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별별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대며 ‘목에 호미가 들어와도 안하리라’ 맹세했던 결혼이라는 것을 하기 위해서 상견례도 하고 날짜도 받고 예식장도 잡았다(“따님을 미친 듯이 사랑하오니 제발 이 결혼 허락해 주십시오!”라는 나의 표정연기는 지금 다시 돌려봐도 올드보이의 최민식 저리가라다).
그간의 나의 품행에 무슨 오류가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나의 결혼을 순수한 액면 그대로 믿지 않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고 (“저런, 어쩌다가” “너 사고쳤냐?” 라는 반응이…) 절대다수의 유부남들은 입에 거품을 물고 절대 결혼하지 말라고 숫제 협박을 했다. 극소수의 무리들만이 “축하한다. 잘 살아라”라는 류의 말을 해줬다(필자 김모씨는 “축하한다”고 이야기 해준 사람들은 별로 나를 친하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우겼다).
결혼할거면 아예 자신과 절교를 하자는 극렬 반대자 중 만화가이자 PAPER라는 잡지사에 근무하는 유부남 김모씨(본명: 김양수) 주장은 이렇다.
“죽을 때까지 점점 숫자가 늘어나는 백수들 벌어먹여 살릴 자신 있어? 유부남은 소년가장이랑 다를 바가 하나도 없다니까. 남자한테 100% 손해라고…”
글쎄 뭐 소년가장이 되었든 앵벌이가 되었든 돈개념 없는 나보다야 알뜰하게 쓰지 않을까…
박모, 양모, 최모, 석모 등도 한마디씩 거든다.
“별로 친하지도 않은 인간들이 반말 찍찍하면서 이거해라 저거해라 난리치는데다가
애나 어른이나 용돈 뜯기 바쁘다고. 정기적으로 삥뜯기는 기분이라니까”
“유부남은
소속만 커플부대지 사실은 솔로부대라구. 3개월만 지나봐. 마누라하고 어디 같이
나가고 싶나”
“내가 주식하다가 망했잖냐. 지난 2년간 내가 투자한 거 중에서
2배로 불어난 건 마누라 살뿐이라고. 살 뺄 생각은 안하고 맨날 새옷 타령이지”
“왜
호도과자를 천안에서만 먹어야 하는 건데?”(아직도 무슨 뜻인지 잘…)
진심으로 날 아끼는(?) 너희들의 충언은 눈물겹다만, 나도 이제 아들 낳고 빨리 야구시켜서 노후를 편하게 보내야 하지 않겠냐. 니네가 포기하고 웃으면서 보내줘라… 고 하고 집에 가려는 순간,
“흥, 결혼하면 게임이나 할 수 있을 것 같아?”
응? 이게 뭔 소리람?
“으, 응? 뭐? 왜?”
“울 마누라는 PS2나 Xbox게임이 5천원짜리 인줄 안다고. 게임하나에 5만원이라는
걸 알면 날 죽이려 들걸.”
“장금이나 그 왜 마누라 죽는 드라마 볼 때는
하루 종일 TV 켜놓고 살면서 내가 플스 켜면 10분도 안돼서 하루 종일 게임만 하냐고
소리지른다니까”
“청소기 안 돌리고 게임하면 맞는다고… 내가 예전에는 맨날
밤새면서 하이히트 10 시즌 돌렸잖아? 근데 이제는 선발투수가 규정이닝도 못 채우고
꺼야 한다니까… ”
“일요일 오전에는 그 망할놈의 대청소가 있는 날이고 오후에는
그 빌어먹을 할인매장 가야해”
“휴일날 운전수 해주고 가방이랑 옷 들어주고
외식하고 눈치 슬슬 보면서 기분 최고로 좋다 싶을 때 ‘게임하나 사도 돼?’라고
물어봐야 하는 내 인생 니가 알아?”
그렇다. 결혼하기 전에는 자칭 타칭 '대한민국 열혈게이머’였던 그들은 차마 필설로는 형용할 수 없는 비굴한 게임인생을 살며 목숨을 부지해 나가고 있던 것이었다.
그래도 나는 게임이 밥벌이 수단인데… 너네하고는 좀 경우가 다르지 않느냐? 일이라고 하면서 하면 뭐라 안 하지 않을까?
“여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게 게임이고 두번째로 싫어하는 게 회사일 집에까지
가져오는 거지”
“암, 그렇고 말고. 일하느라 늦게 오면 ‘무심한 인간’ 되는
거고 일찍 오려고 집에 일 가져오면 ‘무능한 인간’ 되는 거야”
내 여자친구는 결혼해서 게임해도 뭐라 안한다고 분명히 했었거든?
“나도 그랬었지”
“나도”
“나도”
“나도”
저 증언들에 등장하는 여인들의 모습을 가만히 오버랩 시켜 본 결과 내 결혼생활과 별다른 차이가 있을 것 같지 않다는 공포가 엄습했다. 그렇다면 뭔가 해결책이 있어야 하는데…(아 씨바 이거 물러달라고 해야 하나… 최민식도 이미 써먹었는데…)
이쯤에서 우리는 게임과 결혼생활을 동시에 잘 꾸려나가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모게임잡지 정모 기자의 생생한 Live 육성 카운셀링을 들어볼 필요가 있다.
“취미를 공유하면 돼요. 마누라가 게임에 흥미를 붙이도록 쉬운 게임부터 차차 어려운게임으로 유도하고. 마누라 전용 컴퓨터도 한대 더 사주고 온라인게임 하고 싶다고 하면 계정도 끊어주고… 같이 멀티게임도 하고… ”
아, 그런 좋은 방법이? 취미를 공유하는 좋은 방법이 있었구나! 이것이야 말로 일석이조, One stone two bird, 일타쌍피, 도랑치고 가재잡고, 마당쓸고 돈줍고, 누이좋고 매부좋고, 마누라 죽고 보험금 타는 경우가 아니겠는가? 정말 그렇게 하면 슬기로운 게임라이프가 가능하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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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게임을 할 수 있다니..." 마누라의 눈을 피해 거리로 게임하러 나온 유부남들(맨 왼쪽 사나이의 눈빛에 주목하라) |
“뻥이야 선배. 씨알 먹히는 소리를 해. 일요일 날 하루 종일 게임하고 있으면 밤에 죽어. 특히 애들 앞에서 피튀기는 게임하면 난리나. 낮에 죽도록 쇼핑 돌아다니고 눈치 슬슬 보면서 슬그머니 컴퓨터나 게임기 켜는 거지. 정말 하고 싶을 때는 내일 아침까지 게임하면서 스크린샷 안 찍어가면 회사 짤린다고 뻥치는 거지”
얼마전까지 나의 관심사는 결혼 후에 얼마나 빨리 주택 융자금을 갚을까, 어떻게 10억 재산을 만들어볼까, 어떻게 아기를 잘 낳아서 훌륭하게 잘 키워볼까, 어떻게 양가부모님께 효도를 해 잘난 사위 얻었다는 소리를 들어 볼까 하는 ‘세속적인’ 것이었다. (이런 것들은 사실 여자가 다 해야 하는 거 아닌가 -_-;). 그러나 그날 이후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어떻게 하면 결혼 후에도 게임을 집에서 큰소리치며 떳떳하게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한달에 게임타이틀을 5개 이상 살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일요일 하루를 온전한 나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까 하는 ‘탈속의’ 경지에 해당 것이다(아 이글 색시가 보면 큰일 나겠는데). 심각하게 몰염치하고 무심하고 무능하고 무책임까지 겸비한 경우이나 대한민국 열혈게이머 한명을 두번 죽이는 일이 되지 않도록 나름대로 잔머리를 열심히 굴리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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