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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뒤늦게 게임에 눈을 뜬 게임문외한 권민관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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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을 기획하고 개발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어렸을 때부터 게임개발이나 플레이 실력이 남달랐다고 하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의 오류일 수 있다.

물론 이전까지 소개했던 그리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스타 개발자들의 유년시절은 그러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봐 왔듯이 게임과 관련된 유년시절의 경험들은 그들이 게임을 개발하게끔 적당한 기회만 제공했을 뿐 실제 현재 게임을 개발하는데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않는다. 오히려 게임개발에 대한 실무를 본격적으로 접하면서 겪었던 경험이나 이력들이 그들에게는 더 높은 가치로 인식될 것이다.

이는 사회 각 분야에서 활동하던 전문가들이 각 분야별 전문기자로서 다시 새출발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이번에 소개할 애니파크 권민관 기획실장은 본디 게임개발을 목표로 했던 사람이 아니었다.  게임보다는 연극이나 애니메이션이 좋았고 전공도 컴퓨터공학과가 아닌 경영학이어서 졸업 후 한동안은 마케팅, 전략기획 등과 같은 업무를 해왔다.

이런 인물이 어떻게 게임과 인연이 닿아 온라인게임 기획을 시작하게 되고 A3란 걸출한 MMORPG를 내놓게 되었을까?

[네 번째 이야기] 애니파크 권민관 기획실장

▲내기에서 시작한 게임과의 인연

2000년 가을부터 게임개발을 시작했으니 어느덧 권 실장의 게임개발경력은 5년째에 접어든 셈이다. 자신에게 있어 게임개발자란 수식어는 아직 굉장히 부담스럽게 여기진다는 권 실장은 개발자라면 대부분 경험했을 법한 T-RPG, PC통신 게임동호회는커녕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집에 가정용 게임기 하나 없는 게임엔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게임문외한이었다.

게다가 자신은 이름만 거론해도 알만한 다른 개발자들에 비하면 게임개발에 대한 경험이 턱없이 부족한 권 실장은 아직 경험한 것 보다 경험해야할 것이 많은 20대이기에 다른 사람이 자신을 전문가라고 지칭하는 것에 대해 부담감을 느낄 정도로 몸 둘 바를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권 실장은 스스로 자신이 게임개발자인 것이 너무 뿌듯하고 자랑스럽다며 게임개발자가 혹시 천직이 아닐까하는 생각을 가끔 갖는다고.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끄적이다 보면 묘한 전율이 온몸을 파고듭니다. 제가 이렇게  게임을 개발하게 되기까지 제 삶을 되 돌이켜 보면 어쩌면 게임은 제게 있어 숙명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권 실장이 처음 접한 게임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맞닥들이게 된 ‘로드런너’와 ‘레스큐 레이더스’였다.

그 당시 또래 게이머들이 주로 즐기던 게임은 MSX용 타이틀인 ‘이스’. 게임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이 갖춰지지 않은 권 실장은 단지 또래 친구들이 즐기던 ‘이스’를 하기 위해 부모님과 전교 1등과 컴퓨터를 걸고 내기를 했다.

권 실장에 따르면 당시 권 실장은 오로지 MSX를 손에 넣기 위해 공부의 본질도 잊은 채 닥치는 대로 책을 암기해가며 전교 1등만을 목표로 달렸고 그 결과 예상치도 못한 전교 1등이라는 성과를 얻어 냈다.

그러나 그가 손에 얻은 것은 ‘이스’를 플레이할 수 있는 MSX 컴퓨터가 아닌 5.25인치 디스켓이 사용되는 8비트 애플컴퓨터. 이미 되돌이킬 수 없는 상황을 맞닥들인 권 실장은 그토록 원했던 ‘이스’가 아닌 ‘로드런너’와 ‘레스큐 레이더스’로 게임과의 첫 인연을 맺어야 했고  그 뒤로 또래 친구들과 달리 ‘올림픽’과 ‘하드볼’ 등의 게임을 주로 즐겨야만 했다.

하지만 권 실장은 MSX 컴퓨터가 아닌 애플컴퓨터로 게임과 첫 인연을 맺은 것이 돌이켜 생각해보면 오히려 잘 된 일이라고 과거를 회상했다. 게임에 대한 막연한 꿈을 꾸며 컴퓨터게임을 즐기기보다 NPC가 아닌 PC와 협동하고 경쟁할 수 있는 친구들과 야구, 축구, 구슬치기, 땅따먹기 등의 놀이를 하면서 보낸 시간들이 오히려 게임개발자로서 더 많은 도움이 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렇게 유년시절을 보낸 권 실장은 내기가 인생에 있어 유일한 즐거움이라고 말한다.

“내기라는 말이 그렇게 좋은 말은 아니지만 내기란 단어만큼 확실하고 절박한 경쟁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게임과의 첫 만남도 부모님과의 첫 내기를 통해서였으니 제 인생에 있어 가장 큰 의미를 부여하는 단어가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락 문외한 PC방 죽돌이 되다

이렇게 권 실장은 컴퓨터 게임보다 친구들과 밖에서 뛰어노는 것을 더 좋아했기 때문에 게임에 대한 관심은 생길리 만무했으며 여느 또래 친구들과 달리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까지도 오락실을 단 한번도 가지 않았다.

“용돈이 궁했던 탓도 있겠지만 그보다 그때까지도 전 게임보다는 축구, 농구가 좋아 돈이 모이는 족족 축구공, 야구공, 테니스공, 농구공, 배구공 등 다양한 공만 사 모았습니다. 게임이 뭐가 재미있는지 전혀 몰랐죠”

때문에 ‘스트리트 파이터’, ‘더블 드래곤’ 등 대한민국 동네 오락실을 떠들썩하게 했던 게임들이 들어와도 권 실장에게는 관심 밖의 이야기였다.

하지만 그런 그에게도 게임에 대한 인식을 전환시켜주게 되는 게임이 등장했다.

그것은 바로 세가의 ‘버추어 파이터’!


▲권 실장은 파이로 동네를 주름잡았다고 한다

“게임이 좋아서 시작했다기 보다 게임을 통해 뭔가 성취감을 얻을 수 있어서 빠져들기 시작했습니다. 다양한 캐릭터를 사용해 상대방을 무너뜨린다는 느낌이 좋았죠. 그게 게임에 대한 제 첫 인상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버추어 파이터를 게임의 재미에 눈을 뜬 권 실장은 고등학교 3년을 게임이 빠져서 보냈지만 그가 선택한 대학 전공은 게임과 전혀 관련 없는 경영학이었다.

앞서 소개한 여러 개발자들이 게임개발을 위해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것과는 전혀 달랐기 때문에 필자로서는 굉장히 의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권 실장은 게임이 좋긴 했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게임을 개발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다고 당시를 설명했다.

대학에 입학한 뒤에도 ‘위닝일레븐’, ‘MVP 베이스볼’, ‘스타크래프트’, ‘레인보우식스’, ‘디아블로’, ‘카운터스트라이크’ 등 다양한 게임을 모두 섭렵하기 위해 학교수업을 모두 땡땡이 치면서까지 시쳇말로 PC죽돌이 같은 생활을 한 권 실장이지만 당시만 해도 그가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공인회계사였고 게임은 그냥 취미에 불과했다.

인과응보였을까? 게임에 할애한 시간이 공부에 할애한 시간보다 더 많았던 권 실장은 결국 공인회계사 시험에서 낙방의 고배를 마셔야했으며 여러 번의 방황 끝에 단지 회사에 대한 경험을 쌓기 위해 지금의 애니파크의 문을 두드렸다.

그것이 게임개발업체와의 첫 만남이었던 것이다.

▲영업사원 온라인게임 기획자 되다

애니파크도 엔씨소프트처럼 처음에는 온라인게임 전문 개발사가 아니었다. 당시 애니파크의 주 업무는 3D 애니메이션과 관련된 어플리케이션을 만드는 일이었고 권 실장은 마케팅, 전략기획 등의 업무를 주로 전담했다고 한다.

“3D 애니메이션 관련 어플리케이션을 만들긴 했지만 그때만 해도 국내 3D 애니메이션 시장은 회사가 이윤을 내기에 턱없이 규모가 작았기 때문에 회사는 애니메이션 관련 사업을 포기하고 온라인게임산업으로 눈을 돌려야 했습니다”

그렇게 3D 애니메이션 사업에서 온라인게임개발 사업으로 방향을 전환한 애니파크. 하지만  애니메이션과 관련된 인력만 가득한 회사에는 게임기획, 게임개발 등과 같은 업무를 진행할 수 있을만한 자원이 없었다. 희망을 걸 수 있었던 것은 그동안 외주로 일부 온라인게임의 프로그래밍 부분만 몇 개월 했었던 경험이 전부였다.

“그때였던 것 같습니다. 게임개발을 해보자고 맘을 먹었던 것이요. 리니지, 뮤 등 당시 인기있었던 MMORPG를 즐겨봤다는 경험을 위안삼아 여러 가지 게임기획을 반복하던 차에 애니파크의 첫 온라인게임 A3의 기획이 완성돼 갔습니다”

자신이 어떻게 온라인게임을 기획했는지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는다는 권 실장은 기획단계에서 사라져간 수 많은 게임들이 A3 개발에 큰 힘이 됐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대학시절 연극을 했던 경험, 게임방에서 살다시피하면서 경험했던 게임들, 3D 애니메이션 사업 마케팅을 하면서 어깨너머로 배운 3D 저작물에 대한 지식, 선배 게임개발자로부터 얻은 조언, 막무가내 내기정신을 통해 비로서 하나의 온라인게임을 기획할 수 있었다며 특정 게임에 대한 인상이 자신의 게임개발에 영향을 미쳤다기 보다는 게임이 아닌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겪었던 다양한 경험들이 큰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공인회계사 시험에서 낙방하고 회사원이 되겠다고 한 제 입장을 부모님은 쉽게 이해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국내 최초 성인 온라인게임’이란 타이틀과 야한 컨셉으로 광고되기 시작한 A3덕에 전 가족뿐만 아니라 동네주민에게까지 에로게임 개발자라는 지탄을 받기도 했습니다”


▲온라인게임 A3의 히로인 '레디안'. 에로게임이란 독특한 수식어가 붙을 만 했다

게임개발에 대한 첫 신고식을 톡톡하게 치룬 그는 지난 4년간 게임기획에 쏟아 부은 노력과 열정 덕에 이제는 게임개발과 기획에 대해 큰 자신감을 얻었다고 한다.

게임을 하는 유저들로 하여금 자신이 만들어 놓은 세계에 몰입시키고 동화시키고 감동을  느끼게 함으로써 그 세계에 풀어놓은 주제의식들을 불현듯 느끼도록 하는 것이 재미있는 게임이라는 철학을 가지고 있는 그는 이제 A3가 아닌 새로운 프로젝트로 한층 더 성숙해진 개발자의 모습을 갖추려 하고 있다.

가능성 있는 초보개발자라는 이야기가 가장 듣고 싶다는 권 실장. 부디 인생을 한편의 게임으로 생각해 게임이 아닌 인생을 만드는 멋진 개발자로 거듭나보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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