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치크센트미하이의 프로우 이론
많은 놀이 이론 중에 유명한 이론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미국의 사회심리학자인 치크센트미하이가 제창한 '프로우 이론'입니다. 비디오 게임이라는 놀이와 현대문명의 관계를 고찰할 때 시사하는 바가 큰 연구입니다.
놀이와 일을 대립되는 개념으로 간주하지 않은 것이 이 이론의 커다란 특징입니다.
즉, '놀이는 즐거운 것, 일은 힘든 것'이라는 고정관념에 의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일에 도취되는 경우가 있듯이 일도 종종 즐거운 것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의무적인 가족 서비스로서의 놀이(레저)를 종종 고행으로 느끼는 것처럼 놀이가 항상 즐겁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프로야구 선수나 게임 디자이너처럼 본래는 놀이에 속하는 활동을 일로 선택한 경우에도 놀이를 놀이로서 즐길 수 없는 경향이 있습니다. 놀이, 일이라는 이분법이 아니라 '외적인 보수에 의한 만족'과 '내적인 보수에 의한 즐거움'이라는 이분법이 중요하다고 치크센트미하이는 지적했습니다.
금전, 지위, 명예 등 외적인 보수를 기대한 활동에서 인간은 자유나 해방감을 좀처럼 맛볼 수 없습니다.
그러나 타인에게 어떻게 평가받는가와 상관없이 자신이 원해서 하는 활동에서는 '즐거움'이라는 커다란 내적보수를 얻을 수 있습니다. 타인에게 강요받는 일 없이 자신이 납득하고 선택한 활동에서는 일도 놀이도 내적인 보수를 끌어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자기목적 경험' 중 나를 잊고 몰입하고 있을 때의 감각을 치크센트미하이는 '프로우'한 상태에 있다고 부릅니다. 게임 등에 '미친다, 열중한다'는 말과 '프로우'라는 용어는 비슷한 여운을 가지고 있습니다.
왜 산에 오르는가, 거기에 산이 있기 때문이다. 왜 게임을 하는가, 재밌기 때문이다. 열중의 감각, 프로우의 감각을 맛보고 싶어서 무의미하다고도 할 수 있는 활동에 사람은 빨려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유를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 활동이 만들어낸 세계 자체가 즐겁고, 자신이 가진 재능(테크닉)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고 결과로서 기능이 향상되는 것이 즐겁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프로우한 경험 그 자체를 추구하는 것이며 거기에서 생기는 부수적인 보수 때문이 아닙니다. 일에서도 프로우는 이끌어낼 수 있지만 놀이는 가장 쉽게 프로우한 감각을 맛볼 수 있는 활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프로우를 느끼는 활동에는 두 가지 성격이 있다고 그는 분석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발견, 탐색, 문제해결, 수수께끼 풀기, 자신의 한계극복이라는 '미지의 것에 대한 도전'의 기쁨입니다. 또 하나는 '다른 사람과의 친밀한 관계에서 생기는 따뜻한 감정'입니다.
게임 속의 과제에 '도전'하고 함께 즐긴 사람(혹은 게임 속의 가상적 인격=캐릭터)과 우애가 깊어집니다. 게임은 놀이의 정수를 응축해, 일상생활 속에서 쉽게 프로우를 이끌어내기 위한 장치라고 할 수 있습니다.
2. 불안과 권태 사이에서
최근에는 컴퓨터도 웃으면서 일하기 위한 도구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얼마 전까지는 다음과 같은 전형적인 이미지로 이야기된 경우가 많았습니다. 컴퓨터는 냉정하다, 관리를 위한 도구다. 그러나 게임기는 따뜻하다, 기쁨을 위한 도구다. 게임기를 타락을 위한 도구라고 백안시하는 사람도 많습니다만 컴퓨터는 그 이상으로 수상한 도구였던 것입니다.
왜일까요? 저는 '프로우 이론'과 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컴퓨터의 바탕에는 사이버네틱스, 즉 인간 기계론적인 사고방식이 잠재되어 있습니다. 데이터를 기억시키고 필요한 조건만 주면 언제나 변하지 않는 반응을 돌려줍니다. 그런 충실한 기계가 컴퓨터입니다.
그것을 잘 다루는 인간에게도 기계와 같은 정확함이 요구됩니다. 어쨌거나 하나를 빠뜨리는 것만으로도 정상적으로 동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계가 인간의 하인이 아니라 인간이 기계의 하인입니다. 그런 분위기가 감돌고 있었습니다. 극히 소수의 ‘도전자(프로그래머)’를 제외하고는 도저히 프로우를 느끼는 대상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같은 뿌리를 가지면서도 게임기는 다릅니다. 거기에는 '즐거움'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슈팅 게임에서 인간 기계처럼 반사적으로 버튼을 계속 눌러도 거기에는 도전할 만한 '목표' 가 설정되어 있습니다. 항상 프로우를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컴퓨터 사회 속에서도 게임분야가 가장 빨리 거대하게 산업화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치크센트미하이는 프로우를 느끼는 상태의 모델을 제기했습니다. 도전 레벨이 자신의 능력보다 커지면 결과적으로 긴장감이 생기고, 그것이 불안으로 이어집니다. 역으로 자신의 능력이 요구수준을 상회하면 '무료'나 '권태'가 생깁니다.
도전 레벨과 기능이 조화를 이루는 상태가 되면 비로소 '프로우' 상태가 생긴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마 컴퓨터는 지금까지 불안의 영역에 위치해 있었다고 할 수 있지요. 덧붙여 말한다면 이 '프로우' 의 모델은 게임의 난이도 설정문제와도 관계가 있습니다. 게임이 너무 어려워도, 너무 쉬워도 프로우를 느낄 수 없는 것입니다.
20번을 계속해도 클리어할 수 없다면 게임을 계속할 의욕이 사라져 버립니다. 너무 쉽게 클리어할 수 있어도 '미적지근하고 무료한 게임'으로 간주되어 버립니다.
그 적당한 조절이 절묘하게 설계된 게임이 바로 명작인 것입니다.
3. 사람은 왜 '미치는' 것일까?
게임에 '빠지다'. 언제부턴가 게임에 몰입하는 것을 '미친다'고 부르게 되었습니다.
치크센트미하이가 말하는 '프로우'를 우리말로 해석할 경우 가장 적절한 것이 미치는 것일 겁니다.
그는 '프로우' 경험의 특징으로서 다음의 다섯 가지를 지적했습니다.
첫 번째 '주의의 집중'입니다. 프로우 상태에 있는 사람은 모든 감각을 동원해 예민해져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자아의식의 상실'로 나를 잊어버린다는 특징입니다. 행위에 몰두하고 있는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의식하기 시작하면 프로우는 방해받는다고 그는 설명합니다. "어, 내가 지금 뭐하고 있는 거야"라고 생각한 시점에서 급속히 제정신이 들게 됩니다. 평상시의 자신이 없어져 버렸기 때문에 '하찮은 자신을 초월한다', '커다란 세계를 느낀다'고 하는 경험이 가능해집니다.
세 번째 '현실의 단순화'입니다. 즉, 규칙의 명확화입니다. 통상적인 생활 속에서 사람은 종종 모순을 포함한 행동의 선택이 불가피해집니다. 그러나 프로우 경험 속에서는 무엇이 올바른가,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를 명확하게 알 수 있고 목적과 수단이 논리적으로 정리되어 있고, 모순 때문에 괴로워하는 일은 없다고 그는 지적합니다. 그래서 모순을 느끼기 시작하면 프로우는 사라지는 것입니다.
네 번째 '시간의식의 동요' 입니다. 프로우 경험 중에는 시간이 평소보다도 빨리 경과하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늦게 느껴지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10분만 할 작정으로 시작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까 아침이 되었다'는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다섯 번째 '환경의 지배' 입니다. 명확한 목표를 찾아내어 자신의 기능을 총동원해서 대상에 몰두하고 적절한 기능을 향상시킴으로써 주어진 환경을 지배해가는 감각이야말로 프로우라고 그는 지적합니다.
게임 플레이어가 게임에 빠져드는 동기는 이 다섯 가지로 집약됩니다. 그는 암벽등반가, 댄서, 체스 플레이어, 외과의사 등 '자기목적' 활동에 전념하는 사람들로부터 면밀한 청취조사, 심리분석을 거듭한 결과 프로우의 구조, 즐거움의 구조를 모델화했습니다.
그리고 '큰 프로우'와 '작은 프로우'가 있다고도 지적합니다. '큰 프로우'란 얼마간의 체계를 가진 경험입니다. '작은 프로우'란 '혼잣말을 한다', '콧노래를 부른다', '낙서를 한다', '뭔가를 가지고 논다' 등 일상생활 속에서 무심코 행하는 무목적의 행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는 상상적, 시청적, 구순적, 신체운동적, 창조적, 사교적이라는 여섯 가지의 장르를 들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작은 프로우'를 금지하면 인간은 질식해버리며, '큰 프로우'는 '작은 프로우'가 누적된 것이라고 지적합니다.
컴퓨터에는 현실을 모방하고 재구성하는 '시뮬레이터'로서의 기능이 있습니다. 대소를 불문하고 프로우를 느끼는 요소를 재현하고 응축하는 것. 거기에 비디오게임에 열광하게 되는 이유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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