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사 > 전체

캐릭터 스토킹 - 주인공 보정의 희생자, 2인자

/ 2

오는 22일 오우삼 감독의 기대작 ‘적벽대전2’가 개봉한다. 화려한 폭발장면과 스피드 위주의 헐리우드 블록버스터와는 다른 재미를 선사하는 압도적인 스케일의 중국식 전투장면 연출이 기대된다. 무엇보다 자칭 삼국지 매니아로서 주유와 제갈량의 지략대결을 어떻게 풀어냈을지 궁금하다.

잠깐 주유가 제갈량의 상대가 된다고?

일반적으로 삼국지라고 불리는 ‘삼국지연의’에서 제갈량은 거의 신적인 존재로 묘사되며 그에게 도전했던 책사들은 모두 무참히 패배하고 만다.

▲ 삼국지 속 최고의 책사이자, 제작사 ‘KOEI’의 편애를 받아 먼치킨화 한 ‘제갈공명’.

▲ 속칭 ‘제갈건담’.

▲ ‘삼국무쌍’에서의 모습은 왠지 얍삽해 보인다

물론 정사(正史)에서 그런 이야기는 없지만 ‘삼국지연의’만 고려하면 ‘적벽대전’에서의 지략대결은 거의 제갈량의 완승으로 끝난다. 이후 소인배화 된 주유는 결국 유비에게서 형주를 빼앗기 위해 꾀를 부렸으나 그것을 간파한 제갈량의 손바닥 안에서 놀아나고 결국 "왜 하늘은 이 주유를 낳으시면서 제갈량을 왜 낳으셨단 말인가."라고 한탄하며 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

▲ 흔히 말하는 '엄친아'라고 할 수 있는 스펙에, 부인도 미인이었으나

제갈공명에게 대적한 것은 그의 치명적인 실수였다.

예전에는 제갈량을 괴롭혔던 인물의 최후였기에 그저 통쾌해 했지만 지금에 와서는 절망 속에 죽어간 주유의 처지에 안타까움을 느끼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당시 제갈량이 책사로서의 능력이 독보적이었고 주유가 제갈량에 비해서 약간 떨어지는 인물이었다고 해도 이와 같은 전개는 너무 잔인한 연출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제갈량을 띄워주기 위해 다른 캐릭터를 무참히 짓밟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다행이 이번에 개봉하는 영화는 주유의 비중도 상당한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공정한 기회를 부여하여 둘의 지략대결을 멋지게 풀어나갈 것을 기대하고 있다.

삼국지만 그럴까?

그렇다면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 즐거움을 전달하는 게임 속에서는 어떨까? 사실 게임 속에서는 이러한 경향이 현실보다 더 심하다. 게임 속에서는 유저의 분신이기도 한 주인공이 대부분 승리하기 때문에 주인공이 2인자가 아니라면 현실세계에서는 약간이나마 존재하는 ‘2인자가 1인자에게 승리할 희박한 가능성’도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게임제작자들은 라이벌이라는 미명하에 주인공과의 대결구도를 형성한다. 그 다음 주인공의 강력한 라이벌이 된 2인자들을 갖은 방법을 동원해 띄워놓고 주인공은 그 대상을 가볍게 밟고 지나간다.

주인공은 2인자들의 이러한 희생 속에 게임 안에서 최고가 되어 가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앞에서 언급한 주유와 닮지 않았는가? 지금부터 그동안 1인자에 밀려 빛을 보지 못한 2인자들, 그들의 이야기를 재조명하고자 한다.

자존심 따윈 필요없다. 주인공님 잘부탁드립니다.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상대가 존재한다면 어떻게 대처 해야 할까? 물론 그런 상대는 피하는 것이 최선이겠지만, 상대는 게임의 주인공이다. 주인공을 상대하지 않을 도리가 없기 때문에 2인자들은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다. 싸울 것 인가? 굴복할 것인가? 자신의 실력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다면, 한번 주인공에게 도전해 볼 수도 있지만, 현실인식이 빠른 건지 승부욕이 없는 것인지 후자를 택하는 이들이 존재한다. 사실 이들의 이러한 선택 과정은 게임 내에서 드러나지 않는다. 이들은 처음부터 주인공을 졸졸 따라다니거나, 게임을 진행해가며 당연한 듯이 일행에 합류하여 2인자의 자리에 만족한다.

▲ 멀린, 대마법사이자 아서왕의 충실하고 현명한 조언자로 아서왕을 보좌하였다.

앞에서 필자는 ‘굴복한다’는 표현을 사용했지만, 이들의 실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2인자로서 순수한 능력만을 가지고 볼 때에는 주인공들을 능가하기도 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물론 그렇다고 해도 ‘주인공 보정’을 능가하지는 못한다). 애당초 이들은 주인공에게 도전할 생각이 없지만, 주인공에게 조언을 아까지 않으며 주인공의 성공에 절대적인 역할을 한다. 일종의 ‘킹메이커’라고 할 수 있는 존재로 ‘아서왕 이야기’에 나오는 ‘멀린’이나 위에서 언급한 ‘제갈량(유비 사후 제갈량이 거의 왕이나 다름없긴 하지만)’도 이러한 범주에 속한다.

이러한 인물들은 초창기 게임에 많이 나타나는데 ‘지혜와 연륜의 상징’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주인공의 가진 것(그것이 무엇이든)을 절대로 넘보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 때문에(그것을 노리는 순간 주인공과의 공존관계는 깨진다) 욕망이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라고 여겨지는 ‘학자’ 타입이 많으며, 같은 이유로 나이가 대부분 많다.

▲ 헤인, 랑그릿사2에서 처음 등장한 강력한 마법사이나

행동을 보면 나사가 하나 빠진 듯 하다.

물론 이들은 개인적인 욕망이 부족하기 때문에, 캐릭터 자체는 별로 재미가 없다. 자고로 욕망을 가지고 행동하는 캐릭터가 욕을 먹더라도 매력 있는 법이다. 그래서 나름 치열한 업계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2인자들의 스타일도 변하기 시작했다. 늙거나 점잖은 학자에서 활발한 젊은이로서의 변화를 시도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여전히 강력한 동료로써 애용은 되지만 매력적이지 않다. 매력적인 히로인들을 눈 앞에 두고도 무반응에 그저 주인공만 졸졸 따라다니는 녀석들이 대부분이다. 가끔 제작자의 자비로 인해 커플결성에 성공하는 케이스도 있지만 대부분은 드라마 야인시대의 ‘심영’의 명대사가 생각나게 하는 녀석들이다.

▲ 코우인, ‘영원의 아세리아’의 주인공 ‘유우토’의 친구,

초기에는 적으로 등장하나, 이 후 든든한 아군이 된다.

주인공하고 역할마저 비슷한 캐릭터도 등장한다. 제법 라이벌의 면모를 갖춘 캐릭터다. 사실 캐릭터의 역할이 무엇이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예를 들어 주인공은 보통 검사일 경우, 파티에 마법사형 캐릭터가 들어오거나 중년 아저씨 검사가 들어온다면 큰 문제가 없겠지만 젊은 검사가 들어온다면 그것 자체만으로 주인공과 어느 정도 갈등이 유발될 소지가 생기는 것이다.

필자가 좋아하는 ‘영원신검' 시리즈에 등장하는 ‘코우인’이라는 캐릭터가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충분히 주인공을 위협할 만한 능력도 있고 주인공에 비해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캐릭터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하는 것이라고는 주인공의 서포트역할이고 나중에는 루트에 따라서 아예 눈뜨고 자신이 좋아하는 사람을 주인공에게 빼앗기기까지 하는데 기본적으로 주인공에 감정 이입하는 플레이어의 입장에서 봐도 동정할 수 밖에 없었다.

‘조언자형 2인자 캐릭터’는 나이도 바뀌고 직업도 바뀌고 성격까지 바뀌었지만 주인공의 ‘힐링 머신’이나 ‘아이템 창고’에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새로운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페르소나4’의 ‘하나무라’ 같은 캐릭터이다.

▲ 이제는 아예 찌질이까지…

‘페르소나4’에 등장하는 ‘하나무라’는 기존의 2인자 캐릭터들과는 다른 면모를 보인다. 아니 애당초 2인자라고 불릴 수 있을 지조차 의심스러운 캐릭터이다. 주인공을 제외하면 적이 없을 정도로 강했던 그 동안의 보편적인 2인자 캐릭터들에 비해 형편없는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자존심도 없는 그야말로 잘난 사람에게 아부하는 아첨꾼A의 역할이 딱인 캐릭터이다. 사실 이 캐릭터를 처음 보면서 호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게임을 진행하면서 성장하고 사건을 해결하는데 큰 역할을 담당하는 등 점차 호감형 캐릭터로 변해가며, 파티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이렇게 거의 완벽해 보이던 2인자들이 맞던 역할은 점점 단점투성이이지만 인간적인 면모를 가진 캐릭터들에게로 넘어가는 추세고 이러한 캐릭터 변환은 성공적으로 보이며, 전통적인 의미의 2인자 캐릭터들은 사라져가고 있다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그래도 자존심이 있지

다음으로 소개할 2인자들은 흔히 ‘라이벌’이라고 포장되는, 주인공에 대항하는 2인자들이다. 그러나 과연 라이벌이라고 불릴만한 자격을 갖추었는지는 의문이긴 하지만 일단 주인공에 대적한다는 점에 의의를 두자.

자 이제 주인공에게 대항하기로 한 2인자들은 과연 어떻게 주인공에게 대항하는지 살펴보도록 하자. 역시나 우선은 나를 아는 것부터 시작 해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리 자존심이 중요해도 일단 자신의 능력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인공이라는 게임 내 최강의 적을 상대로 무턱대고 덤비다간 험한 꼴을 보기 십상이다.

▲ 학생이냐? 아저씨냐?

‘페르소나3’에 등장하는 ‘준페이’가 이를 잘 보여준다. ‘페르소나4’의 ‘하나무라’와 비슷하거나 그 이하인 2인자라고 하기에는 아주 많이 부족한 캐릭터인데, 전학생이면서 이질적이라고 할 수 있는 주인공이 리더가 되는 것을 반대하고 자신이 리더의 자리에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시리즈 최고의 ‘엄친아’로 추정되는 주인공에 대항하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에(상대가 주인공이 아니었더라도 힘들었을 것 같다) 당연히 주인공을 이기자는 스토리가 진행되면서 약간의 각성과 함께 주인공의 노예(?)가 되는 길을 걷는다.

▲ 그래도 주인공은 한번 해봤다.

그래도 어느 정도 실력을 갖추고 주인공에 도전하는 캐릭터들도 있다. ‘준페이’ 같은 캐릭터는 자칫하면 보기 흉한 악역 캐릭터가 단순한 ‘조연A’로 전락하게 될 수 있기 때문에 사실 주인공에 도전하는 역할은 다음과 같은 캐릭터들이 주류를 이룬다. ‘너클즈’는 16세의 빨간 바늘두더지로 주먹으로 못 깨부수는 게 없으며, 마스터 에메랄드를 수호하던 ‘에키드나’ 족의 마지막 일원으로 왠만한 게임의 주인공을 해도 될 만한 내력을 가지고 있다. 주인공도 해봤지만 본 시리즈에서는 주인공인 ‘소닉’에게 언제나 밀린다. 물론 악당에게 속아 ‘소닉’과 싸우기도 하는 등 바보라는 치명적인 단점을 가지고 있기는 하다.

   

▲ 왔노라, 싸웠노라, 졌노라.

‘록맨’에 등장하는 ‘포르테’도 ‘너클즈’와 비슷한 캐릭터로 볼 수 있는데, ‘너클즈’와 달리 바보는 아니지만 별다를 것 없는 운명의 소유자이다. 늘 ‘록맨’과 결투를 신청하지만 결과는 항상 패배일 뿐이다. 이렇게 캐릭터들은 능력도 있고 다른 작품에서는 주인공들도 해 본 ‘좀 한다’는 캐릭터들도 있지만 주인공의 능력에게는 이기지 못하는 것을 보여준다. 그만큼 ‘주인공 보정’이라는 것은 강력하고 무서운 것이다.

그렇다면 능력 괜찮고 상대가 주인공도 아니라면 1인자의 자리로 도약할 수 없는 것일까? 능력만 된다면 건방진 1인자 녀석의 가뿐하게 이겨주고 그 잘난 콧대를 꺾어버릴 수 있을까? ‘워크래프트3’의 스토리를 보면 그렇지만은 않은 것 같다.

▲ 한 마리의 호랑이(위에 탄 엘프는 단순히 ‘엘프A’이고

호랑이야말로 ‘티란데’라는 설이 있다.) 를 두고 다투는 두 마리의 순록들

여기서 등장하는 ‘나이트엘프’ 족의 ‘데몬헌터’ ‘일리단’은 그의 형제 ‘퓨리온’과 ‘티란데’를 사이에 두고 삼각관계에 있었으나 ‘티란데’는 그의 형인 ‘퓨리온’을 사랑하고 있었다. 사랑싸움에서 패배한 것이다. 또한, 일족의 존경 받는 지도자인 ‘퓨리온’과는 달리 어쩌면 형보다 강한 힘을 가졌을 지도 모르는데도 불구하고 일족의 지도자는 커녕 오히려 쫓기는 신세에 처하고 만다.

마지막으로 ‘아서스’에게 도전하지만 이 결투에서도 패배하고, ‘아서스’의 자비에 의해 간신히 목숨을 보존해서 불모의 땅인 ‘아웃랜드’로 도망가 버렸다. 물론 ‘워크래프트3’를 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스토리상 ‘퓨리온’보다는 ‘일리단’ 쪽이 주인공에 가깝다. 멀티플레이에서는 ‘데몬헌터’의 앞에서 ‘키퍼’는 ‘유닛’일 뿐이고 ‘데스나이트’는 도망 다니기 바쁘다. 이러한 현실을 볼 때 2인자라는 것은 ‘운명’일지도 모르겠다.

▲ 왠수 같은 무사시

한편 역사 기록 하나 때문에 영원히 2인자로 남은 캐릭터도 있다. 바로 일본의 전설적인 검객인 ‘사사키 코지로’다. 이 인물에 대해서는 가상의 인물이라는 설도 있어서 실존여부를 가리기는 어렵지만 일본에서는 매우 인기 있는 검객이다. 그러나 역시 전설적인 검객으로 알려진 ‘미야모토 무사시’와의 대결에서 패배했다는 기록 하나로 인해(이 부분은 논란의 여지가 있는데, 대결에서는 사사키 코지로가 이겼으나 무사시가 치사하게 제자들을 데리고 와서 집단 린치를 가했다는 설도 존재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무사시가 대결에서 승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나오는 게임마다 ‘미야모토 무사시’만 만났다 하면 깨지는 불쌍한 존재이다. 만약 ‘사사키 코지로’가 가공의 인물이라면 다행이지만 실존 인물이라면 무덤 속에서 통곡할 일이다.

▲ 츤데레(?) 베지터, 허세만 늘었다.

‘한때 최강의 자리를 밟아 보았던 2인자는 다시 1인자의 자리에 오를 수 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그러나 이것도 힘들 것 같다. 한번 몰락하기 시작하면 다시 재기하기란 매우 힘들다. ‘츤데레’로 유명한 ‘베지터’가 그 전형적인 예다.

‘베지터’는 한 때, ‘드래곤볼’ 내에서 최강의 존재로 독자들이 치를 떨 정도로 강한 모습을 보여주며 주인공인 ‘손오공’을 위기에 몰아넣었다. 그러나 ‘손오공’에게 패배하고 난 뒤에는 이 후 자신의 뒤를 이어 최강의 적 타이틀을 승계 받은 적들에게 이리저리 치이더니 결국에는 ‘퓨전기계’로 전락해 버렸다. 끊임없이 강한 적들이 등장하는 ‘드래곤볼’의 세계에서 그의 재기는 어려워 보인다. 물론 나름 가정을 이루면서 잘 살고 있고 계속 강해지는 것을 볼 때, 보모로 전락한 ‘피콜로’나, 지구를 위기에서 구하지만 맨날 바가지나 긁히는 백수 ‘손오공’보다 더 나은 것 같다. 행복은 성적순이 아닐지도……

‘드래곤볼’에 나오는 ‘손오공’이나 그의 적들은 인간적으로 너무 세기 때문에 평범한(?) 사이어인인 ‘베지터’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 그렇다면 1인자의 자리도 밟아봤으며, 자신의 능력도 뛰어나고, 조직의 힘도 있는 캐릭터이면서 주인공의 능력은 형편없다면 해볼 만 하지 않을까? 얼마 전 발매된 ‘리프’의 신작 ‘그대가 부르는, 메기도의 언덕’라는 작품에서 그 해답을 주고 있다.

▲ 업계1위의 자신감 -> 도전자에 대한 응징 의지 -> 될 대로 되라

게임 속에서 ‘에밀리아’는 ‘구세주 판매업 업계 부동의 매출 1위’를 고수하고 있었다. 그녀의 장사 수완은 더없이 훌륭했고, 그녀의 뒤는 ‘성전교단’이라는 강력한 집단이 떠받치고 있었다. 그녀의 앞날이 탄탄대로일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을 것 같았지만, 그러한 그녀의 앞날을 뒤바꾸어 놓은 것은 어디서 굴러 들어 온지도 알 수 없고 무능력의 결정체로 보이는 주.인.공이라는 직업의 한 소년이었다.

이렇게 이들은 ‘2인자’라는 운명을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친다. 최고의 자리를 얻기 위해서 그들은 끊임없이 노력하고, 새로운 것에 도전한다. 이들이 잘못한 것은 상대를 ‘주인공’으로 골랐다는 것 밖에 없고, 그 주인공을 절대로 이길 수 없다는 것이다.

더욱 그들을 힘들게 하는 것은 대부분의 주인공들이 그들을 별로 라이벌로도 인식하지도 않고 ‘귀찮은 존재’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이 같은 점이 이들을 더욱더 분노하게 만들지만 주인공은 아무렇지도 않게 이를 짓밟아 버린다. 그러나 이들의 행동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게임 내에서 적절한 내부갈등을 유발하며 게임에 대한 몰입도를 높여주고, 한 몸 열심히 희생하여 주인공의 뛰어남을 돋보이게 해주는 게임 내의 ‘약방의 감초’ 같은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주인공 따위 부럽지 않다. 성공한 2인자들

이렇게 대부분의 2인자들은 1인자에게 일찌감치 굴복하거나 도전을 하더라도 결국 패배를 겪게 된다. 사실 게임의 특성상 주인공의 패배로 끝나는 게임은 거의 없기 때문에 2인자들이 1인자의 자리를 차지하기란 요원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1인자가 주인공이 아닐 경우에도 대부분의 경우 주인공이 그 1인자를 타도하는 것이 게임의 목적이 되기 때문에 다른 2인자들에게는 기회가 올 수 없다. 그렇지만 비록 주인공에게 승리하지는 못했지만 나름대로의 개성을 살려서 성공한 2인자들도 있다.

▲ 이분에 대해 말이 필요할까?

‘기동전사 건담’ 시리즈에 등장하는 ‘샤아 아즈나블’이 그 선두 주자라고 할 수 있다. 기나긴 건담의 역사 속에서 ‘샤아’는 특유의 카리스마로 인해 엄청난 인기를 끌었다. 그 결과 건담 세계의 1인자로 추앙 받는 ‘아무로’에 비해 뒤지지 않는 인기를 얻고 있으며, 아직까지도 라이벌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3배 빠른’으로 시작되는 각종 패러디는 그의 인기를 짐작하게 해준다.

▲ 이런 찌질한 대사나 날리는 아무와는 차원이 다르다.

▲ 물론 능력도 좀 있었겠지만 다른 기라성 같은 인물들의 동시대에 살았다는 것을

생각해 볼 때 크게 뛰어나 보이는 것도 없는 도쿠가와 이에야스

사실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굴복형 2인자’라고 볼 수 있다. 처음에는 ‘오다 노부나가’에게 굴복하여 수하로 들어 갔고 ‘오다 노부나가’ 사후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의한 지배를 인정하였다. 그리고 ‘도요토미 히데요시’마저 죽자 비로소 1인자에 자리에 오르게 된다. 운이 좋은 케이스라고 할지 명줄이 길었다고 해야 할지, 물론 본인의 노력도 있었겠지만 강력한 적수들에게 굽힌 후 그들이 다 사망한 후까지 기다렸다가 상대적으로 상대하기 편한 적들을 제압하고 천하를 손에 넣은 것은 왠지 치사하게 느껴질 정도이다.

‘사사키 코지로’가 역사에 의해 손해를 보는 입장이었다면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경우는 반대로 덕을 본 경우로 별 개성 없어 보이는 그가 역사적으로 최후의 승자가 되지 않았더라면 게임 속에 출연이나 할 수 있었을까?

▲ 갈수록 망가져가는 천재 검사

‘미츠루기’는 ‘역전재판’의 주인공이라고 할 수 있는 ‘나루호도 류이치’의 친구이자 라이벌인 천재 검사로 1편과 2편에서 검사의 입장에서 ‘나루호도’와 대립했다. 결과적으로는 ‘주인공 보정’에 의해서 ‘나루호도’의 2번째 재판의 제물이 되고(그전까지는 무패였다) ‘나루호도’의 네 번째 재판에서는 피고인으로 ‘나루호도’의 도움을 받는 수모(?)를 겪기도 했으며, 나루호도의 노예(?)가 되는 과정을 착실하게 밟고 있는 상태이다. 그렇지만 ‘엄친아’이면서도 의외로 얼빠진 모습을 보여준다던가 츤데레 속성을 보여주면서 일부 팬들의 엄청난 지지를 얻게 되었고 그 인기에 힘입어서 ‘미츠루기’를 주인공으로 하는 ‘역전검사’가 개발되었다. 이 정도면 주인공 부럽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 ‘투신도시’ 시리즈의 만년 준우승자 ‘보더 가로아’씨. ‘홍 모(콩)’ 선수를 보는 듯하다.

이렇게 게임 속의 2인자들은 저마다 고달픈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언젠가는 최고가 되겠다고 다짐하며 언제나 노력하는 저마다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그런 존재들이다. 비록 1인자(대부분 주인공)에게 묻혀서 빛을 보지는 못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그 노력의 결실을 얻는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 더러운 주인공들아! 필자가 이들을 대신해서 한마디 하겠다.

▲ 이걸로 이겼다고 생각하지마! 언젠간 이겨줄 거라고!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공유해 주세요
게임잡지
2006년 8월호
2006년 7월호
2005년 8월호
2004년 10월호
2004년 4월호
게임일정
2025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