 그래픽을 가진다는
선입견을 갖게 한 최초의 게임 <뮤>

한국형 MMORPG, 고민은 태생적인 한계부터 시작된다

이 세 개의 게임들은 모두 한국형 MMORPG의 형성을 주도한 게임으로, 이들의 사례를 반드시 언급해야 할 필요가 있다. 왜냐 하면 이들의 뒤를 잇는 새로운 게임들은 기존의 게임이 가지고 있는 한계와 문제점을 타파하고 개선해 발전시켜야 할 의무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불행하게도 지금까지는 초기 RPG들이 가지고 있던 태생적인 한계가 무려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고쳐지지 않고 답습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한국형 MMORPG들이 혁신 없이 답습하고 있는 문제점들을 각 항목별로 살펴보기로 한다.

문제 1. ‘RPG 시스템의 기본 = 전부’라는 기존 형태의 반복? 재생산

초기 MMORPG의 구조는 단순하기 그지 없었다. 게임 속의 유일한 안전지대인 마을, 클래스마다 기본적으로 주어지는 장비, 마을 밖의 사냥터가 거의 유일한 시스템. 이는 일반적인 RPG의 시스템 전체와 비교해 보면 거의 기본이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RPG에서 극히 일부를 차지하는 것이다.

▲ 사진의 <뮤>의 마을처럼 초기 대부분의 RPG들은 ‘썰렁함’부터 겪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한국형 MMORPG는 기존의 PC용 싱글 플레이 RPG를 진화시키는 형태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스토리와 퀘스트 부분은 철저하게 배제시켰다. <뮤>의 경우 퀘스트라는 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고, <리니지>도 유명한 만화 ‘리니지’에 등장하는 내용을 바탕으로 만들었지만 게임 속에서 만화와의 연결고리는 전혀 찾을 수 없다.

이렇게 사냥과 레벨업에 필요한 극히 최소한의 요소만 가지고 시작됐기 때문에 RPG의 본질에서 가장 중요한 ‘모험의 요소’가 없었다는 게 한국형 MMORPG의 가장 큰 취약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 게임의 서비스 기한이 계속 늘어나고 게이머들도 지속적으로 레벨업하면서 기본만으로 버텨왔던 게임들도 한계를 느끼게 되고, 여러 차례의 대규모 업데이트를 통해 사냥터와 몬스터, 퀘스트 등을 늘려가는 등 확장하게 되지만 세계관과 스토리 자체가 게임의 시스템 안에 녹아 들어있지 않은 한 곳곳에서 빈틈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나마 <바람의 나라>와 <리니지>가 아직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게이머들이 벌어준 수년 간의 시간 동안 부지런한 업데이트로 전투 이외의 다양한 시스템과 세계관 등을 정립하는데 힘쓴 각고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단히 불행하게도 현재 개발되고 서비스 예정인 수많은 MMORPG들은 이렇게 초기 MMORPG들이 철저하게 겪었던 시행착오를 전혀 배우지 못했다. 아직도 많은 게임들이 마을과 사냥터, 기본 장비만 만들어놓고 게이머들에게 ‘우리 게임 해보세요’라고 소리치고 있다. ‘캐주얼풍의 귀여운 캐릭터’를 부르짖지만 그저 기본 캐릭터에 옷을 입힌 것에 불과하고, 마우스를 클릭할 때 사운드와 그래픽 효과를 강화해 ‘궁극의 타격감’을 부르짖지만 그것은 그저 클릭과 몬스터 타격의 싱크로만 맞춘 것에 불과하다.

▲ 한국형 MMORPG들이 유난히 집착하는 ‘화려한 그래픽’조차 기초적인 시스템을 감추기 위해서라는 음모론(?)이 엿보일 정도

문제 2. 이름만 퀘스트?

MMORPG에서 퀘스트의 목적은 크게 두 가지로, 게이머들로 하여금 퀘스트 수행을 통해 게임의 스토리를 알아가도록 하기 위한 것과, 게임의 시스템을 파악하고 성장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도록 경험치와 아이템을 제공해주는 것에 있다.

하지만 한국형 MMORPG는 전체적으로 두 가지 목적 모두 충족시켜주지 못하고 있다. 첫 번째 퀘스트의 목적인 스토리 퀘스트의 경우 여러 단계에 걸쳐 다양한 NPC를 만나고 아이템을 찾고 퍼즐을 풀고, 때로는 사냥을 통해 진행하는 것이 정석이다. 하지만 퀘스트를 강화하겠다고 청사진을 펼친 여러 국산 RPG에서조차 대부분의 퀘스트가 ‘어디 가서 무엇을 얼마나 잡아서 누구에게 갖다주라’는 사냥 중심의 심부름형 퀘스트가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실정이다.

꽉 짜여진 스토리와 퀘스트에 열광할 수 있는 한국형 MMORPG가 단 한 개도 없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닐까?

두 번째 퀘스트의 목적인 게임 플레이 습득과 레벨업에 도움이 되는 아이템 및 장비의 지원 항목에 대해서도 좋은 점수를 줄 수 없다. 다음에 다루게 되겠지만 기본적으로 현재 레벨에서 가질 수 있는 좋은 아이템은 훨씬 높은 레벨(건드릴 수조차 없는)의 몬스터에게서 떨어지는 ‘공식’을 가지고 있는 한국형 MMORPG에서 퀘스트를 통해 쓸만한 장비를 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돈도 마찬가지. 게임 속의 누구나 사용할 수 있어야 할 부대비용(이동비 및 각종 소모품 가격)의 물가가 터무니없이 높이 책정된 상황에서 퀘스트로 받는 돈은 그야말로 ‘쥐꼬리’일 뿐이다.

문제 3. 성장이 목적이 되어버린 게임, 문제는 ‘부자연스러움’

한국형 MMORPG가 가지는 거대한 문제점 중 또 한가지는 바로 성장에 끝이 없다는 점이다. 여기서 말하는 성장이란 단순히 캐릭터의 레벨이 높아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 머니와 같은 게임 내 재화의 소유, 그리고 레벨만큼이나 중요한 캐릭터의 아이템을 말하는 것이다. 특히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점은 게이머가 소유하는 재화의 변동이다.

일반적으로 온라인 게임에서 게이머가 가지는 재화의 변동은 다음과 같은 곡선을 그려야 옳다.

고레벨이 되면 더욱 좋은 소모품을 필요로 하고 그만큼의 즐거움을 얻을 수 있다. 다양한 소비로 인해 즐거움을 얻을 수 있게 컨텐츠가 마련돼야 하고 그것이 가장 이상적으로 구현된 것이 바로 공성전과 같이 대규모로 재화가 필요한 시스템이다. 그러나 이것은 특수한 경우로, 일반적인 게이머의 재화 흐름은 다음의 그래프를 따르게 될 것이다.

우선 이런 형태의 그래프는 대단히 성실한 게이머의 경우라 할 수 있다. 현재 대부분 한국형 MMORPG의 장비 맞추기라 불리는 시스템에 의해 이러한 곡선을 그리게 되는데, 단검으로 힘들게 사냥하다가 장검으로 바꾸면 사냥이 쉬워지는 것처럼 장비 교환에 따라 재화는 줄고 성장속도는 빨라지는 곡선을 나타낸 것이다. 장비를 교환할 때 축적한 대부분의 재화는 잃게 되는데, 대신 그로 인해 사냥은 훨씬 편해진다.

이렇게 장비의 상향이 계속 이루어지다가 더 이상 장비를 교환할 필요가 없어지고 약한 성능의 물약으로 충분히 사냥이 가능해질 정도가 되면 그때부터는 재화가 계속 쌓인다. 개발사가 제공한 컨텐츠에 매력을 느끼지 않았을 때 발생하는 곡선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게임 캐릭터는 이 시기가 오기 전에 종말을 맞이한다. 바로 한국형 MMORPG의 최대의 문제점인 ‘인챈트’ 시스템으로 말이다.

문제 4. 한국형 인챈트 시스템은 도박이다

‘인챈트’는 게이머가 특별한 아이템이나 시스템을 사용해 기존에 있는 아이템을 강화시키는 것, 그러한 행위를 할 수 있게 해주는 시스템을 말한다. 인챈트 시스템은 어떤 식으로든 재화가 게이머에서 게이머로 옮겨가는 게 아니라 증발하거나 상인 등을 통해 환수되는 시스템이기 문에 인플레이션을 막아주는 지대한 효과가 있다. 그런 연유로 MMORPG에서 인챈트 시스템을 배제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문제는, 취지는 좋지만 인챈트가 가지는 도박성이다. 알다시피 인챈트 시스템은 일정한 단계까지는 인챈트를 안전하게 보장하는 경우가 많다. 인챈트의 대표격인 <리니지>를 예로 들어보자. <리니지>에서는 한 장의 인챈트 주문서로 +1씩 인챈트시킬 수 있으며 특별한 종류의 아이템이 아닌 이상 무기는 +6단계까지, 방어구는 +4단계까지 안전하게 인챈트가 가능하다. 하지만 그 이상 인챈트시키다가 실패하면 해당 무기는 완전히 증발하게 된다. 이러한 인챈트에 의해서 아이템의 가격은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이 매겨진다.

+6검 = 검 + 주문서 6장 값

+6검 2자루 = +7검 (같은 종류일 때)

+7검 2자루 = +8검

+8검 2자루 = +9검

※방어구에도 거의 비슷한 공식이 적용된다

실패해서 날아가는 비용을 포함해 대략 2배로 가격이 책정된다. 실제 거래로 이루어지는 가격은 이렇지만 인챈트를 지르는 입장은 다른데, ‘모 아니면 도’(실제로는 당연히 절반 이하의 확률이다)에 의해 당장 자신의 아이템이 2배의 가치를 가지게 되는 것이다. 이런 기회가 늘 주변에 존재하기 때문에 한국형 인챈트 시스템은 문제가 된다. 최근 논란이 된 <로한>의 ‘바카라’ 시스템이 게이머간의 도박이라 한다면, 단계별 인챈트 시스템은 게임 서버가 딜러가 되는 블랙잭 같은 도박이다. 이런 인챈트 시스템은 10년이 지난 최근의 게임에도 그대로 전해져 내려온다. 왜 국내 MMORPG의 인챈트는 인챈트에 실패한다는 개념으로 도배가 돼있는 것일까? 한계점을 설정하거나 더 특별한 시스템을 갖출 수는 없는가? 한심스러울 따름이다.

▲ <고정관념> 마법 공격력은 인챈트가 안된다는
제약도 일종의 고정관념이다

문제 5. 게이머 주도 구조에 따른 한국형 MMORPG의 문제점

한국형 MMORPG를 논하는데 있어서 게임의 직접 소비자이자 구성원인 게이머를 빼놓고 넘어갈 수는 없다. 한국형 MMORPG에서 게이머는 과연 어떤 역할을 수행해 왔을까?

1. 동반자 구도가 아닌 경쟁체제

원래 온라인 게임에서 타인(다른 게이머)은 동반자 개념이 돼야 옳다. 같은 세계를 살아가는 주변의 게이머는 언제든지 자신의 동료가 될 수 있는 시스템이 되어야 했다. 그러나 좁아터진 사냥터에는 몬스터보다 많은 사람이 바글바글했고, 몬스터의 리젠 시간에 맞춰 게이머는 몰려다녔다. 몬스터는 잡아야 하고 해당 레벨에 잡을 수 있는 몬스터의 종류와 효율이 높은 사냥터는 손에 꼽을 정도인데 사람은 많다. 자연히 주변의 게이머들을 보는 시선이 고울 리가 없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이 계속 반복되면서 게이머는 ‘온라인 게임은 경쟁뿐’이라는 현실을 ‘사실’로 받아들이게 된다. 주변에 있는 다른 게이머는 모두 나의 사냥감을 노리는 경쟁상대라고 여기는 것에서부터 다양한 문제점이 발생해온 것이다.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고레벨의 저레벨 사냥터 독점, 몰이 사냥, 스틸, 먹자 등도 모두 타인을 경쟁 대상으로 보았기 때문에 생겨나는 갈등이다. 이는 상당 부분 개발사의 책임이 있음은 결코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온라인 게임이 생긴지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까지도 이른바 ‘최신’ 온라인 게임들이 이러한 절차를 계속 되풀이하고 있다.

2. 부도덕한 수단에 철퇴를 내리지 않았기에 온라인은 혼돈에 빠졌다

매우 부정적인 시각이지만 한국형 MMORPG의 선두주자라 할 수 있는 <바람의 나라>, <리니지>, <뮤>의 폐해로 지목할 수 있는 또 다른 특징이 있다. 몬스터를 지속적으로 잡으면 자연스레 일정한 양의 부를 얻기보다는 일확천금을 노리는 게 훨씬 이득이 있었다는 점이다. 예를 들자면 백날 오크를 잡다가 더 강한 몬스터를 잡았더니 강화 주문서나 축석이 떨어져 일주일 꼬박 모아야 할 돈을 한번에 모을 수 있었다는 경험과 같은 것이다.

이와 더불어 PK(<리니지>, <뮤>)나 시체 지키기(<바람의 나라>) 같은 부도덕적인 방법으로 간단하게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는 점 역시 게이머로 하여금 온라인 게임에서 타인을 믿을 수 없고 위험한 존재로 인식하게 만들었다. 같이 사냥하던 게이머가 체력이 없을 때 칼로 후려쳐 아이템을 약탈해가는 것은 다반사. 초기의 온라인 게임들은 애당초 통제할 수 있는 어떠한 수단도 없었기에 캐릭터의 강함, 즉 ‘힘’이야말로 진정한 수단이었다.

힘에 의해 굴복시키고 힘에 의해 다스려졌다. 무법으로 점철된 세상이었지만 개발사가 만들어놓은 작은 세계에서 재미를 창출해 낸 것은 다름 아닌 소비자인 게이머, 그 자체였던 것이다. 개발사가 만들어 놓은 협소한 공간 안에서 게이머들 스스로 룰을 만들어내고 시스템을 완성해 나가는 것이 그동안의 한국형 MMORPG의 발전과정이라 한다면 개발자는 굉장히 부끄러워해야 한다. 컨텐츠와 서비스가 게이머를 만족시키지 못했고 게이머에게 끌려 다니는 게임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이는 지금도 계속해서 이뤄지고 있는 한국형 MMORPG의 총체적인 난관이다.

▲<관대> 그런데 친분이 있는 사람에겐 또 대단히 관대한 것이 한국형 게이머의 특징이다. 간이고 쓸개건 다 빼준다

한국형 MMORPG는 현재진행형

현재 국내의 온라인 게임 인구는 포화상태에 이르러 온라인 게임의 인구수는 거의 변화가 없다. 끌어낼 수 있는 사용자는 모두 끌어들인 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와중에도 끝없이 쏟아지는 MMORPG의 홍수 속에 과거의 게임들은 고스란히 녹아있다. 기존의 시스템을 그대로 안고 가면서 살짝 변화를 꾀한 것을 가지고 ‘새로운 시스템’이라고 우겨대는 게임은 지금도 만들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게이머들이 한국형 MMORPG에 길들여져 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길들여져 온 것은 게이머만이 아니다. 개발사도 길들여져 왔다. 클로즈 베타 ? 오픈 베타 ? 상용화 단계라는 자로 잰듯한 게임의 런칭 일정을 보면서 퍼블리셔도 묻어가듯 개발사 역시 자신도 모르게 ‘한국형 MMORPG’ 정착에 참여한 것이 아닐까 싶다. 오히려 한국형 MMORPG의 정체현상에 가장 격렬히 반응하고 게임을 적극적으로 고쳐나가려고 노력한 것은 바로 게이머가 아닐까?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공유해 주세요
게임잡지
2000년 12월호
2000년 11월호
2000년 10월호
2000년 9월호 부록
2000년 9월호
게임일정
2025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