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닌텐도의 게임기 시리즈 탐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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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계의 시리즈몰 ① (닌텐도의 게임기)

게임계에는 수많은 시리즈 물이 있다. 대부분 시리즈라고 말하는 것은 게임을 말하지만 필자가 말하고 싶은 것은 ‘게임계’의 시리즈로 소프트웨어는 물론 하드웨어도 포함하고 있다. 사실 이 연재를 기획할 때만 해도 게임에 한정해서 글을 쓸까 생각도 했었지만 이왕이면 게임기의 시리즈도 같이하는 것이 정보전달의 차원에서 유익하지 않을까 한다. 혹시 이후에 소개될 게임기를 ‘나는 다 한번씩 가져본 적이 있어’ 라든가 ‘나는 이 게임기들 다 알고 있어’라는 사람이 나오면 그 사람은 엄청난 갑부이거나 또는 이미 20대 후반을 훌쩍 뛰어넘은 아저씨라는 것을 밝히면서 글을 써내려가겠다.
 

게임계의 대선배 닌텐도

어디 게임기부터 소개를 할까 고민중에 이왕이면 게임계의 대선배격인 닌텐도부터 시작하자라고 결론 내렸다. 닌텐도라고 하면 제일먼저 생각나는 것은 패미컴으로 국내에도 현대전자에서 컴보이라는 이름으로 정식 수입된 게임기로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글을 읽는 몇몇 나이드신 분은 “패미컴 이전에 아타리가 있었다” 라고 주장하시겠지만 아타리 이전에 화투가 있었고 화투를 만들던 회사가 바로 닌텐도였다는 것을 잠깐 상기시켜 보겠다. 닌텐도가 만들어낸 게임기는 8비트 게임기 패미컴을 시작으로 슈퍼 패미컴, 휴대용 게임기 게임보이, 게임보이 어드밴스, 닌텐도 64, 게임큐브까지 게임업계에 있어서 한 획을 그은 대표적인 업체다. 한때 누구도 넘보기 힘든 독보적인 위치에 있다가 현재 소니와 MS 등의 업체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처지이지만 그 입지만큼은 누구도 무시못하는 게임계의 대 선배인 것이다.


아타리 쇼크 돌파의 선봉장 패미컴

1983년 이른바 아타리 쇼크라 불리우는 게임계의 빙하기 때 이를 정면으로 돌파하고 아타리라는 이름을 끌어내린 것이 바로 닌텐도의 패미컴이다. 닌텐도의 8비트 게임기 패미컴은 1983년 7월 탄생했다. 패미컴은 패밀리 컴퓨터의 약칭으로 말 그대로 커스텀 CPU와 PPU(화상처리장치)를 이용한 일종의 컴퓨터였다. 당시 리코사와 제휴해서 53색의 다양한 색감(당시에...)과 6,144의 도트표현, 캐릭터 움직임의 뛰어난 처리가 가능하면서도 가격은 14,800엔으로 책정해서 발매 1년동안 140만대를 판매했고 패미컴 및 소프트웨어를 포함해서 모두 350억엔의 수익을 올린 것으로 기록되어있다. 이는 당시 닌텐도 1년 수입중 53%를 차지한 것이다. 패미컴의 성능이 당시 등장한 PC와 거의 비슷한 성능임에도 불구하고 믿을 수 없는 저가격을 형성한 이유는 바로 닌텐도가 취한 생산 방식에 있다. 닌텐도는 패미콤 생산을 위해 리코에 2년간 300만개라는 대량생산을 조건으로 단가를 낮춰 제품을 생산했다. 이는 당시 컴퓨터이면서 게임계의 한축을 이룬 MSX의 30만엔에 비해 엄청난 가격이었다.

< 8비트게임기 패미컴 >

< 슈퍼마리오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 >

아타리 쇼크란?

83년 이른바 아타리 쇼크라 불리우는 이 사건으로 아타리는 게임기 시장에서 사라지게 된다. 당시 게임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매체는 아무것도 없었고 오로지 실제 게임을 접해본 게이머의 입으로만 정보가 전해질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아타리는 자사제품의 스펙을 공개하고 모든 서드파티에게 소프트 공급을 허락했었다. 그러나 이것이 결국에는 아타리의 발을 붙잡고 아타리를 망하게 만든 원인이 되었다. 군소 업체에서 저급소프트를 대량양산하더니 결국 아타리라는 게임기의 이미지에까지 큰 영향을 미쳐 83년에는 당시로서는 천문학적인 액수인 5억달러의 손해를 보고 게임시장에서 물러나게되는 원인이 된다. 이후 아타리는 다시 한번 전성기를 맞이하고자 했으나 곧이어 발매된 일본 닌텐도 패미컴의 영향과 역시 일본에서 크게 유행하여 전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했던 MSX 기종이 출시되면서 아타리의 명성은 서서히 저물어 가기 시작했다.

이후 세계최초의 64비트 게임기인 재규어를 출시했지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 없다고 기대 이하의 그래픽과 소프트의 부족으로 철저하게 외면받게 되고 게임기 시장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16비트 게임기의 시대 - 슈퍼 패미컴

80년대를 마감하면서 컴퓨터를 비롯해 게임기에도 16비트의 시대가 시작되었다. 네오지오, 메가드라이브, 슈퍼패미컴 등이 16비트 게임기의 시대를 주도한 대표적인 예로 들 수 있다. 슈퍼패미컴은 역시 닌텐도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게임시장을 주도해나갔다. 그 방법은 다름아닌 엄격한 품질관리와 몇개의 대작게임을 중심으로 마케팅을 펼친 것이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기억하고 있는 슈퍼패미컴의 대작이라면 역시 파이날판타지 시리즈와 드래곤 퀘스트 시리즈를 들 수 있다. 이 두가지 게임이 슈퍼패미컴을 플랫폼으로 발매하면서 게임의 성공과 함께 슈퍼패미컴의 성공도 동시에 이루어지게 된다. 그러나 슈퍼패미컴이 가지고있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슈퍼패미컴은 경쟁 게임기에 비해서 그래픽 표현력이 빈약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러나 닌텐도는 기발한 아이디어로 이 단점을 극복해버는데 성공한다. 취약한 그래픽을 보완하기 위해 그래픽칩을 롬팩에 내장하는 방법을 이용했는데 바로 이것이 그 유명한 FX칩이다. FX칩을 내장한 게임(마리오카트, 스타폭스 등)을 플레이해보면 알 수 있지만 내장프로세서와 연동되어 작동하는 FX칩의 그래픽 구현 능력은 단점으로 지적되던 슈퍼패미컴의 그래픽이 장점으로 뒤바뀌는 현상으로 나타났다.

< 이것이 현대전자의 슈퍼 컴보이 >

< 오리지날의 모습은 이런 모습 >


닌텐도의 첫 실패 - 닌텐도 64

96년 6월 닌텐도에서는 64비트 콘솔게임기 ‘닌텐도 64’를 발매한다. 3D 그래픽 처리능력과 64비트 프로세서를 내세우고 3D 게임기라는 인상을 심어주며 다시 한번 게임기 시장을 장악하려했지만 닌텐도로서는 가장 뼈아픈 실수를 하게 된다. 그것은 다른 게임기들이 시디를 미디어로 사용한 반면에 닌텐도는 여전히 롬팩이라는 미디어를 유지했다는 것이다. 물론 롬팩은 빠른 속도와 로딩을 느끼지 못한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으나 동영상처리에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으며 대용량을 저장하는데 치명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일반 게이머의 외면을 받게되는 닌텐도 64는 애드온 장치로 ‘64DD’라는 광미디어 장치를 발매했지만 이번에는 64DD를 이용한 소프트웨어가 없어 닌텐도로서는 게임기 시장에서 쓰디쓴 실패를 맛보게 되었으며 최고의 자리에서 물러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 첫 실패작 N64 >


다시 한번 재기를 노리는 돌고래 쇼 - 닌텐도 게임큐브

99년 E3에서 발표한 닌텐도의 차세대 게임기 프로젝트 코드명 ‘돌핀’은 닌텐도의 화려한 부활을 꿈꾸는 시작이 된다. IBM의 겍코(Gekko)프로세싱 기법을 도입한 파워 PC CPU와 마쓰시다의 고밀도 광드라이브 그리고 닌텐도만의 소프트웨어 노하우와 컨텐츠로 무장한 닌텐도 게임큐브는 시작부터 많은 관심을 자아내게 했다. 그리고 2001년 공개된 게임큐브는 닌텐도의 모든 기술력을 총 동원해 제작했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기대 이상의 게임기로 선보이게 된다. 정육면체의 컴팩트한 본체와 독자적 구조의 아날로그 패드, 소형 고밀도 광드라이브의 채택은 닌텐도 64에서 실패한 원인을 철저하게 분석하고 반성한 노력이 엿보이는 부분이었다. 특히 게임큐브의 특징이라면 컴팩트한 설계에 있다. 게임큐브를 살펴보면 작은 본체에서 1/4의 공간을 이후 나올 확장기기에 대비해 공간을 마련했다. 결국 나머지 공간에 모든 장치가 설계된 것인데 작은 기계에서 엄청난 퀄리티를 보여주는 게임을 구동한다고 생각하면 닌텐도의 모든 기술력을 총 동원한 야심작이라는 것을 간단하게 짐작할 수 있게된다.
< 육면체의 컴팩트한 디자인 >
< 패드와 본체는 디자인의 승리 >


휴대용 게임기의 시작 게임보이

89년 닌텐도에서 게임보이라는 휴대용 게임기를 출시했다. 당시 휴대용 게임기라고 하면 평범한 흑백화면에 단순움직임을 보이는 게임들이었지만 게임보이는 그 한계를 한번에 뛰어넘었다. 일단 4단계의 음영표현이 가능한 LCD가 장착되었고 미니게임팩을 통해 다양한 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 된다. 특히 게임보이가 인기를 누리게된 이유중 하나를 꼽으라면 양방향 케이블 통신이 가능한 대전이 가능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당시 대유행을 불러온 테트리스는 게임보이로 대전이 가능해 게임보이가 성공하는데 발판을 마련해주기도 했다. 이후 91년에는 기존 게임보이의 크기를 줄인 게임보이 포켓, 백라이트 기능을 탑재한 게임보이 라이트 등이 발매되었다. 98년 발매된 게임보이 컬러는 게임보이에 컬러액정을 장착했으며 기존의 모델 디자인을 변화시켜 인체공학적인 설계를 선보였다. 특히 게임보이 컬러는 적외선 통신포트를 채용해 케이블 방식에서 탈피했으며 이를 이용한 포켓몬스터라는 게임으로 또다시 엄청난 성공을 가져온다.

< 초기 휴대용 게임기는 단순한..>

< 게임보이가 대단해 보이지 않는가 >

< 게임보이 컬러 >


업그레이드의 최종진화 - 게임보이 어드밴스

세로에서 가로, 인체공학적인 디자인으로 업그레이드의 최종형태를 보여준 게임보이 어드밴스(이하 GBA). GBA는 디자인의 변형으로 오랜시간 사용해도 불편함이 없는 편안함과 넓은 액정을 장착할 수 있는 2마리의 토끼를 잡는데 성공한다. 물론 디자인의 변형 외에도 일반 휴대용 게임기에서 볼 수 없는 놀라운 성능을 구현해 많은 사람을 놀라게 했다. 32비트의 메인 프로세서, 3만색을 표현할 수 있는 그래픽, 16화음의 사운드 등은 이미 휴대용게임기의 성능을 뛰어넘은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게임기로서 중요한 하위호환성 역시 유지해 기존의 게임보이 유저를 그대로 흡수하는데 성공하게 된다. 이 기존의 유저를 끌어들이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 부분이 있는데 바로 4인동시 대전이 가능한 대전케이블을 지원했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GBA는 닌텐도의 콘솔게임기인 N64와 게임큐브와 연동되어 동작하도록 설계되어 콘솔게임기를 가지고 있는 게이머도 흡수하는 괴력을 발휘하게 된다.

< 게임보이 어드밴스의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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