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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늦깍이 개발자 그리곤엔터테인먼트 김병철 개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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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과학자, 우주비행사가 되고 싶어요”

불과 십여년 전 초등학생들이 말한 장래희망이다. 당시로서는 지금과 같이 뚜렷한 놀이문화도 없었고 다양한 문화컨텐츠가 어린이들이 쉽게 즐길 수 있을 정도로 보편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아이들에 비한다면 생각의 폭이 좁았던 것이 사실이었다.

생각의 폭이 좁았기 때문에 장래희망을 ‘대통령’, ‘과학자’, ‘우주비행사’라고 대답했다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겠지만 과거에 비해 다양한 컨텐츠에 대한 혜택을 누리고 있는 지금의 어린이들이 생각하고 있는 장래희망들은 앞서 이야기 한 대통령, 과학자, 우주비행사 보다 좀 더 구체적이고 현실적이기 때문에 충분히 비교가 되고 있다.

▲과거에 비해 학생들의 장래희망에 대한 생각이 상당히 구체화된 것을 잘 알 수 있다

최근 한 교육관련 사이트가 초등학교 고학년 1만 명을 대상으로 ‘장래희망’에 대해 조사한 결과 연예인, 방송인, 컴퓨터 전문직, 요리사 등의 항목이 높은 응답률을 보였으며 또 ‘어떤 직업이 좋은 직업인가?’라는 질문에는 응답자의 54%가 ‘적성에 맞는 직업’에, 20%는 ‘돈을 많이 버는 직업’에 응답해 과거에 비해 학생들의 장래희망에 대한 생각이 굉장히 구체화되고 현실적이 된 것을 알 수 있다.

또 이를 통해 우리는 활발해지고 있는 문화컨텐츠 산업이 얼마나 학생들의 장래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런 문화컨텐츠 중 2003년 이후 미니 RC카, 포켓몬스터, 디지털몬스터에 이어 새로운 놀이문화로 각광을 받기 시작한 온라인게임이 생활 속에 급속하게 퍼지면서 급기야는 ‘게임개발자’도 학생들의 인기 장래희망 중 하나가 됐다.

이에 게임메카는 게임업계를 이끌어가고 있는 CEO 및 핵심개발자들은 게임업계에 몸담기 까지 게임과 관련된 어떤 에피소드가 있었는지 직접 들어보고 연재 마지막 시간에는 이들을 통해 알 수 있었던 게임업계 진출에 대한 키워드를 살펴보는 시간을 마련했다.

첫 번째로 만나본 인물은 ‘씰’, ‘레이디안’, ‘나르실리온’ 등 국산 패키지 RPG를 이끌어 온 그리곤엔터테인먼트 김병철 개발이사다. 다른 개발자와 달리 대학생 시절 뒤늦게 게임개발에 눈을 뜬 그는 과연 어떤 에피소드를 가지고 있을까?

[첫 번째 이야기] 그리곤엔터테인먼트 김병철 개발이사

한국게임개발자협회 이사를 역임할 정도로 개발자 사이에서 큰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는 김병철 개발이사의 게임과의 인연은 굉장히 늦은 편이다.

김 이사가 처음 게임을 만들어 보겠다고 생각한 것은 대학교를 입학하면서부터다.

“대학교 입학 이전에는 게임과 관련된 주변 인프라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컴퓨터를 접해보지도 못했습니다”

대학에 입학해서야 비로소 컴퓨터를 만지게 된 김 이사의 계임계 입문은 여타 다른 개발자들에 비해 늦은 편이었고 개발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시점은 엄청나게(?) 늦은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그런지 김 이사는 같은 연배의 개발자들과는 조금 다른 동기로 인해 게임개발자로서의 인생을 시작하게 됐다.

김 이사가 ‘게임’이라는 존재를 처음 안 것은 동네 만화방에 비치돼 있던 10원짜리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통해서다. 이런 정도면 일반 올드유저와 큰 차이가 없는 시작 아니겠는가 하겠지만 스페이스 인베이더를 처음 봤을 당시 김 이사는 다른 사람과 달리 게임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으며 스페이스 인베이더 게임기를 그냥 자주 볼 수 없었던 신기한 물건 이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게임을 직접 플레이 해본 경험이 거의 없었습니다. 이후에 발매된 제비우스와 갤러그도 그냥 구경하는 정도 였죠”

자신을 오락실 문화와는 거리가 멀었던 사람이라고 설명한 김 이사의 말은 게임개발자라고 하면 어려서부터 게임에 대한 남다른 시각을 가지고 게임을 바라봤을 것 같은 필자가 가지고 있던 일반적인 상식을 뒤집기에 충분했다.

그나마 김 이사가 가장 감명 깊게 플레이했던 게임은 스트리트 파이터 2 정도였다고 한다. 김 이사가 중, 고등학생이었을 당시 동네오락실을 강타했던 스트리트 파이터가 당시 오락실 내에 비치된 게임기의 80~90%를 차지할 만큼 큰 인기를 끌고 있었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김 이사가 스트리트 파이터 2에 빠져든 것은 어찌보면 당연할 일이겠지만 김 이사에게 있어 스트리트 파이터 2는 그동안 게임에 대해 가지고 있었던 인식을 180도 변화하게 만든 일종의 터닝포인트와 같은 의미를 지니기 때문에 남다르다고 할 수 있다.

▲이 게임이 그의 인생에 있어 큰 전환점이 돼 준 셈이다

“그 당시 스트리트 파이터 2를 즐기면서 처음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만약 내가 게임을 만들게 되면 스트리트 파이터 2 처럼 큰 반향을 일으키는 게임을 만들고 싶다고 말이죠”

당시 게임은 오락실에서만 하는 것으로 알았던 김 이사는 게임을 만들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게임개발관련 알고리즘을 하나도 몰랐기 때문에 그가 가지고 있었던 게임제작에 대한 의지는 그리 큰 것이 아니었다.

이렇게 게임개발 의지를 조금씩 키워나갔던 김 이사가 개인적으로 가장 만들고 싶었던 게임은 스트리트 파이터 18금 버전이었다고 한다. 18금 게임을 한 번(?)도 접해보지 못했던 당시 김 이사는 일반 고교생들이 그랬듯이 성인물로 돌파구를 찾으려 했던 것이다. 그러나 대전격투게임 장르에도 성인물이 하나 정도 있었으면 하는 작은 바램으로 시작한 첫 게임기획은 일본 성인 패키지게임 전문 개발사인 일루젼에서 비슷한 컨셉의 타이틀이 발매되면서 수포로 돌아갔다.


▲이 정도의 게임이라면 그가 생각하는 18금 격투게임에 근접하지 않을까?

그렇게 김 이사는 대학교 입학 전까지 PC게임이 아닌 동네 오락실에서 쉽게 접할 수 있었던 아케이드게임만 접하면서 게임개발에 대한 과정을 알지 못한 채 기회가 되면 어떻게든 만들어 보리라는 모호한 생각만으로 게임개발에 대한 의지를 지속시켜나갔다.

“처음 대학교에 입학하고 PC게임을 접했습니다. 당시 가장 재미있게 즐겼던 게임은 삼국지 2였죠. 삼국지 2를 접하고서야 비로소 게임장르에 대한 개념이 조금씩 잡혔습니다”

당시 김 이사도 다른 게이머들과 마찬가지로 모든 군주의 엔딩을 다 보고 다시 맘에 드는 장수를 군주로 만들어 엔딩을 볼 정도로 삼국지 2의 매력에 푹 빠졌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오랜 기간동안 플레이했던 삼국지 2는 게임장르에 대한 개념정립 외에 그의 게임개발 인생에 있어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삼국지 2 이후에 게임아츠가 개발하고 시에라가 영문으로 버전업 한 젤리아드,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최신작을 발매할 정도로 건재한 페르시아의 왕자 시리즈 등과 같은 지금으로 말하면 고전명작이라고 할 수 있는 게임을 열심히 즐겼습니다.

하지만 큰 의미는 없었습니다. 제 게임인생에 전기를 마련해 준 것은 그런 게임들이 아닌 대만산 RPG였습니다”

그 때만 해도 지금과는 달리 대만이 가지고 있었던 게임개발력이 상당해 국내보다 먼저 게임개발사들이 설립되고 다양한 장르의 명작게임들이 만들어졌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김 이사의 이런 대만RPG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러운 것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판타지 풍 시뮬레이션 게임인 ‘천사제국’을 비롯해 ‘의천도룡기’, ‘신조협려’ 등 대만산 게임은 무협RPG가 주류를 이뤘고 일본 개발사들이 개발한 비디오게임을 PC버전으로 컨버팅 한 게임도 상당히 많이 발매됐기 때문에 김 이사는 그동안 모호하게 간직해왔던 게임개발에 대한 의지를 RPG장르로 굳혔다.

“그렇게 대만RPG를 접한 이후 전 거의 5년 이상을 RPG타이틀 개발에만 매달렸습니다”

이는 ‘8용신 전설’, ‘레이디안’, ‘씰’, ‘나르실리온’ 등 김 이사가 그동안 개발에 참여한 게임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개인 습작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그가 개발한 RPG는 10여 종이 넘는다고 한다. 물론 판매된 것은 크러시어드밴스와 씰 온라인을 모두 합해도 6개 밖에 되지 않는다.

김 이사는 이런 RPG타이틀 개발에 있어 자신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게임으로 대만 개발사인 소프트스타가 1991년 발매한 ‘지카의 전설’을 꼽는다.

김 이사의 개발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소프트스타의 지카의 전설은 색다른 하이브리드 세계관(판타지와 SF의 결합)을 가진 게임으로 쿼터뷰 형식의 맵 형태를 취한 것이 특징인 게임이다. RPG타이틀의 메인컨텐츠라고 할 수 있는 전투시스템은 유저들에게 큰 호응을 얻지 못했지만 중간 이벤트라든가 한편의 만화영화와 같은 엔딩화면 등 여러 가지 게임요소가 충실해 울티마 시리즈와 비견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잘 만들어진 명작이었으며 당시 대만의 게임개발수준을 잘 나타내 준 타이틀이었다.

국내에는 정식으로 수입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극히 일부 마니아를 제외하고는 접한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았다.

지카의 전설을 통해 처음 경험하게 된 쿼터뷰 맵의 매력에 푹 빠진 김 이사는 이후 개발하게 된 거의 대부분의 습작을 쿼터뷰 형식으로 제작했다.

“당시에는 쿼터뷰 방식이 PC에서 구현할 수 있는 가장 입체감 있는 표현방식이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이야 거의 대부분의 게임들이 3D로 구현되기 때문에 그런 뷰에 집착하게 되지 않지만 2D게임만을 개발했던 그 때는 그런 요소들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습작시절을 벗어나 상용게임 개발에 본격적으로 참여하게 되면서 그에게 큰 영향을 미친게임은 ‘자카의 전설’ 등과 같은 대만게임이 아닌 ‘이스’ 등과 같은 일본 RPG였다고 한다.

1995년 김 이사가 8용신 전설 개발에 참여할 때만 해도 대만RPG보다는 게임시장에는 일본RPG가 더 많이 출시됐기 때문에 할만 한 타이틀은 거의 대부분의 일본RPG였다.

이 중에서 김 이사가 손꼽는 것은 ‘이스’, ‘자나두’ 시리즈 등으로 유명한 팔콤 사의 게임들.  

“게임 내 소소한 시스템이라든가 연출 시스템과 같은 부분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며 “이는 씰과 레이디안을 개발하는데 큰 영향을 줬다”고 김 이사는 설명했다.

김 이사는 “요즘은 워낙에 게임시장이 급변하고 있다보니 여러 가지 게임들이 나오고 또 사라지고 있다”며 “그래서 그런지 예전만큼 딱히 어떤 게임에 애착이 간다던가 하는 것은 없는 것 같다”고 말한다.

RPG타이틀을 주로 개발하는 개발자지만 RPG타이틀보다는 액션타이틀을 주로 즐긴다는 김 이사가 최근 자주 플레이하는 게임은 캡콤의 간판타이틀인 ‘귀무자’와 ‘데빌메이크라이’ 시리즈. 때문에 다음 개발하는 게임에는 이런 캡콤의 액션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느꼈던 요소들이 영향을 미칠 것 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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