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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은 현실보다 아름답다. 사라진 온라인게임에 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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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국내에 서비스되고 있는 온라인게임은 수백여 종에 이른다. 한 달에도 몇 개씩 나오는 게임들은 우리가 일일이 다 헤아릴 수도 없을 정도다. 그만큼 많은 게임들이 등장했다는 소리다.

하지만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는 법, 새로 등장하는 온라인게임 못지않게 서비스가 중지된 채 사라져간 온라인게임도 많다.

오늘은 이 ‘사라져간 온라인게임’에 대해 말해보고자 한다. 당신의 추억 속에만 잠들어있던 온라인게임이 있다면 이 기회에 한 번쯤 돌이켜보자. 그 시절의 아련한 추억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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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의 그 길로 돌아가보자


1.아타나시아 - 시나리오만 3페이지!

아타나시아하면 생각나는 것은 텍스트만 3페이지가 넘는 긴 시나리오와 그것을 결정 짓는 다양한 이벤트다.

홈페이지에 연재되는 시나리오는 한 편의 소설로 아타나시아의 세계가 존재하는 이유와 그 속의 비밀을 가르쳐 주는 역할을 했다.

재미있었던 점은 홈페이지의 소설이 각종 이벤트의 성공 여부에 따라 달라졌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1차 클로즈 베타테스트 때 마을의 중대한 비밀이 담긴 서찰을 국경 남쪽으로 가져가는 이벤트가 있었다. 당시 베타테스터 중 한 명이 서찰을 가져가는 역할을 맡았는데 이 유저분이 성공하느냐 실패하느냐에 따라 게임의 시나리오가 변하는 것이었다. 결국 서찰을 몬스터에게 빼앗기면서 이벤트가 끝나버렸고, 홈페이지에는 그 상황에 맞는 시나리오가 업데이트 되었다.

▲마을 간의 길을 건설한 기념으로 열린 길놀이. 모든 유저들에게 깃발 하나씩을 나눠주었다

▲역시나 길놀이의 한 장면. 가운데 있는 드레스 입은 여성은 운영자가 직접 조작하는 이벤트 캐릭터였다

게다가 단지 홈페이지의 소설만 변하는 것이 아니었다. 결투장 건축기념 토너먼트에서는 우승자에게 결투장의 이름을 직접 지을 수 있는 권한을 주기도 했고, 왕녀 호위 이벤트에서는 호위무사로 선발된 이들에게 하얀색 예식 갑옷을 나눠주었다. 이런 식으로 이벤트에서 두각을 나타내면 다양한 곳에 자신의 흔적을 남길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에 너나 할 것 없이 자발적으로 이벤트에 참여하는 결과를 낳았다.

▲지금봐도 신선한 시스템이 많았다

▲유명한 모임장소. 뱀머리 석상. 어째서인지 용두상이라고 불렸었다. 아무리봐도 뱀인데...

이런 아타나시아가 무너진 것은 오픈베타 중반 이후의 일이었다. 다양한 이벤트와 견고한 설정으로 클로즈베타와 오픈베타 초기를 무사히 넘긴 아타나시아였지만, 이내 미숙한 운영정책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아타나시아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는 이벤트 역시 시나리오를 보여준다기보다는 유저들의 눈길을 끌기 위해 다양한 고급 아이템을 뿌려대는 그저 그런 방식의 이벤트로 전락해 버리고 만다.

결국 2003년 1월 29일, 소설을 끝을 보지도 못한 채 아타나시아는 그 막을 내리게 된다. 후에 앨로드라는 이름의 후속작이 나왔지만, 앨로드의 그 어디에도 아타나시아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타나시아의 후속 작이라고 외치긴 하지만 시스템부터가 완전히 다르다

2.사이닝로어 -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판타그램에서 제작한 샤이닝로어는 서비스가 중지된 게임 중에서도 특별히 안타까운 타이틀이다.

아기자기한 캐릭터의 움직임과 잘 정돈된 시스템을 자랑으로 삼던 샤이닝로어는 오픈 이후 2만 명 이상의 동시접속자를 내며 꾸준한 상승세를 타고 있었다. 각종 매체에서는 샤이닝로어의 성공을 떠들어대고 있었으며, 유저들의 호응 역시 좋았다. 그리고 2002년 8월 엔씨소프트가 판타그램의 대주주가 되면서 동시에 샤이닝로어의 판권을 사들이게 된다. 판타그램 역시 샤이닝로어를 세계적인 게임으로 만들려는 욕심에 엔씨소프트를 새로운 유통사로 맞아들인다.

▲귀여운 캐릭터에 PK도 없는 게임! 말 그대로 동화 같은 게임이었다

▲기억나는가? 미니게임 체스! 실은 UFO 게임사진을 구하고 싶었지만 마땅한 것이 없었다

하지만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하지 않았는가? 한창 잘 나가던 샤이닝로어는 이때부터 삐걱대기 시작한다.

샤이닝로어의 판권을 구입한 엔씨소프트는 좀 더 나은 게임 만들기 위한 욕심에 한 달 이상 서버를 닫은 채 리뉴얼 작업을 하게 된다. 그러나 이것이 샤이닝로어 최대의 실수였다.

한 달이 지난 후 엔씨소프트는 그래픽부터 시스템까지 완전히 갈아엎은 새로운 샤이닝로어를 선보이지만 그 한 달을 기다려준 유저는 그리 많지 않았다. ‘오픈베타 기간에 서버를 내리면 망한다’ 라는 속설이 등장한 것도 이때부터 였다.

▲새로운 모습으로 돌아온 것은 좋은데

나머지 유저가 떠나는데도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엔씨소프트에서는 샤이닝로어의 그래픽 외에 시스템까지 손을 댔는데, 그 결과 ‘레벨 업은 매우 어렵고, 돈을 모으기는 더 힘든’ 괴상한 캐쥬얼 게임이 되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샤이닝로어의 또 하나의 장점이던 미니 게임을 없애 버렸다. 오죽하면 유저들이 판타그램이 서비스하던 시절의 샤이닝로어를 ‘구 샤로’로, 엔씨소프트가 서비스하는 샤이닝로어를 ‘신샤로’로 나눠 불렀겠는가?

그리고 몇 달 후, 나날이 줄어드는 샤이닝로어의 동시접속자를 보며 미래가 없다고 판단한 엔씨소프트는 서비스를 종료시켜 버렸다. 이 모든 게 샤이닝로어가 더 잘 되라고 한 일이었지만 오히려 그것이 스스로의 목을 조른 셈이 된 것이다.

▲샤이닝로어 마지막 날의 풍경

3.엘리멘탈 사가 - 느려서 망하고, 이름을 바꿔서 또 망하고

정령 소환시스템과 무제한 PK서버 등 독특한 시스템을 보여주었던 엘리멘탈 사가는 넥슨의 독립 개발팀인 아스라이 게임제작소에서 만든 게임이다.

▲정령을 입는다(?) 이 장면 떠오르는 사람 많을 걸...

2000년 겨울 첫 모습을 드러냈을 때만해도 엘리멘탈 사가의 앞날은 밝아보였다. 온라인게임계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넥슨이 서비스하는 게임이었던 데다가, 개발비만 30억이라는 당시로서는 막대한 금액을 쏟아 부은 블록버스터게임이었기 때문이다.

오픈 이후의 반응도 좋아서 넘쳐나는 사용자 덕분에 며칠 간격으로 새로운 서버가 개설될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엘리멘탈 사가 특유의 느린 게임진행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이 하나 둘 떠나기 시작했고, 결국 엘리멘탈 사가 역시 서버를 내리고 말았다.

▲그러고 보니 엘리멘탈 사가는 샤로보다 더욱 매니악한 게임이었다

이야기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아스라이는 엘리멘탈 사가의 부활을 외치는 많은 유저들을 위해 ‘카르마 온라인’을 내놓는다. 그러나 이 게임은 1년 이상의 시간이 흐른 후 나왔음에도 전작과 비슷한 수준의 그래픽과 시스템을 구현하는데 그친다. 게다가 설상가상으로 넷마블의 동명의 FPS게임 때문에 엑사인으로 이름을 변경하면서 많은 유저들에게 혼란을 주었다. 결국 소수 매니아층의 게임으로 전락한 카르마온라인은 다시 한 번 유저들에게 서비스 종료의 아픔을 맛보게 했다.

▲기껏 다시 만난 사람들인데...

4.일본게임 두 가지 - 한국 온라인게임시장은 그리 만만치 않았다!

기억 저편으로 사라진 게임은 비단 국내게임만 아니다. 해외에서 상용화까지 성공한 게임이 국내에서는 서비스를 종료한 사례도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캡콤의 레인가드와 세가의 다크아이즈다.

한솔텔레컴이 국내 서비스를 맡았던 레인가드는 서비스 전부터 국내의 성공여부가 불투명한 게임이었다. 레인가드의 서버는 게임 스토리에 맞춰서 3달 간격으로 초기화 되는데 이것이 국내 유저들의 정서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륙의 멸망을 막기 위한 3개월간의 이야기! 정확히 12주마다 캐릭터의 이름과 스킬을 제외한 모든 것이 리셋 된다

▲마지막 보스인 ‘신탁의 통치자’를 잡으면 3달간의 플레이가 끝난 것이다. 물론 못 잡으면 못 잡은 대로 끝난 거고...

다행히 레인가드의 게임성에 반한 소수의 유저들 덕분에 상용화에 성공하지만, 그나마도 채 한 달이 지나지 않아 신규유저의 가입이 없어지자, 14주차의 플레이를 끝으로 국내서비스를 종료했다.

세가에서 개발한 다크아이즈도 사정은 비슷했다. 레인가드보다 약간 늦게 서비스를 시작했던 다크아이즈는 오갈과 인펜 두 종족으로 나뉘어 생존을 위해 PK를 즐겨야 하는 독특한 컨셉의 게임이었다. 하지만 시대에 뒤떨어진 그래픽과 운영자 대신 선발한 일반 유저 도우미의 문제점 등으로 인해 유료화를 단행한지 얼마 되지 않아 문을 닫게 된다.

▲오갈이랑 인펜이랑 사이좋게 치고받았던 게임

▲레벨조차 알 수 없는 도우미에게 PK를 당하는 난감한 게임이기도 했다.-_-;;

“무엇보다 안타까운 것은 추억과의 이별이다”

이처럼 다양한 이유들로 인해 많은 온라인게임이 사라졌다. 운영과 관리 미숙으로 사라지는 게임도 있고, 국내 실정과 맞지 않는 게임을 그대로 들여왔다가 서버를 닫는 경우도 있다.

물론 온라인게임만이 서버를 닫고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굳이 온라인게임의 예를 들지 않아도 하루에 사라지는 게임은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다. 그 중에는 미처 세상에 나오지 못한 채 기획단계에서 사라지는 캐쥬얼 게임도 있고, 자신의 역할을 모두 마치고 장롱 한 구석으로 자리를 옮기는 패키지게임도 있다.

하지만 비단 온라인게임만을 거론하는 이유는 온라인게임 속에는 단순한 게임으로 여길 수 없는 사람과 사람사이의 추억이 있기 때문이다.

▲온라인게임의 가장 큰 컨텐츠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이야기들' 이다

언제나 함께 싸우던 길드원, 오갈 때마다 인사를 건네던 친구들, 심지어는 만나기만하면 눈을 부라린 채 서로를 못 죽여서 안달이던 적까지, 이런 다양한 사람들과의 추억들은 온라인게임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감정이다.

오죽하면 서비스가 종료된 게임을 차마 잊지 못하고 마지막 클라이언트를 이용해서 불법적인 프리서버를 즐기는 사람과 해당게임의 부활을 촉구하는 서명사이트를 만드는 사람이 있을까? 이런 일은 유저들이 온라인게임을 단순한 게임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그들에게 온라인게임은 즐거웠던 추억을 간직한 장소이며 동시에 또 하나의 생활터전이었던 것이다.

▲샤로의 대표적인 서명사이트와 엑사인의 팬사이트. 두 사이트 모두 게임의 서비스가 종료된 지 2년이 다되어감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다


사라진 게임의 유저들을 위한 서비스

PC게임 중에는 고전게임이란 것이 있다. 고전게임은 대부분 개발사에서 더 이상 판매가 되지 않는 게임의 판권을 포기하고, 그것을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게 한 게임을 말한다.

▲이 시절의 게임은 대부분 자유롭게 공유할 수 있는 게임들이다

온라인게임에도 이런 고전게임방식의 서비스가 나온다면 어떨까? 예를 들어서 위의 게임 중 엘리멘탈 사가 같은 경우는 서비스가 중지된 지도 오래되었고, 더 이상 상품가치가 없는 게임이다. 이런 게임의 무료 서버를 하나쯤 공개해 주는 것이다. 앞으로 업데이트도 없고, 운영진에 의한 서비스도 기대할 수 없는 서버가 나오겠지만 추억의 게임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쉼터가 될 수도 있다.

이것이 부담된다면 서비스가 종료된지 일정기간이 지난 게임의 클라이언트를 공개하고, 프리 서버의 운영을 허가해 주는 방법도 있다. 이 방법은 단순히 다운로드 서비스만 제공해 주면 되기 때문에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새로 서비스되는 게임이 아니니, 그렇게 큰 트래픽을 요구하지도 않는다.

물론 이런 방법들을 시행해봤자 개발사나 유통사는 아무런 이득도 얻을 수 없다. 오히려 서버관리비, 게임 운영비 등의 지출로 인해 손해만 보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자사의 게임을 즐겨준 유저들을 위한 최소한의 보상으로 이정도 서비스를 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을까?

▲이런 이벤트 몇 번 할 돈이면 충분히 하고도 남을텐데...

‘게임’은 가고 ‘추억’만이 남는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필자는 앞에 나온 모든 게임의 서비스 종료 장면을 지켜봤다. 그러면서 깨달은 것은 온라인게임은 사라져도 그 안에서 만났던 사람과, 그들과 겪었던 추억만큼은 가슴 속에 남는다는 것이다.

당신도 혹시 사라진 게임을 즐겨본 적이 있는가? 그렇다면 오늘 저녁에는 그 게임의 추억에 빠진 채 그 시절, 그 즐거움을 떠올려 보는 것은 어떨까?

▲물론 이런 추억은 제외다.-_-;


보너스 - 이런 게임도 있더라!

상상도 못할 정도로 넓은 온라인게임계, 그 중에는 이런 온라인 게임도 있었다. 그것은 바로 아일랜드 온라인!

▲아일랜드 온라인

양경일, 윤인환씨의 만화 아일랜드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게임은 1차 클로즈 베타 이후 테스터들에게 ‘비누방울이 나오는 물총’ 1개씩을 나눠준 채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져 버렸다. 악행을 많이 하면 데빌 게이지가 쌓여서 몬스터로 변해 버리는 등 재미난 기획이 많았던 게임인데 아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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