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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지만 가까운 나라, 독일 문화 탐방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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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흔히, 일본을 두고 ‘가깝지만 먼 나라’라고 말합니다. 제게 독일은 내내 ‘멀지만 가까운 나라’라는 인상을 주었습니다. 어린 시절 그림형제의 동화와 환상문학에 빠져있었고, 대학 시절 열렬한 축구팬이었던 제게 독일은 언젠가 꼭 한 번 가보고 싶은 분데스리가의 나라였습니다.

학교를 다니던 당시에는 배낭여행 한 번 못 가보고, 이번 라이프치히 게임 컨벤션을 통해 처음 독일을 찾게 되었습니다. 그 동안 게임을 통해 비교적 널리 알려진 일본이나 미국에 비해 독일은 여전히 낯선 나라였습니다.

독일과 독일 사람들은 어떤 모습일까? 두 번이나 세계 대전을 일으킨 씻을 수 없는 과오를 가진 전범국가인 동시에 철저한 속죄를 바탕으로 한 유럽의 중심이 된 국가. 반 세기 동안 동독과 서독으로 나뉘어져 이념대립을 하다, 1990년 극적인 통일을 이룬 국가.

우리 고속도로의 원형이 된 아우토반과 명품 차로 유명한 국가. 헤겔과 같은 철학자와 괴테와 헤르만 헤세, 토마스 만 등 문학의 나라. 과거 조국의 차관을 위하여 한국에서 건너간 광부와 간호사들이 살고 있는 나라. 일일이 다 거론할 수 없을 만큼의 독일의 이미지는 다양합니다.

그렇다면, 그 동안 책과 몇 편의 영화로만 접하던 독일의 실제 얼굴은 어떤 모습일까요? 짧은 시간이 될 거라고 생각하지만, 이런 저런 가이드북과 책을 통해 공부도 했습니다. ‘구텐 모르겐(아침인사)’,’당케 쉔(고맙습니다)’,’아우프 비더젠(다시 만나요)’ 간단한 인사말도 다시 연습해봅니다. 그들의 문화를 기본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야 게임과 전시문화도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학창시절에도 다 못 읽고 제쳐두었던 괴테의 ‘파우스트’까지 꺼내 들었습니다. 하필 왜 괴테냐고요? 독일의 첫 발을 내딛는 프랑크푸르트는 괴테가 탄생한 도시이고, 게임 컨벤션이 열리는 라이프치히는 괴테가 대학생활을 보낸 도시로, 이른바 ‘괴테가도’의 시작과 끝이거든요.

인천에서 프랑크푸르트까지, 9시간 55분

인천공항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 국제 공항까지 직항은 최소 9시간 55분이 걸립니다. 이 정도의 장시간의 비행은 처음이라 가는 동안에도 몇 번이고 지루함에 몸을 뒤틀어야 했습니다. 제가 타고 간 루프트한자는 독일항공사임에도 불구하고 비빔밥이 나오더군요. 제법 잘 만든 비빔밥도 챙겨먹고 간식으로 나오는 다른 분의 컵라면도 흘깃거려 보고, 총 2번의 식사와 1번의 간식을 먹었습니다. 앉은 자리에서 사육 당하는 기분이 들더군요.

▲ 10시간 동안 난기류 한 번 없이 안전한 여행을 가능하게 한 루프트한자

엄청난 비행기 엔진 소음과 함께 좁은 이코노미 좌석에서 보내는 10시간이란 아주 작은 일에도 예민해집니다. 책을 잡았지만, 쉬이 집중하기는 어렵더군요. 제 자리는 창가 좌석이었기 때문에 창문을 밀어 올리면 하얀색의 구름바다가 보였습니다.

독일까지 가는 동안, 연해주와 러시아 대륙을 볼 수 있을 거라고 들었는데, 확인하기는 어렵더군요. 구글 어스를 들여다보는 기분인가요. 영하 50도라는 바깥 온도에 기가 질려, 창문에 달라붙는 하얀색 서리를 바라보며 긴 시간을 보냈습니다.

널리 알려진 대로 프랑크푸르트 국제 공항은 유럽의 관문 중에 하나입니다. 거대한 공항에서 다시 국내선으로 갈아타는 동안, 독일이 이렇게 큰 나라였던가 하고 새삼 체감하였습니다. 제법 까다로운 검색 과정을 거쳐서 이윽고 한밤중이 다 되어서야 숙소가 위치한 드레스덴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라이프치히는 이미 게임 컨벤션을 찾는 전세계에서 온 관람객과 관계자들로 만원이기에, 일행의 숙소는 비교적 가까운 드레스덴이 되었습니다.

까다로운 검색 과정으로 잠시 돌아가자면, 독일인 다운 꼼꼼함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더듬어 내려가는 검색요원의 매운 손 끝이라니, 나중에 국제공항에서는 노트북은 물론이고, 취재용 카메라와 캠코더까지 꺼내 보여야 했답니다. 캠코더가 이상 없이 돌아가는 지 전원을 켜서 화면까지 보여주어야만 했고요.

▲ 하늘 위에서 바라본 독일, 모자이크로 보이는 들판이 인상적이다

독일에서도 비교적 대도시인 프랑크푸르인데도 불구하고, 하늘 위에서 보았던 거대한 숲의 바다는 인상적이었습니다. 한 번 길을 잃으면 빠져나올 수 없을 것만 같은 깊은 녹색의 숲이었습니다. 우리와 같은 산이 아닌 평지였고 집과 가까운 곳에 있는 숲이었습니다.

독일은 도시의 40% 이상을 녹지로 가지고 있는 ‘녹색국가’입니다. 유럽에서도 환경운동과 시민운동을 내세우는 ‘녹색당’이 캐스팅보트를 쥐고 적극적으로 현실정치에 영향력을 발휘하는 드문 나라죠. 덕분에 호텔에서는 일회용 칫솔을 찾아볼 수 없고, 들판 곳곳에 풍력발전을 일으키는 거대한 풍차를 만날 수 있습니다.

인구 100만이 넘는 도시가 단 3곳, 녹색국가 독일

프랑크푸르트는 독일에서도 손 꼽히는 대도시임에도 불구하고 도시 한가운데에서는 높은 빌딩을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것은 라이프치히도, 드레스덴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상대적으로 개발이 덜 된 구 동독의 도시라는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는 오래된 문화 유적들을 보호하는 의지가 더 강하기 때문이겠죠. 유럽의 도시들이 그러하듯이 독일도 강력한 개발 규제로 높은 빌딩 건축을 막고 있습니다.

독일은 전 도시를 통틀어서도 인구가 100만을 넘는 도시가 수도인 베를린, 항구도시인 함부르크, 그리고 뮌헨 불과 3곳에 불과합니다. 전체 인구는 7,500만 명을 헤아리지만, 우리나라처럼 인구 집약적인 도시는 아니죠. 덕분에 도시는 쾌적하고, 많은 사람들이 작은 동네에서 자전거를 타고 대부분의 이동을 해결합니다.

▲ GC 현장에서 매일 발간되는 게임마켓 소식지

널리 알려진 것처럼 독일은 유명한 자동차 생산국가이며, 농담처럼 듣던 ‘메르세데스 벤츠가 택시’라는 이야기를 사실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아쉽게도 타보지는 못 했네요. 독일의 국민자동차 회사인 폴크스바겐부터 벤츠, BMW를 거리에서 찾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시민들의 소형차 위주로 차를 타고 다니며, 그마저도 낡은 차들이 많습니다. 거리에는 자동차보다 자전거가 먼저이며, 심지어 사람보다도 자전거가 먼저인 ‘자전거 천국’입니다.

첫 날, 숙소에 도착하여 짐을 풀었던 시간은 밤 11시가 다 되어서였습니다. 샤워기에서 나오는 물에는 미세한 석회냄새가 납니다. 독일에 왔으니 맥주! 가 아니라, 절반은 수면제 용으로 벌컥벌컥 마시고 잠이 듭니다. 조금 불안한 생각이 듭니다. 잘할 수 있을까?

둘째 날부터 본격적인 취재가 시작되었습니다. 드레스덴에서서 라이프치히까지 두 시간에 가까운 거리를 달려 거대한 라이프치히 메쎄에 도착할 수 있었죠. 시 외곽에 위치한 라이프치히 메쎄는 정말 박람회의 나라를 단번에 이해할 수 있을 만큼 거대하고 잘 만들어진 공간이었습니다. 특히, 햇빛이 잘 들어오는 유리구조가 인상적이었죠.

▲ 라이프치히 메쎄, 유리홀이 각각의 홀을 연결하는 심장부에 해당한다

▲ '스포어' 캐릭터 인형의 한가로운 한때. 매우 편안해 보였다.

▲ GC에서는 보기 드문 미녀 부스걸 (캠페인걸)

취재를 끝내고 두 시간 길을 달려 드레스덴 숙소에서 기사를 쓰기 시작한 시간이 다시 밤 11시군요. 한국은 독일과 시차가 7시간이 나기 때문에, 이제 슬슬 아침이 밝아오는 새벽 6시쯤 되었을 겁니다. 10월까지는 ‘썸머타임’이 적용되기 때문에, 8시간의 시차가 한 시간 앞당겨졌죠. 금요일 밤, 거리로 난 창에서는 사람들의 즐거운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맥주 한잔으로 밤을 지새우며 이야기하는 유럽 사람들을 뒤로 하고, 새파란 모니터 위로 오후에 이루어진 인터뷰가 빠르게 지나갑니다. 기사 하나를 완성하고 나니, 시간은 이미 자정입니다. 아직 끝나지 않은 과제들이 보입니다. 기사를 대신 써주는 ‘우렁각시’라도 있었으면 좋겠네요. 창 밖의 불은 환하고, 음악소리 같은 유럽 관광객들의 목소리도 끝도 없이 들려옵니다. 낡아서 더 아름다운 도시인 드레스덴의 밤이 깊어갑니다.

대학을 가지 않아도 행복한 사람들

지루하게 써 내려가던 기사에서 고개를 들어, 창 밖을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영영 가질 수 없을 것만 같은 여유와 자유의 시간들이 거기 있습니다. 내내, 내가 하고 있었던 일들이 무엇이었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천천히 나오는 음식에 조급해하지 않고, 상대방의 눈을 바라보며 대화하는 사람들. 저녁 8시만 되어도 상점이 문을 닫고, 일요일에는 아예 하루 종일 상점 문을 열지 않는 사람들. 여름 내내 햇빛을 찾아 바캉스를 보내는 사람들.

무엇보다 대학을 가지 않아도, ‘강남’에 내 집이 없어도 행복한 사람들. (실제로, 독일의 대학 등록금은 무료인데도 불구하고, 진학율은 20% 정도. 많은 사람들이 직업학교를 선택합니다.) 언제나 지나친 경쟁과 희생을 요구하는 사회에서 살고 있는 제게는 짧은 시간에 이해하기에는 너무 벅찬 일들입니다.

▲ 기사를 쓰는 밤새 들려오던 사람들의 목소리, 그리고 낮의 카페 테라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하죠. 독일 게임과 게임 컨벤션을 이해하기 위해서 그들의 삶을 잠시라도 더 들여다보려고 노력해보았습니다. 동, 서독 통합 이후 이루어진 양 쪽 국민들의 갈등, 엄청난 통일비용, 그것은 분단 국가의 운명을 아직도 지속 중인 우리에게 더욱 뼈저린 이야기입니다. 시내 가이드를 해주셨던 분의 이야기가 잊혀지지 않습니다.

“독일에서 유명한 교수님이 말씀하신 것이 기억납니다. 완벽한 통일이란 통일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이 자라고 난 한참 후에나 가능하다고.”

게임 컨벤션이 개최된 라이프치히는 구 동독에서도 손꼽히는 도시이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민간 오케스트라가 있는 아름다운 도시입니다. 게임은, 그리고 산업으로 확장된 게임 박람회는 이 도시에 커다란 활력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삶도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라이프치히 게임 컨벤션이 일구어낸 호황과 축제의 분위기는 그들의 것이지만, 또한 영원한 것은 없습니다. 서독의 발전된 도시 쾰른으로 예정된 게임스컴(GamesCon), 또 하나의 GC를 향한 도전이 남아있습니다. 이 젊고 순수한 친구를 내년에도 라이프치히에서 만날 수 있을까요?

“인간은 노력하는 한 영원히 방황하는 법” 괴테의 ‘파우스트’에 등장하는 이 말은 인생의 등불이 된 말 중에 하나입니다. 우리의 계속된 방황을 끊임없는 삶의 노력으로 치환시켜 주는 저 높은 자의 격려가 따뜻하게 들립니다. 거대한 게임 전시회가 사라지는 동안, 작은 도시에서 일구어낸 기적은 우리에게도 배울 점이 있습니다.

쇼의 크기나 참여하는 업체들의 숫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곳에 있는 사람들의 즐거움과 열정이 더 중요하다는 교훈. 쇼를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보여주어야 하는 것은 새로운 게임만이 아니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오는 11월, 한국의 일산에서도 거대한 숲이 되는 작은 씨앗이 뿌리내리길 기대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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