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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대내의 신인류, 군덕후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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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획] 생활 속 오타쿠 코드

1부: 생활 속 오타쿠 코드 - 미디어 편

2부: 생활 속 오타쿠 코드 - 광고지 편

3부: 생활 속 오타쿠 코드 - 표절과 도용 편

4부: 생활 속 오타쿠 코드 - 연예인과 유명인 편

‘생활 속의 오타쿠 코드’를 쓴지 꽤 많은 시간이 지났습니다. 사회의 여러 곳에 숨어들어간 오타쿠들을 찾아본다는 기획을 한 건 좋았지만, 뒤돌아 보면 중요한 것은 언급 하지 않은 채, 방송-연예인-광고지-표절 같은 거국적인 것에만 머물렀다는 반성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한국의 현대사와 문화에 큰 영향을 끼친 -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 20대 청춘의 로망 군대를 생략했기 때문이죠.

▲이상적인 군대

▲그러나 현실은...

건장한 대한민국의 남성이라면 예외 없이 가는 군대. 이는 게임을 즐기는 게이머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선택 받은 신의 아들(!)이 아닌 이상 어떤 남자건 국방부에 자신의 몸을 맡겨야 합니다. 2년간 가족과 연인을 떠나는 것은 물론, 좋아하는 게임과도 한동안 작별해야 하지요. 예외는 없습니다. 이 얼마나 불쌍한 존재들입니까?

하지만 2년간의 군복무기간도, 내무실이라는 통제된 공간도, 게임과 미소녀를 사랑하는 그들의 욕망을 완벽히 억누를 수는 없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그 안에서도 자신들의 취미생활을 꾸준히 누리다가 성공적으로 사회에 돌아오기도 했으니까요. 사회에서처럼 자유롭지는 않지만, 그 자리에서 할 수 있었던 모든 수단을 사용해 취미를 즐기고자 하는 사람들. 이들을 ‘군인 오타쿠’ - 군덕후라고 부릅니다. 저는 여기서 ‘군덕후’ 들이 부대에 남기고 간 열정을 되짚어 볼까 합니다.

모든 군생활은 짬에서 시작한다

군대라는 조직사회의 대표적인 특징은 ‘짬’ 이라는 절대 권력이 존재한다는 점입니다. 짬이 없으면 ‘까라면 까야 하는’ 신세가 되지만, 짬이 찬다면 더 이상 무서울게 없어질 정도죠. 다행히 이 ‘짬’ 이라는 건 잘난 사람이나 못난 사람이나 시간만 보내면 얻을 수 있다는 겁니다. 그래서 ‘군덕후’ 들은 짬이 찰때만을 기다리다가, 자신이 주위에서 견제받지 않는 위치가 되었을 때, 비로소 자신들의 ‘정체’를 드러내게 되지요.

짬이 찰대로 찬 ‘군덕후’ 들은 자신의 취향을 주변에 전파하거나, 취미를 일과 연관시키기도 합니다. 인트라넷 서버를 관리하는 병사가 서버 이름을 자기가 좋아하는 캐릭터로 해놓고 갔다던가 하는 식이죠. 대표적인 사례를 들어 보자면 이런 게 있습니다.

▲ 이런 관물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군덕후로 의심해도 좋다.

(#### 부대 ### 병장의 실제 이야기.)

근무 시간표 바꾸고, 당직사관한테 애걸하기도 하면서 결국 애니메이션 ‘카논’을 재방송으로 시청했습니다. 후임과 동기들이 모두 반대하더군요. ‘개그 콘서트’ 하는 시간이었으니까요. 하지만 저는 그래도 ‘카논’을 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내무실원들을 다 옆으로 보내는 특단의 조치(?)를 취했죠.

결국 내무실에는 저만 남게 되었고. 혼자서 느긋이 케이블채널을 돌려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의 최종화를 보았습니다.

인터넷으로 애니를 쉽게 구할 수 있지만 역시 애니보는건 이 맛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이 정도면 나은 편 입니다. 고참이 애니메이션과 게임을 좋아한다는 이유만으로 원치도 않는 방송을 봐야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다른 내무실에서 TV를 보는 게 나을테니까요.

정훈교육에 왠 게임 캐릭터?

한편 해군 모 부대에서 제작된 정훈교육 동영상(국군 기무사령부 홍보용)은 한 군덕후가 자신의 취미를 일에 투영시킨 좋은 예라 할수 있습니다. 게임 ‘Fate / Stay Night’의 ‘마토우 사쿠라’ 가 도우미 캐릭터로 나와 장병들에게 정신교육을 하는 영상입니다. 내용은 별 거 없습니다. 간첩을 발견하면 지체없이 신고하여 포상휴가 받자는 거죠.

▲너무나 진지하게 이야기해서 보는 사람이 다 부끄러워진다. "오빠들, 간첩 신고하세용~~!"

대체 이 영상을 만든 장병은 어떻게 그림을 추출해 - 그전에 외부자료를 어떻게 반입했는지가 미스터리지만 - 넣었을지 궁금하네요. 국가안보와 사쿠라는 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 걸까요? 저런 캐릭터가 사용되고서도 부대에서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까요? 그전에 외부의 이미지를 어떻게 인트라넷 안으로 들여왔을까요?

저는 이 영상을 만들었던 해군 #### 부대의 전역자를 만나 일련의 내막을 알아낼 수 있었습니다.

Q : 해당 정훈교육 영상은 누가 만들었는가?
A : 내가 안 만들었다. 1년 선임이 만들어놓고 제대한 것으로 안다.

Q :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나? Fate / Stay Night의 캐릭터가 나온 것으로 보아 해당 게임을 좋아하는 것 같은데.
A : 그렇다. 그 사람은 PMP에 Fate / Stay Night를 담아서 플레이할 정도의 사람이었다. 사쿠라의 CG도 거기서 추출한 것이다.

Q : 그러면 그 사람이 군부대로 PMP를 반입했단 말인가? 보안규정상 안될텐데?
A : 이미 전역한 사람이니 어쩌겠나. 이미 전역한지 1년이 넘었다.

Q : 그러면 저 목소리의 주인공은 누구인가?
A : 그 부대의 여군무원이다. 사실 영상은 예전부터 쓰던 것에 캐릭터를 붙여넣은 것에 불과하고, 음성만 새로 입혔다.

Q : 중요한 질문이다. 저 캐릭터가 들어간 영상이 부대에서 어떤 반응을 일으켰는가? 영상 만들라고 시킨 간부들이 뭐라고 하지 않았나?
A : 나를 뺀 그 누구도 알아채지 못했다. 그 캐릭터가 어디서 나오는 줄도 몰랐으니 말이다. 간부들이 사쿠라를 그 사람이 그린 줄로 착각해서 다행이다.

결국 문제의 정훈영상은 부대의 군덕후가 미친 척하고 저지른 일이었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더 놀라운건 그걸 아는 간부가 하나도 없었다는 것과, 이 영상이 해군 신병교육대에서 한동안 쓰였다는 사실입니다. 이게 사실이라면 정말 무섭네요.

▲이런 안내표지가 있다면 잘 지킬 자신이 있다.

이것들은 모 부대에 실제로 있는 시설물 안내표지입니다. 한 병사가 실제 사용 목적으로 휴가 나와서 인쇄 해 들어갔다고 하네요. 이런 안내표지가 분리수거용 쓰레기통에, 조명스위치에, 정수기에 각각 붙어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물론 그 선임이 제대한 뒤에는 없어질 게 뻔하겠지만, 공공 시설물에 미소녀 일러스트가 붙어 있는 것이 그냥 보고 싶었던 건지도 모르겠네요.

군내 전산망(인트라넷) 역시 군덕후들에게 점령당한지 오래입니다. 이미 인트라넷은 수많은 군덕들을 양성하고 배출하고 있습니다. 사회에서 와우를 했던 사람도, 던파를 했던 사람도, 애니메이션을 봤던 사람들도 모두 인트라넷 커뮤니티에 모여서 서로의 정보를 공유하고, 능력이 되는 사람들은 자료를 업로드 하기도합니다. 확실히, 취미생활은 혼자 하는 것보다는 여럿이 하는 편이 더 재미있으니까요.

▲어떤 병사가 운영하는 애니취향 테스트.

인트라넷을 이용할 정도면 짬도 짬이지만 병과가 좋아야 합니다. GP/GOP에서 근무하는 병사들이 인트라넷을 주로 쓰는 건 아니죠. 보통은 전산병들이 인트라넷을 자주 이용하는데, 이들 중 몇몇은 서버를 운용하는 위치에 있어 몰래 게시판을 운용하기도 합니다. 허가를 받지 않은 사설 사이트다 보니까 언젠가는 다 걸리게 되어있지만, 시간이 지나면 군덕후들은 또다시 게시판을 만들어서 활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요.

마치며

많은 사람들이 군대 가면 사람 된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수많은 사회의 오타쿠들이 군대에 들어가면 군덕후로 ‘개조’ 되어 여전히 자신들의 취미생활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물론 사회에서 즐기던 것에 비하면 부족하지만, 그들은 휴가를 나가서 게임을 하겠다는 의지로 군생활을 견뎌내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이 제대해서 다시 사회로 돌아올때쯤이면 더욱 취미생활에 힘을 쏟을 것 같네요.

그렇습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도 샌다’는 말처럼, 사회에서 가지고 있던 게임/애니메이션 취미를 군대에서 포기하는 사람은 별로 없는거죠. 오히려 군대처럼 억압된 상황에서 이들의 잠재능력은 빛을 발하게 되는 겁니다. 아직 군대를 가지 않으신 분들이라면, 군대를 가는 것이 취미생활에 지장을 줄 것이라고 생각할 필요는 없는 것 같네요. 하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못할 건 없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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