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모게임업체 관계자와 만났을 때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영등위의 심의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그 관계자는 “온라인게임개발업체가 영등위에 항의를 하는 것은 무의미한 짓이다. 영등위는 어떤 자체 오류도 ‘청소년 보호’라는 논리 하나로 버틸 수 있다”고 말했다.
얼마전 각매체의 게임담당기자들과 영등위 소위원들의 간담회가 열렸다. 그날 이런 저런 오고간 말들은 많지만 영등위 주장의 전체적인 내용은 “절차상의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우리는 등급제를 유지함으로써 청소년을 보호하고 있다”는 소위원회 의장의 발언으로 요약할 수 있다.
영등위의 입장을 그대로 옮기면 “온라인게임업체들이 돈을 더 긁기 위해서 자꾸 선정적이고 사행적인 게임을 만든다. 우리는 이를 좌시할 수 없기 때문에 18세나 등급보류 등으로 규제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말을 해석하면 영등위가 최근 MMORPG나 기타 온라인게임에 줄줄이 18세 등급을 내려 계속 규제강화의 길을 걷는 것은 단순히 ‘다크엘프의 속옷이 보이네 안 보이네’ 라는 표면적인 이유 때문이 아니다. 사회 문화적으로 개방과 탈보수화에 가속 페달을 밟는 추세에 급브레이크를 밟아보자는 다분히 의도적인 시도인 것이다.
물론 어떤 사회든 사회를 건전하게 만들 장치는 반드시 필요하다. 큰 사회든 작은 사회든 전체조직에 해가 되는 행동을 하는 부류에 대해서는 사회의 구성원들이 사전에 약속한 바대로 적절한 규제나 징벌을 가하는 것이 타당하고 또 지금까지 인류 역사상 대부분의 사회는 그런 방식으로 유지되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구성원이 그같은 규제에 동의를 하는 것은 그런 규제나 징벌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적용되고 규제의 기준이 명확하며 규제를 내리는 당사자가 공공성과 윤리성을 스스로 확보하고 있을 때라는 조건이 붙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지금 영등위의 심의가 과연 공공성과 윤리성, 나아가서 정당성을 확보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리니지 2때문에 영등위의 심의문제가 표면으로 불거진 것이지 사실은 ‘울티마 온라인’이나 ‘배틀렐름’ 등 이전부터 영등위의 원칙없는 갈팡질팡 심의는 늘 문제가 되어왔다.
업체들의 불만도 여기에 있다. “18세이용가 게임이라면 수용하겠다. 그렇지만 왜 18세이용가인지 이유라도 밝혀달라”는 것이다. 리지니 2의 예에서 보듯 영등위가 18세이용가의 이유로 내세운 논리는 궁색하기 짝이 없다. “1차 심의 때는 다크엘프가 없었다”고 우기다 망신을 당한 것은 그렇다고 쳐도 녹취가 되고 있는 기자간담회에서도 “홈페이지에 각 게임에 대한 등급 사유를 적어놓았는데 업체가 안 찾아보고 영등위만 탓한다”는 거짓말도 서슴지 않았다. 그나마 사회적인 이슈가 되고 있는 리니지 2의 상황이 이럴진대 다른 온라인게임의 예는 말할 것도 없다. 내내 전체이용가로 서비스하던 온라인게임이 어느날 갑자기 18세이용가 등급을 받고도 그 이유는 전혀 들을 길이 없다.
대부분의 온라인게임개발업체의 주장은 일반대중에게 알려진 것처럼 “심의를 받지 않고 우리 맘대로 게임을 만들겠다”가 아니다. 심의를 받되, 심의의 주체가 공평하게 심의하고 명확하게 심의이유를 설명해주며 심의결과에 누구나 납득할 수 있도록 기준을 제시하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심의를 성실히 하라는 것이다.
영등위가 심의를 내릴 때 자체규정도 잘 지키지 않는다는 것 또한 문제다. 영등위 규정에 보면 ‘회의는 재적위원의 과반수가 참석해야 하고 출석위원의 과반수가 찬성해야 하다’고 규정되어 있다. 하지만 리니지 2때 등급심사에 참여한 위원은 단 2명이다. 의결정족수에도 모자란 위원이 참석해 등급을 내린 것이다. 법전문가가 아니어서 이 등급이 효력이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다. 또 회의는 공개되어야 한다고 규정되어 있는데도 지금까지 한번도 회의록을 공개한 적이 없다(앞으로도 영원히 공개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회의녹취록을 공개했다가는 그나마 남아있던 영등위의 심의에 대한 신뢰성마저 없어질지 모른다).
일각에서는 문화부 산하의 영등위가 정통부와의 게임심의 주무부서로서의 경쟁에서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쉽게 말하면 업체를 길들이려 한다는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냐고 풀이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전체이용가 게임이 어느날 갑자기 18세이용가로 둔갑하는 상황을 설명할 도리가 없다는 것이다.
영등위는 이 모든 상황을 ‘청소년 보호’라는 전가의 보도를 휘둘러 버틴다(마징가제트의 브레스트 파이어도 아니고). 우리사회가 ‘청소년보호 이데올로기’에는 누구나 움찔하며 약해지는 것을 잘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명분을 내세우기에 이만큼 좋은 것은 없다. 업체가 영등위의 ‘심의불량’을 지적하면 영등위는 업체가 돈을 벌기 위해 ‘청소년 보호’를 공격하고 있다고 몰아세우고 있다.
대체 누가 영등위에 청소년 보호의 전권을 위임했는지 모르겠지만 청소년은 우리국민이 다 함께 키우는 것이지 영등위 소위원회 7명이 독점해서 보호해야 하는 존재가 아니지 않은가. 만약에 영등위 소위원회가 자신들이 그런 능력과 권한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오만이고 자가당착이다. 그렇게 청소년 보호에 목숨을 건 분들이 왜 등급심의는 시도 때도 없이 불참하며 등급심의는 달랑 2명이 하고 대충 넘어가는가?
목적이 수단을 정당화하지 못하는 것처럼 청소년을 위해 일한다고 해서 모든 행동이 용인되는 것은 아니다(실제적으로 청소년 보호에 얼마만큼 영등위의 등급분류가 효과적인지도 의문이다). 절차상의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했지만 절차상의 문제도 중요하다. 규칙은 지키라고, 지키라고 있는 것이다. 영등위는 스스로를 목적이 고상한 초법적 존재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얼마전 정부는 규제개혁에 관한 회의를 갖고 “앞으로 범정부적 규제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고 나섰다 한다. 또 대통령은 “치열한 국제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규제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여야 하며 더 이상 규제가 기업활동의 발목을 잡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정부는 규제의 필요성을 (규제를 하는 당사자가) 스스로 입증하지 못하면 원칙적으로 그 규제를 폐지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번에도 '청소년 보호'로 버틸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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