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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뿌리] 북유럽 신화로 살펴 본 스타크래프트의 유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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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가 현대에 와서 상품으로 팔리는 일은 새삼스럽지 않다. 특히 게임분야는 신화의 상업적 가치를 일찍부터 주목하고 있었다. 전 세계의 수많은 신화 중 용맹스런 전사들이 많이 등장하는 북유럽 신화는 게임을 만드는 이들에게 있어 ‘황금어장’으로 불릴만하다. 국민게임으로 불리는 ‘스타크래프트’에도 이런 북유럽의 향기가 짙게 스며들어 있다. ‘스타크래프트’의 형제 사이인 ‘워크래프트’ 시리즈의 스토리나 설정의 많은 부분이 북유럽 신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은, 블리자드의 개발자들이 얼마나 ‘북구의 이야기’에 심취해있는지 잘 알 수 있다.

‘스타크래프트’에서 북유럽 신화의 흔적을 가장 잘 찾아볼 수 있는 곳은 인간을 닮은 테란 종족이다. 테란의 공중 유닛인 ‘발키리’는 게르만 족이 숭상하던 전쟁의 신 ‘오딘(Odin)’의 부하 신(神) ‘발키리(Valkyrie)에서 유래됐다. 북유럽 신화에서 발키리는 처녀 신으로 등장하며 지상세계의 전쟁 중에 발생한 전사자(戰死者)들을 발할라궁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발키리’는 지상에서 천상으로의 ‘비행’이라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 그 때문인지 유독 날것에 ‘발키리’의 이름이 많이 붙는다.        

실제로 ‘스타크래프트’에 등장하는 발키리 조종사는 여성이며, 독일식 악센트가 들어간 영어 혹은 독일어를 구사한다. 또 테란의 유닛 중 하나인 시즈탱크 조종사가 가끔씩 흥얼거리는 가락은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겐의 반지’ 속 ‘발키리의 비행(The Ride of Valkyrie)’이다. ‘발키리의 비행’은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1979년 작 영화 ‘지옥의 묵시록’의 헬리콥터 공습장면에서 쓰인 바로 그 곡이다. 웅장함이 느껴지는 곡의 분위기는 공격적인 진용을 갖춘 편대 비행의 모습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발키리 상

▲ 테란 유닛 발키리

▲ 바로 이 장면에서 '발키리의 비행'이 배경음악으로 쓰였다

▲ 헬기공습 도중 중요한 부위를 다칠까봐 헬멧을 깔고 앉았던 18세의 로렌스 피쉬번은 후에 인류를 구하는 영웅으로 성장(?)한다. 로렌스 피쉬번-매트릭스(좌), 지옥의 묵시록(우)

‘스타크래프트’의 맵에서도 북유럽 신화를 발견할 수 있다. 비프로스트맵은 북유럽 신화에 등장하는 인간세계와 신들의 세계를 이어주는 무지개 다리 ‘비프로스트(Bifrost)’에서 명칭을 따 왔다.  비프로스트 맵은 종족밸런스 면에서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 맵이다. ‘퍼펙트 테란’ 서지훈이 이 맵에서 좋은 성적을 거뒀다. 홀오브발할라 맵은 ‘황제’ 임요환이 탄생한 맵이다. ‘홀오브발할라(Hall of Valhalla), 즉 ‘발할라 궁전’은 북유럽 신화의 주신(主神) 오딘(Odin)이 머무는 곳이며 발키리가 전사자를 인도하는 곳이기도 하다. 한편 라그나로크맵은 북유럽 신화에서 신들의 멸망을 불러온 전쟁 ‘라그나로크(Ragnarok)’에서 유래됐다. 이 맵은 테린에게 유독 유리한 맵으로 알려져 있으며 따라서 극악의 밸런스를 가진 맵으로 악명이 높다. 마지막으로 오딘 맵은 북유럽 신화의 주신인 ‘오딘(Odin)에서 명칭을 따 왔으며 라그나로크 맵을 기초로 제작되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위의 예로 든 맵 대부분이(오딘 제외) 모두 한국인 맵 제작자 김진태 씨가 만든 것이란 것이다. 현재 한국 e스포츠협회 경기국 소속(심판)인 김진태씨는 북유럽신화의 마니아로 알려져 있다. 심지어 그의 배틀넷 ID는 ‘[Ragnarok] Valkyrie’.  때문에 그가 제작한 맵들에 북유럽 신화가 스며든 것은 자연스럽다. 위의 맵 중 유일하게 김진태씨의 작품이 아닌 오딘 맵은 또 다른 ‘스타크래프트’ 맵 제작자인 변종석 씨가 김진태 씨에게 헌정한 맵으로 알려져 있다. ‘블리자드의 개발진들과 한국의 맵 제작자들이 북유럽 신화로 통(通) 했다.’라고 하면 너무 과장된 해석인가?

아직 출시되지 않은 ‘스타크래프트 2’에서도 북유럽 신화는 계속된다. 테란의 새로운 유닛인 토르는 게르만 족의 신 ‘토르(Thor)’에서 유래됐다. 신화 속의 토르는 ‘묠리느’라는 철퇴를 가지고 거인족에 맞서는 용맹하고 우직한 이미지의 신이다. ‘스타크래프트 2’에서 토르는 테란의 지상 유닛 중 가장 강력한 공격력을 자랑한다. 토르는 기본적으로 250mm의 포를 이용해 적을 공격하며, ‘토르의 망치(묠리느)’라는 스킬(분자광선)을 사용해 보다 강력한 공격이 가능하다.

신은 아니지만 ‘스타크래프트’ 시리즈에 북유럽 신화가 반영된 예는 테란 유닛 바이킹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바이킹(Viking)은 중세(8세기말~11세기초) 북유럽 쪽 해상을 장악했던 집단을 통칭해서 일컫는 명칭인데, 북유럽 신화에 끊임없이 등장하는 존재이다. 바이킹은 항해를 하다 육지를 만나면 배를 지고 진군했다는 설이 있을 정도로 빠르고 유연한 이동이 가능한 집단이었다.

‘스타크래프트 2’의 바이킹은 공중과 지상 양쪽 모두에서 공격이 가능한  유닛으로 등장한다. 다양한 전투방법과 유연한 이동은 과거 유럽 해상을 주름잡았던 바이킹의 이미지와 정확히 일치한다. 여기서 또 한 가지! 블리자드의 전신인 실리콘시냅시스 사의 첫 작품이 바로 ‘길 잃은 바이킹(The Lost Viking)’이란 사실을 아는가? 블리자드와 북유럽의 인연을 질기고도 길다.  

   ▲ 토르의 망치로 적을 공격 중인 토르             

▲ 공중전과 지상전이 모두 가능한 바이킹

▲ 추억의 게임 길 잃은 바이킹  

▲ 이런 것이 나오길 기대하는 사람은 기자뿐만이 아닐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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