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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실시간 전략 시뮬레이션의 역사 제1부: RTS, 태어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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빙하기와 매머드, 그리고 체스까지

아주 먼 옛날, 빙하기 시절 우리 조상들이 살아가던 모습을 한 번 상상해 봅시다. 아마 동굴 속에 살던 원시인들은 매머드나 사나운 맹수 등의 커다란 사냥감을 잡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작전 회의를 했을 겁니다. 비록 지금처럼 화려한 모니터도 없고 성능 좋은 그래픽카드도 없는 동굴 속이었지만, 원시인들의 생존을 위해 이 작전 회의는 없어서는 안 될 의식이었겠지요. 처음에는 말로 사냥감을 잡을 전략에 대해 이야기하다, 주위에 널려 있는 동물의 뼈나 돌을 그러모아 사물을 표현하고 좀 더 정교한 전략을 세우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고 인류가 정착해 농경 사회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 ‘전략 회의’의 목표는크게 바뀌었습니다. 이제 그날 그날 먹을 사냥감에 대한 회의가 아니라, 자신의 부족이나 마을을 방어하기 위한 진짜 ‘전략 회의’가 되었겠지요. 그리고 이 회의는 자신이 속해 있는 부족의 생사를 결정 짓는 아주 아주 중요한 회의가 되었고, 회의에 쓰이는 도구들도 단순한 돌이나 뼈에서 사람을 닮은 모양의 ‘말’로 변해가기 시작했을 겁니다.

더 많은 시간이 흐르고, 인류가 문명 단계에 도달하면서 이 ‘작전 회의’는 점차 소수만 도맡아 하는 비밀스러운 것(그리고 거기에 ‘전략’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으로 바뀌어 갔습니다. 이제 평범한 사람들에게 ‘작전 회의’는 더 이상 의미가 없는 시대가 되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사람들은 이 가상적인 ‘작전 회의’를 통해 다른 사람의 지략과 대결 하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전략 게임’이 인류 생활에 본격적으로 등장했을 것입니다.

▲ 가장 유명한 전략 게임, 체스

‘전략 게임’은 오랜 시간을 거치면서 크게 발전해 왔습니다. 체스, 바둑, 장기 그리고 보드게임까지. 2천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고, ‘PC’라는 것이 등장했습니다. 이 ‘PC’라는 도구는 전략게임에 더 없이 유용한 도구였습니다. 말을 깎을 필요도 없고, 지도를 준비할 필요도 없으니까요. 단지 키보드 하나만 있으면 최고급 체스 세트를 가진 사람이 부럽지 않을 정도의 훌륭한 ‘전략 게임’을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RTS 이전에 턴 전략 게임이 있었다

PC로 RTS 게임이 등장하기 이전, 턴 전략 게임은 유일한 전략 게임의 형태였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보드게임을 들 수 있겠습니다. 20세기 중반 이후로 역사적인 전쟁을 배경으로 한 턴 전략 게임(일명 ‘워 게임’)이 보드게임으로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 진주만 침공을 위해 일본군이 시도한 워게임

이 턴 전략 보드 게임들은 체스나 바둑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어려운 난이도를 자랑했고, 진짜 ‘병사’처럼 생긴 말(‘미니어쳐’라고 합니다)을 사용했으며 엄청나게 긴 플레이 시간을 자랑했습니다. 이 턴 전략 보드 게임을 즐기기 위해서는 몇 주, 몇 달에 걸쳐 주말마다 차고에 2~4명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주사위를 굴려가며 영토를 점령해 가는 방식으로 게임을 진행해야 했습니다.

▲ 유명한 보드 게임인 'Axis & Allies: Pacific'

PC가 발달하면서 이 ‘턴 전략 보드 게임’을 PC로 이식하려는 회사가 늘기 시작했고, 실질적으로 초기의 PC용 ‘전략 게임’은 대부분 보드게임의 후계자였습니다. PC로 등장한 전략 게임은 여러 가지 이점이 있었습니다. 다수가 모일 필요 없이 PC와 대결할 수 있고, 일일히 주사위를 굴리고 미니어쳐를 움직이는 대신, PC앞에 앉아 버튼만 누르면 PC가 알아서 말을 옮겨주고 전투 결과 값을 보여주는 편리한 방식이었기 때문입니다.

▲ 동명의 영화를 소재로 한 'Wargame'

하지만 ‘턴 전략’은 어디까지나 ‘턴 전략’. 언제나 편하게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은 있었지만, PC용 ‘턴 전략 게임’의 게임 진행 속도는 여전히 느렸습니다. 게다가 전적으로 CPU의 계산에 의지해야 했기 때문에, 당시의 느린 CPU 속도로는 턴 한 번 넘기면 커피를 마시고 와도 될 정도의 시간이 걸리던 물건이었습니다.

한 수 한 수 두어야 하는 턴 전략의 특성도 게임을 지루하게 만드는데 한 몫 했습니다. 하루 종일 붙잡고 앉아야 어느 정도 ‘진행 했다’라고 부를 수 있는, 턴 전략의 느려터진 게임 진행 속도는 많은 게이머들의 불만의 요소였습니다. ‘종이 위에 글씨를 쓰거나 말을 움직이는 것도 아닌데 왜 한 수 한 수 두어야 하지?’라는 의문이 게이머들 사이에 퍼지기 시작했고, 이런 의문은 결국 기존의 전략 게임들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전략 게임을 낳습니다. 바로 RTS입니다.

RTS의 길을 개척한 ‘Stonkers’과 ‘Herzog Zwei’

1983년, 세계 최초의 RTS인 ‘이미진 소프트웨어’사의 ‘Stonkers(1983)’가 등장합니다. IBM호환 PC가 등장하기 이전 난립했던 PC들 중 하나였던 ‘ZX Spectrum’기종 용으로 만들어진 ‘Stonkers’는, 키보드와 조이스틱을 이용해 자신의 군대를 움직여 상대를 물리치는 개념의 워 게임이었습니다.

RTS의 시초라고는 하지만, ‘Stonkers’는 상당히 초라한 게임이었습니다. 당시 하드웨어의 한계 때문에 유닛의 색깔이라고 해 봤자 3색밖에 없고, 그나마 있는 유닛의 수도 극히 제한되어 있으며 버그가 이곳 저곳에 넘쳐나던 게임이었습니다. 그럼에도 ‘Stonkers’는 상당한 인기를 끌며 당시 통용되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의 판도를 영원히 바꾸어 놓습니다.

당시의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이란 육각형 모양(이걸 ‘헥스’라고 부릅니다)으로 잘게 나뉘어져 있는 맵에서 한 턴 한 턴 차례를 번갈아 가며 유닛에게 명령을 내리는 방식의 게임이었습니다. 유구한 전통을 자랑하는 놀이인 체스나 바둑과 별 다를 것이 없는 아주 아주 고전적인 형태였습니다.

이런 형태의 전략 게임은 ‘지략의 대결’이라는 전략 게임의 본질적인 재미는 있지만, 게임 진행이 너무 느리다는 것과 ‘손 맛’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런 게임들이 ‘전략 게임’으로 군림하던 시기에, 키보드와 조이스틱을 이용해 자신의 유닛을 ‘실시간’으로 움직이는 ‘Stonkers’가 등장한 것입니다.

▲ 참으로 심플한 그래픽

지루하게 턴을 기다릴 필요 없이 유닛을 즉시 움직인다라는 개념은 기존 ‘전략 게임’에 비해 게임을 전체적으로 더욱 빠르고 생기 있게 만들었습니다. 한 턴 진행하고 커피를 마시고 와도 될 정도로 긴 시간이 걸리던 기존 ‘전략 게임’에 비하면, ‘Stonkers’는 그야말로 광속의 게임 플레이였죠. 이런 점에 힘입어 ‘Stonkers’는 나름대로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었고, 이후 ‘Stonkers’를 모방한 몇몇 원시 RTS들이 나타났다가 시대의 저 편으로 사라집니다.

그러다가 1989년, ‘테크노소프트’에서 제작한 ‘Herzog Zwei’가 일본에서 발매되면서 RTS는 조금 더 현재적인 모습으로 진화합니다. ‘Stonkers’가 원시 RTS였다면, ‘Herzog Zwei’는 조금 거친 모습의 현대적 RTS에 가깝습니다. ‘어택 무브’ ‘홀드’ ‘패트롤’등의 현대적 RTS에서 사용되는 커맨드가 이미 ‘Herzog Zwei’에서 구현되었으며, 화면 분할을 통한 2인 멀티플레이까지 지원했습니다. 현대 RTS의 핵심 요소는 모두 갖춘 셈입니다.

▲ 화면 분할을 통한 2인 대전도 지원했다

하지만, 이런 훌륭한 부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말하면 ‘Herzog Zwei’는 실패했습니다. 패드 조작(!)의 불편함, 느려터진 진행 속도, 잘못된 플랫폼(세가 메가드라이브/제네시스), 제작사인 ‘테크노소프트’의 마케팅 부족 등의 악재가 겹치면서 큰 인기를 얻지 못하고 그대로 묻혀버린 것입니다. 그래도 ‘Herzog Zwei’에 도입된 많은 개념들이 현대 RTS까지 내려오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Herzog Zwei’의 실패가 완전한 실패는 아닌 셈입니다.

‘듄2’, RTS의 길을 열다.

1992년이 되자 PC게임 시장의 구도는 크게 바뀌어 있었습니다. 온갖 잡다한 PC 플랫폼이 서로 자기가 좋다고 다투던 80년대가 가고, IBM 호환 PC로 천하통일 된 90년대에 접어들자 PC 성능의 진보는 점점 더 빨라지기 시작했습니다. PC의 진보와 맞물려 온갖 장르의 게임들이 쏟아져 나왔고, 이런 가운데 마침내 진짜 ‘RTS 게임’이 등장합니다.

바로 웨스트우드사의 ‘듄2’ 입니다. 동명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듄2’는, 모래 행성 ‘듄’을 차지하기 위해 다투는 세 가문의 전쟁을 소재로 한 RTS 게임입니다. 전편인 ‘듄1’이 다른 회사에서 어드벤처 게임으로 나왔던 반면, ‘듄2’는 당시로서는 혁신적인 장르였던 RTS로 등장하게 됩니다.

▲ 마우스 커서가 보이는가?

다른 그 무엇보다도, ‘듄2’가 RTS 장르에 끼친 가장 큰 영향은 바로 ‘마우스’를 이용한 유닛 컨트롤의 도입이었습니다. 당시만 해도 PC 운영체제로 대부분 도스를 사용하던 때라, 주된 입력 방식은 키보드를 이용한 커맨드 입력이었습니다. ‘C:>_’로 표시된 프롬프트에 일일히 명령어를 쳐서 PC를 사용하는 방식이었죠.

‘마우스’는 ‘트랙볼’ 등의 다른 입력 도구와 마찬가지로 특별한 작업에나 쓰이던 입력 도구였습니다. 사실 마우스를 지원하는 게임 자체는 당시에도 드물지 않게 있었지만, 대부분의 게임에서는 여전히 키보드를 주된 입력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었고 ‘전략 게임’의 경우에는 더 했습니다. 심지어 일일이 명령어를 쳐 게임을 즐기는 것이 즐겁다고 여기는 게이머도 있었던 시절입니다.

▲ RTS게임에 지도를 처음 도입한 것도 '듄2'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듄2’는 과감하게 전략 게임에 마우스를 도입했습니다. 그리고 이 ‘듄2’와 ‘마우스’가 RTS의 역사를 영원히 바꾸어 놓습니다. 먼저, 마우스가 ‘듄2’에 도입되면서 전략 게임에 최초로 ‘컨트롤(micro/macromanagement)’의 개념이 생깁니다. 같은 조건이라면 게이머의 조작이 승부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턴 전략’과는 달리, 아케이드 게임과 유사하게 ‘컨트롤이 전략 게임의 승부를 가른다’라는 개념이 생겨난 것입니다.

마우스는 게임 화면의 배열에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웨스트우드 RTS 게임’의 상징처럼 되어버린 오른쪽 생산 패널, 좌측 게임 화면 구도가 처음 등장한 것도 ‘듄2’때입니다. 마우스로 오른쪽 생산패널에 있는 건물이나 유닛을 클릭하면 패널 안에서 생산 과정을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듄2’ 이후 이 화면 배열은 10년 가까운 기간 동안 RTS의 표준 배열로 자리잡게 됩니다.

이외에도 현대 RTS의 기본적인 요소가 처음 자리잡은 것이 바로 ‘듄2’때 입니다. 자원 채취 시스템, 기지를 기반으로 한 유닛 생산, 테크 트리의 등장 등, ‘듄2’ 이후로 나온 RTS 게임 중 ‘듄2’의 영향을 받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리고 이 ‘듄2’에서 등장했던 개념들은 이제 새로운 후계자들을 통해 한층 더 발전됩니다.

중소기업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의 일격 ‘워크래프트’

‘듄2’의 이념(?)을 가장 먼저 이어받은 회사는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였습니다. 당시 많은 게이머들과 회사들이 ‘듄2’의 혁신적인 모습에 감동을 받았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등장한 ‘듄2’가 게임업계를 뒤흔들어 놓은 것입니다. 그리고 ‘듄2’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은 회사 중에 앞으로 웨스트우드 최고의 라이벌이 될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가 끼어 있었습니다.

원래 RPG를 만들었던 웨스트우드와 비슷하게,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 역시 전략 게임과는 별 인연이 없던 회사였습니다. 원래 상호는 ‘실리콘 & 시냅스’로 1991년 설립된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는, 게임 역사상 최고로 거지 같은 퀘스트로 유명한 RPG인 ‘J.R.R. 톨킨의 반지의 제왕 1편’이나 마작 게임을 만들던 중소기업(?) 이었습니다. (EA의 하청을 받아 게임을 만든 적도 있습니다) 뭐, ‘길 잃은 바이킹’ 같은 명작도 ‘가끔’ 만들어 냈지만 실시간 전략은 손도 대 본적이 없는 회사였죠.

그런 블리자드가 처음으로 제작한 RTS인 ‘워크래프트: 오크와 인간’은 SF 배경이었던 ‘듄2’와는 달리, ‘워크래프트: 오크와 인간’은 독자적인 세계관에 기초한 RTS였습니다. 그러나 ‘듄2’의 영향력은 대단했습니다. 언뜻 보기에 전혀 달라보이지만, ‘워크래프트: 오크와 인간’역시 ‘듄2’의 영향을 크게 받은 RTS였으니까요. ‘듄2’에서 정형화 된 RTS의 공식인 ‘채집하고 생산하고 쓸어버린다’는 ‘워크래프트: 오크와 인간’에 그대로 계승되었고, 게임 속을 들여다보면 판타지 껍질만 썼을 뿐 ‘듄2’와 아주 다른 게임이라고 말하긴 어려웠습니다.

‘듄2’의 영향을 많이 받긴 했지만, ‘워크래프트: 오크와 인간’은 ‘듄2’의 단순한 모방작은 아니었습니다. 생산에 필요한 자원이 돈과 나무의 2가지로 분할된 점, (아직은 미숙하지만) 유닛 간의 뚜렷한 상성 관계, 네트워크를 통한 안정적인 멀티 플레이의 지원 등은 ‘워크래프트: 오크와 인간’ 만의 특징이었고 나아가 앞으로 나올 ‘워크래프트’ 시리즈의 특징이 될 요소들이었습니다. 이런 독특한 요소들 때문에 ‘워크래프트: 오크와 인간’은 게이머와 평론가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한 예로 ‘웨스트우드도 상상 못 할 게임이 나왔다’라는 반응도 있었을 정도니까요.

그렇지만 ‘워크래프트: 오크와 인간’은 큰 상업적 성공은 거두지 못했습니다. AI의 거지 같은 길 찾기(Pathfinding)능력 때문에 유닛 컨트롤이 상당히 어려웠고, 게임 자체도 조금 느릿하게 진행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블리자드사는 ‘워크래프트: 오크와 인간’을 통해 충분한 자신감을 얻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웨스트우드에 맞서는 가장 강력한 라이벌로 떠오르게 됩니다.

원조의 저력을 보여주마 ‘커맨드 앤 컨쿼: 타이베리안 던’

‘워크래프트’의 등장은 웨스트우드를 크게 자극했습니다. 웨스트우드사 역시 ‘듄’세계관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체 세계관을 배경으로 한 RTS 게임을 기획했고, 마침내 1995년 8월 게임 계의 영원한 전설이 탄생합니다. 저 유명한 ‘커맨드 앤 컨쿼: 타이베리안 던’의 등장입니다.

‘커맨드 앤 컨쿼: 타이베리안 던’은 가상 역사 상의 1995년을 배경으로, UN을 중심으로 한 군사 정치 연합체인 ‘GDI’와 신흥 종교 단체인 ‘NOD’가 외계에서 온 의문의 물질인 ‘타이베리움’ 광석을 놓고 벌이는 대결을 그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워크래프트’의 판타지에 대항하는 SF 세계관의 등장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커맨드 앤 컨쿼: 타이베리안 던’은 모든 면에서 혁신적이었고, 선구자적인 존재였습니다. 조금 과장하자면, 현존하는 거의 모든 RTS가 이 ‘커맨드 앤 컨쿼’의 그림자 하에 있다고 해도 될 정도입니다. 앞에서 언급했던 ‘듄2’의 혁신적인 요소들이 ‘커맨드 앤 컨쿼’를 거치며 크게 진화했으며, 이 요소들은 현재의 RTS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커맨드 앤 컨쿼’은 전작인 ‘듄2’의 개념을 자신들의 세계관에 맞춰 한층 더 발전시켰습니다. 자원이 곧 독이 될 수도 있는 ‘타이베리움’의 존재, ‘GDI’와 ‘NOD’라는 2진영 구도와 거기에 맞춰 상성이 짜인 건물과 유닛들, 조잡한 CG 대신 실제 배우들을 기용하여 연출한 ‘풀 모션 비디오’, 수퍼 무기 시스템-‘이온 캐논’과 ‘핵미사일’-의 도입, 그리고 도스 게임답지 않은 미려한 그래픽 등, 이야기 하자면 끝이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커맨드 앤 컨쿼’가 후세의 RTS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부분이라면 뭐니뭐니해도 ‘그룹 지정’의 도입입니다. 선택 유닛에 제한이 있는 ‘워크래프트’ 방식과는 달리 화면 내의 모든 유닛을 그룹으로 지정할 수 있었고, Ctrl 키와 숫자키의 조합으로 빠른 호출까지 가능했으니 실로 혁신적인 기능이었습니다.

‘그룹 지정’이 RTS에 도입되면서 RTS의 게임 플레이 속도는 한층 더 빨라지고, 이전까진 힘들었던 대규모 물량전이 RTS에 등장하게 됩니다. 탱크 100대가 서로 맞붙어 전차전을 벌이는 장면을 RTS에서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 ‘그룹지정’의 등장과, IPX, 모뎀 등을 통한 강력한 멀티플레이를 지원하면서 ‘커맨드 앤 컨쿼’는 엄청난 인기를 끌었습니다.

‘커맨드 앤 컨쿼’의 대성공은 단순히 한 게임의 성공이 아니었습니다. 1세대 RTS의 대표주자 격인 ‘커맨드 앤 컨쿼’의 성공과 함께 RTS 장르는 PC게임에서 가장 중요한 장르로 떠오르기 시작했고, RTS 장르는 이후 ‘워크래프트2’와 ‘레드얼럿1’으로 이어지는 RTS의 황금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다음 편 예고

[특별기획]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의 역사 제2부: 좋았던 한 시절 '워크래프트2'부터 웨스트우드의 최후까지

PC게이머라면 너무나도 행복했던 그 시절, '워크래프트2'와 '레드얼럿1'의 한 판 대결! 중소기업 블리자드의 급성장과 시대를 잘못 타고나 사장되어 버린 어떤 RTS의 비극, 그리고 RTS의 최고봉이었던 웨스트우드의 최후까지. 실시간 전략시뮬레이션의 역사 제2부 Coming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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