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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흥망성쇠, 영고쇠락의 현장 오락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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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게임의 주류는 온라인, 콘솔게임이다. 1가정 1대 보급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는 PC를 통해 온라인게임은 급속하게 확대되고 있으며, 단순한 게임기의 영역을 벗어나 DVD 플레이어와 CD 플레이어, 심지어 홈 네트워크 제어기기의 영역까지 넘보고 있는 콘솔게임기는 나날이 발전해가는 기술과 함께 여가시간 활용의 주류 문화로 확고히 자리를 잡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 콘솔게임에 열중하고 있지만 누가 뭐래도 게임의 시작은 아케이드 게임이다. 필자와 비슷한 또래의 20~30대 게이머라면 누구나 오락실(정식명칭은 게임센터지만 더 친숙하고 정감 있는 오락실이라는 이름으로 사용하겠다)을 출입한 경험과 그에 얽힌 여러 에피소드들이 있을 정도로 오락실은 게임을 접해보는 첫 관문이기도 했다.

밖에서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오락실 안의 사람을 볼 수 없도록 셀로판 테이프로 덧칠해 놓은 창문, 밖의 햇빛이 들어오지 못해 실내등으로만 불을 밝혀야했던 침침한 실내, 여기저기서 피어오르는 담배연기, 신작게임기 조종기 옆에 수북이 올려져 있던 50원짜리 동전, 엄마 손에 귀를 붙잡혀 끌려나가는 초등학생….

이런 정겨운(?) 광경으로 필자의 기억 속에 생생한 오락실은 시간이 흐르면서 어떻게 변해왔을까? 경마나 경품 게임 등의 사행성 게임을 제외한 아케이드 게임(일명 오락실 게임)의 종류가 눈에 띄게 줄어든 요즘, 우리 추억 속에 남아 있는 오락실과 지금의 오락실은 어떻게 다른지 그 현장을 생생하게 전한다.

▲ 공수도를 플레이하고 있는 동네 꼬마 녀석들. 추억이 새롭다


이젠 찾아보기도 쉽지 않다

1990년 무렵, 필자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걸어서 15분 정도 걸리던 통학로에는 6개의 오락실이 존재했다. 하고 싶은 게임을 이미 누가 하고 있다면 다른 오락실로 가서 게임을 할 수 있었고, 당시 붐이었던 대전격투게임의 오락실별 최고수들이 한자리에 모여 지역 최강자를 뽑는 이벤트도 심심치 않게 개최되곤 했다. 요즘 청소년들이 PC방이나 패스트푸드점에서 친구들과 만나 노는 것처럼 그 당시 오락실은 청소년들이 일상처럼 드나드는 삶의 공간(?) 중 일부였다.

하지만 요즘에는 오락실을 찾아보기 자체가 쉽지 않다. 동네에 옹기종기 모여 있던 오락실은 경영악화로 이미 대부분 모습을 감추었으며, 대학로나 유흥가 근처 등 유동인구가 많은 장소로 한정되기 시작했다. 필자는 젊은이들의 거리, 유동인구가 많기로 소문난 회기동, 신촌에 있는 대표적인 오락실 두 곳을 찾아봤다.

▲ 미국의 한 오락실. 사람들의 진입을 유도하기 위해 화려하고 크게 꾸며졌다

▲ 그러나 우리나라의 오락실은 안이 보이지 않게 셀로판 테입으로 유리창을 덧씌우는 등 음지화를 추구(?)한다

 

재래식 오락실은 이미 운명 5분전
4월 초의 어느 화창날 금요일 오후, 15년 이상 영업을 계속하고 있는 회기동의 한 오락실을 찾았다. 오래된 탓인지 간판도 꽤 낡았으며 내부 인테리어 역시 몇 년 전에 한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된 티가 풍겼다. 60평 정도의 꽤 넓은 공간 한쪽에는 경품형 게임기들이 쭉 늘어서 있었고, 다른 한 쪽에는 슈팅, 대전격투, 액션 등 재래식 아케이드 게임이 배치되어 있었다.

많은 오락실이 경영 악화로 인해 신규 게임을 들여오지 않고 있는 가운데 그래도 이 오락실은 역사와 전통이 있어서인지 이니셜 D를 비롯해 철권 5, 버추어 파이터 4 파이널 튠드 등 최신 게임을 구비하고 있었다. 이런 최신 기판은 가격이 비싸 여간해서는 들여오기가 쉽지 않다.

“그래도 우리 가게는 주변에 대학들이 많이 있고 유동인구가 많아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편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최신작들을 들여놓을 여력이 있죠.”

아르바이트 학생을 닦달해 30분 가량 주인 아주머니를 기다렸다가 들은 말이다. 한창 호황이던 90년대 중~후반에 비하면 수입이 절반 이하로 줄었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먹고 살만 하기에 계속 영업을 하고 있다는 주인 아주머니. 재래식 아케이드 게임을 통한 수입은 줄었지만 경품형 게임에서 꽤 쏠쏠하게 수입이 생겨 이런 기계를 들여놓을 수 있었다고 말한다.

한쪽에서는 철권 5 대전이 한창 벌어지고 있었다. 금요일 오후라 시간적인 부담감도 덜하고 마침 강의도 일찍 끝났기에 친구들과 함께 오락실을 찾았다는 K대의 한 학생을 만났다.

“물론 저도 PS2, Xbox 게임을 즐겨합니다. 수업 도중 짬이 나면 친구들과 PC방 또는 PS2방을 찾곤 하죠. 하지만 아무래도 철권 같은 게임은 왁자지껄하게 오락실에서 스틱으로 즐겨야 제 맛 아니겠어요?”

온라인게임과 콘솔게임이 젊은 층에 급속히 보급됨에 따라 이전처럼 오락실이라는 단일창구를 통해 게임을 접하던 과거세대와는 달리 오락실을 찾게 되는 횟수가 줄어드는 요즘 젊은이들. 재래식 아케이드 게임이 힘을 잃어가는 이유는 여기에 있었다.

함께 게임을 하고 있던 다른 학생은 철권이나 버추어 파이터 같은 메이저 게임이 아니면 잘 손을 대지 않는다고 했다. 다른 놀거리도 많은데 굳이 여러 게임을 섭렵해가며 시간을 투자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오락실에 들르는 건 일주일에 한 번 정도. 과거 대학생일 때 하루에 2~3차례 들르던 필자 얘기를 듣더니 신기하다는 듯 쳐다본다(-_-).

1시간 정도 철권을 하던 K대 학생들이 자리를 비우자 뒤에서 보고 있던 회사원(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게임기 앞에 앉았다. 캐릭터를 고르고 플레이하기를 잠시, 두 번째 스테이지에서 지고 말아 게임이 끝났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아저씨에게 얘기를 들어봤다.

“과거 대학 다닐 때만 해도 철권 3로 꽤 실력을 날렸습니다. 그런데 그 후 직장생활을 하게 되자 게임을 할 시간이 줄어들더군요. 오늘은 회기동 근처에 볼일이 있어 외근 나왔다가 문득 옛날 생각이 나 잠깐 오락실에 들렸는데 철권 5라는 신작이 보이기에 무작정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꽤 어려워졌네요. 적응을 못하겠어요.”

아케이드 게임은 기존 유저의 이탈과 함께 신규유저가 끊임없이 교차하며 발전해왔다. 그런데 게임이 어려워지고 복잡해짐에 따라 새로 영입되는 신규 유저의 수가 기존유저 이탈에 미치지 못하게 됐고, 점점 즐기는 사람들이 적어짐에 따라 아케이드 게임은 사향길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 역시 유동인구가 많은 신촌의 한 전통있는 오락실. 그러나 대부분의 게임은 옛날 것이었으며 경품게임 위주로 바뀌어가고 있었다


환골탈태를 꿈꾸는 신개념 오락실
필자의 추억과는 달리 쇠락의 길을 걷고 있는 재래식 오락실을 뒤로 하고 다른 오락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들 경기가 어려운 판에 이곳이라고 별 차이가 있을까 하는 생각에 발걸음이 무거웠지만 막상 근처에 도착하니 생각이 싹 바뀌었다. 이곳 역시 유동인구가 많아 입지 조건은 앞서 찾았던 재래식 오락실과 큰 차이가 없지만, 규모부터 기존 오락실과 차원을 달리했다.

▲ 기존 오락실과는 천양지차인 이곳. 건물 전체가 모두 오락실이다.

이 규모를 과연 오락‘실’이라고 해야 할까? 지하 1층, 지상 5층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건물이 모두 게임들로 채워져 있는 이곳은 눈에 확 띄는 간판부터 시작해 각 층별 테마에 어울리는 인테리어까지 어둡고 폐쇄적인 느낌의 오락실과는 큰 차이를 보인다.

지하 1층에는 최초의 아케이드 게임 ‘퐁’을 비롯해 70~80년대의 고전 게임부터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트레이딩 카드를 이용한 축구게임 ‘월드컵 챔피언 풋볼’ 등 게임의 역사를 한눈에 체험할 수 있는 기기들이 쭉 전시되어 있어 흡사  박물관을 연상케 했다. 어떻게 이런 오래된 게임들을 구했는지 의아할 정도로 올드 게이머들의 향수를 자극하고 있다.

▲ 오락실 1층에는 놀랍게도 볼링장까지 있었다

▲ 우리나라에 1대밖에 없는 8인용 '월드컵 챔피언 풋볼'

1층에는 다양한 경품 게임들과 함께 간단하게 끼니를 해결할 수 있도록 케이크와 쿠키를 판매하는 공간이 있으며 팬시용품 판매점도 자리 잡고 있다. 2층은 여성들을 위한 여성 취향의 게임들이, 3층은 최신 게임 마니아들을 위해 콘솔 게임기를 비롯해 최신 아케이드 게임이 빵빵한 사운드와 넓은 화면으로 입장객들을 맞고 있다. 4층과 5층 역시 최신 AV 기기를 통해 꾸며 놓은 게임 공간과 고급 카페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분위기의 휴게실이 건물을 찾은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제공한다. 다른 재래식 오락실과 무척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이곳. 과연 어떤 사람들이 이곳을 찾을까?

“보통 20대 이상의 젊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습니다. 남녀 커플로 찾는 경우도 많고 여자들끼리 찾는 경우도 많죠. 하지만 남자들끼리 우르르 몰려오는 경우는 별로 없습니다. 특별히 무슨 게임 대회를 한다거나 하는 등의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요.”

아르바이트를 하는 남자 직원의 말에 주변 인테리어를 둘러보니 귀여운 캐릭터 장식이 이곳저곳에 보이고 분홍색, 노란색 등 화사한 색깔이 많아 남자들끼리 찾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어 보인다. 여자친구와 오락실을 찾은 S대의 한 학생은 기존 오락실과 달리 잘 꾸며진 쇼핑몰처럼 밝고 화사한 느낌이 마음에 든다며 “신촌 근처에 놀러 왔다가 우연히 들어오게 됐는데, 다른 오락실처럼 칙칙하지 않고 화사하게 꾸며 놓아 분위기가 새롭네요. 간단하게 먹을거리도 있고 쉴 공간도 있어 어지간한 카페는 저리 가라입니다”라고 말했다.

▲ 물론 최신게임을 비롯해 고전게임까지 오락실 자체의 기능도 충실히 갖고 있다

다른 한 커플 역시 이곳에 자주 들르는 편이지만 굳이 게임을 하고 싶어서라기보다 게임도 하고 다른 볼거리를 둘러보며 데이트를 할 수 있어 만족스러워 했으며, 2층에서 만난 친구 사이의 여성 3명 역시 보통 오락실이라면 남자들 위주로 꾸며져 있어 발길을 옮기기가 힘든데 이곳은 여자들끼리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꾸며져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얘기를 들어 보니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30분 내외의 짧은 체류시간을 보이는 게 특징이다. 잠깐 들러서 한두 판 게임을 즐기거나 잠시 쉬어가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이다. 과연 이렇게 해서 장사가 될까?

“매출액은 다른 재래식 오락실보다 오히려 많이 나옵니다. 한 명이 게임을 오래 플레이하는 것이 아니라 계속 사람들이 바뀌니까요. 다만 매장의 관리비와 초기 비용이 많이 드는 편이라 실제 수익 면에서는 재래식 오락실보다 조금 나은 정도입니다.”

즉, 이곳의 영업방침은 투자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오게 하고 그 매출액으로 비용을 충당하는 마케팅 중심의 플랜이다. 기존 재래식 오락실이 아는 사람들의 입소문을 통해 영업을 한 것, 즉 비용이 적지만 매출액도 적은 것과는 상당히 다르다. 어느 쪽이 더 올바른 방법인지 단정지어 말할 수는 없겠지만 재래식 오락실의 이용객이 점차 줄어가는데 비해 이곳의 이용객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 걸 보면 아무래도 후자가 제대로 된 선택이 아닌가 생각된다.

▲ 스티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사진기와 카페처럼 꾸며진 휴게실. 화면을 보고 스틱을 움직이는 것만이 '오락'이 아니라 들러서 재미를 느낄 수 있는 곳이 '오락실'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갑자기 3층에서 시끌시끌한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인가 해서 가봤더니 한 댄스 게임기 동아리 회원들이 모여 대회를 열고 있었다. 정기적으로 이렇게 모여 서로의 실력을 뽐내고 비교한다는 이들. 다른 재래식 오락실은 장소도 협소하고 다른 기계들 때문에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아 불편하지만, 이곳은 미리 연락을 취하면 아예 시간을 정해 장소를 따로 빌려주기 때문에 동아리 모임에 자주 이용한단다. 기계만 설치해주고 알아서 놀라는 방식이었던 재래식 오락실. 별 것 아니지만 손님들의 요구에 최대한 충족시켜주려 노력하는 모습이 꾸준히 손님이 늘어나게 하는 이유가 아닐까.

 

오락실도 경쟁력이 필요

이번 취재를 통해 예를 든 곳은 아니지만 이밖에도 장사가 좀 된다 하는 곳들은 후자처럼 게임뿐만 아니라 다른 놀거리를 함께 제공하는 복합 엔터테인먼트 몰로 자리를 새롭게 매김하고 있는 경우가 많았으며, 재래식 오락실이라도 자주 찾는 이용객들의 편의를 최대한 배려하고 특정 타깃에 집중하는 등 기존 재래식 오락실과는 많이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시대는 항상 변한다. 오락실 역시 시대의 흐름에 맞추어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어야 생존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게임을 즐기는 또 하나의 문화공간이 될 수 있도록 많은 오락실들이 생존경쟁에서 꼭 살아남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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