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 주: 게임메카와 이야인터렉티브는 ‘귀환병이야기’ ‘쿠베린’ 등의 작품으로 잘 알려진 판타지 소설 작가 이수영씨의 ‘루나 연대기’를 매주 월/목요일 주 2회 연재합니다. 소설 ‘루나 연대기’는 ‘루나온라인’의 기본 세계관인 블루랜드를 배경으로 한 왕자의 모험담을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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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어쨌거나 푸케리안도 와.”
“어딜요?”
왕자의 뜬금없는 말에 뜨거운 물에 차를 우리던 노파가 고개를 들었다. 희번덕거리는 눈빛이 섬뜩해보이련만 둔감한 왕자는 무심했다.
“내 성인식. 두 달 후면 내 성년식이 되잖아.”
그 말에 놀란 푸케리안이 들고 있던 찻주전자를 떨구고 말았다. 노파는 덜덜 떨리는 손을 무시한 채 멍하니 왕자를 바라보았다.
“저, 저같이 미천한 것을 왕궁에 초대하신다는 겁니까?”
“응.”
“마, 마, 말도 안 됩니다.”
노파가 고개를 젓자, 왕자는 태연하게 대꾸했다.
“뭐가 어때서? 푸케리안과 만난 게 벌써 몇 년이야? 내 성년식에 참석하는 게 뭐가 말이 안 돼? 내 대모가 되어 주면 좋겠는데.”
노파의 눈은 튀어나올 정도로 커졌다. 왕자는 그 얼굴을 보고 히죽 웃었다.
“이야, 튀어 나오겠다. 눈알 진짜 크네.”
“와, 와, 왕자님!”
노파는 어쩔줄을 몰라 하며 물에 젖은 손바닥을 더러운 치마에 문질러 닦았다.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마구 저었다.
“이, 이, 있을 수 어, 없는 일입니다. 이 추악한 마녀를 대, 대, 대모로 삼으시겠다니오! 고귀하신 왕자님이!”
“나를 몇 번이나 치료해 주고 도와줬잖아? 대모라는 건 나를 도와주는 상냥하고 좋은 모친을 말하는 거 아닌가? 푸케리안이 못 생긴 거 하고 대모가 못 되는 것하고는 상관이 없지.”
“그, 그....”
노파의 눈에서 눈물이 새어 나왔다.
툭툭 떨어지는 눈물방울을 보면서 왕자가 웃었다. 잘생긴 얼굴에 매달린 미소는 매력적이고 호쾌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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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야, 감격했어? 감격했으면 오라구. 나, 어마마마에게 말했는데 어마마마께서도 초대해도 괜찮다고 했어.”
“저는 마, 마녀인데요?”
“착한 마녀지.”
왕자는 부른 배를 쓰다듬으면서 하품을 했다.
“고기를 좀 먹었으면 좋겠는데 오늘 사냥은 망쳤어. 저녁 식사시간까지 맞춰서 가려면 이 부운 발이 빨리 가라앉아야 된다고.”
마녀는 눈물을 뚝뚝 떨어뜨렸다.
“그만 울어. 푸케리안. 못 생긴 얼굴이 더 못 생겨진단 말이야.”
퉁명스런 위로에 그녀는 피식 웃었다. 주름진 손등을 살짝 잡아 준 왕자의 따스한 손을 보다가 그녀는 조용히 말했다.
“왕자님.”
“왜?”
“누군가의 대모가 된다는 것은 정말 멋진 일인 것 같습니다.”
“그래? 난 여자가 아니라 잘 몰라. 하지만 푸케리안은 착한 대모야.”
그 말에 마녀가 웃었다.
“여자 마법사가 마녀가 되는 순간은, 다른 이들에게 미움을 받는 순간이라는 말이 있지요. 초대 받지 못한 마법사는 마녀가 된답니다.”
왕자는 푸케리안의 손을 잡은 채 고개를 갸웃했다.
“그럼 초대 받은 착한 마녀는 어떻게 되는데?”
“소원을 들어주는 착한 요정이 되는 거지요.”
흉한 얼굴에 눈물을 달고 그녀는 환하게 웃었다. 우는 얼굴을 보던 왕자가 미간을 찌푸렸다.
“울 정도로 좋은 일이야? 난 예식은 질색이더라.”
“다른 사람들의 앞에 나선 것도 워낙에 오래되어서요.”
푸케리안은 스산한 어조로 중얼거렸다. 그녀는 눈물을 닦아내면서 멍하니 중얼거렸다.
“눈물을 흘린 것도 정말 오랜만의 일입니다. 제게 큰 선물을 주셨어요.”
“그게 큰 선물이야? 하지만 푸케리안은 내 생명을 구해주었는데?”
“신분이 높은 왕자님이 이 미천한 천것에게 관대하신 것은 정말로 자비로우신 일이지요.”
왕자는 머리를 긁적였다.
“글쎄. 도움을 받았다면 당연히 그 보답을 하는 거다. 신분이 높은 자이니 만큼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성년을 앞둔 왕자는 벌써 부기가 가라앉고 있는 발목을 주무르면서 중얼거렸다.
“비천한 자는 비천하게 굴기에 비천한 자인 거야. 고귀한 자는 고귀한 행동을 하기에 고귀한 것이고. 안 그래?”
대답대신 마녀는 미소 지었다. 흉악하기 그지없는 얼굴이었지만 왕자는 시선을 피하는 대신 오히려 물끄러미 바라보면서 물었다.
“부탁이 있어.”
“네?”
“오늘 여기 온 것은 그 부탁 때문이었지.”
갑자기 진지해진 왕자의 말에 마녀는 공손하게 서서 그의 말을 기다렸다. 왕자는 언제나 엉뚱한 일을 저질렀다. 비록 그의 육체가 마녀의 약으로 단련되었다고는 해도 그래도 아직은 성년도 치르지 않은 소년의 몸이다. 그녀는 불길한 예감에 두 손을 마주 잡았다.
“며칠 후면 아바마마의 생신이시다. 올해 50세가 되시는 탄신일이니 뭔가 특별한 것을 선물 하고 싶어.”
푸케리안은 눈을 꿈뻑거렸다.
“특별한 것이오?”
“그래, 이를 테면 숲의 왕이라던가.”
“왕자님!”
마녀는 기겁했다. 그녀는 비명을 삼키며 결사적으로 소리쳤다.
“말도 안 됩니다! 그림자의 사자는 그냥 맹수가 아닙니다! 어둠의 숲의 왕입니다. 절대로 인간이 잡을 수 있는 자가 아니에요!”
왕자는 사색이 된 그녀를 무시하고 중얼거렸다.
“나도 이해가 가긴 해. 오늘 본 그 검은 사자는 진짜로 소름이 끼쳤어. 멀리서 본 것만으로도 온 몸이 부들부들 떨리더라고. 난생 처음으로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그, 그럼 처음부터 숲의 왕을 잡으려고 어둠의 숲에 들어오신 겁니까?”
“응.”
그 태평한 말에 마녀는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절로 입이 딱 벌어지는 이야기였다.
“뭐, 물론 그게 평범한 마수가 아니라는 것쯤은 나도 알아. 하지만 방법은 있을 거야. 신조차 약점이 있고 드래고니언조차 급소를 맞으면 죽잖아? 그러니까 뭔가 약점이 있긴 있을 거야.”
변명하듯이 왕자는 슬쩍 덧붙였다.
“그런데 알려진 바로는 숲의 왕에게는 약점이 없다 들었어. 하지만 푸케리안은 대단하니까 약점을 알고 있을 거야. 그것을 잡을 방법은 뭐야? 푸케리안은 현명하니까.”
“모릅니다. 이런 무모한 것을 생각하시다니. 저 같은 천한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네요.”
기가 막혀 힘없이 고개를 젓는 그녀를 보면서 왕자는 콧등을 찡그렸다.
“무모하다니. 노리려면 최고의 것을 노려야지. 어둠의 숲에 있는 것들에 대해서 푸케리안만큼 잘 아는 사람은 없잖아? 뭔가 방법이 있을 거야. 나는 아바마마의 생신 선물로 검은 사자를 바치고 싶어.”
한 번 말한 것을 반드시 지키는 왕자다. 푸케리안은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
“숲의 왕은 인간이 잡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제발 마음을 돌려주세요. 트롤이나 오거보다도 무서운 것이 그림자의 왕이랍니다.”
푸케리안은 열심히 설명했다.
“어둠의 숲은 마물들이 들끓는 저주받은 숲입니다. 저 숲에 끝이 없다는 것은 알고 계시지요? 저 숲은 인세에 존재하지만 사실은 인세에 존재하는 곳이 아니에요. 저주받을 사악한 세상과 이 세상을 연결하는 통로인 셈이죠.”
“통로?”
왕자는 뜻밖에도 진지하게 듣고 있었다.
“그럼 저 숲은 단순히 넓기만 한 게 아니야?”
“그럴 리가요. 아무리 기이한 장소라 해도 생명체가 사는 곳은 어느 정도 규칙과 균형이 살아 있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저 숲 안은 균형도 규칙도 없어요. 저 안은 오로지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 지옥과도 같은 곳입니다.”
드물게 진지한 푸케리안의 얼굴을 묵묵히 바라보면서 왕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에게 있어 이는 새로운 세계이기도 했다. 학자라는 것이 귀한 케난게에서는 미지의 것에 대해 연구하거나 탐구하는 자들은 거의 없었다.
“그 숲의 정점에 있는 것이 바로 숲의 왕, 검은 그림자의 사자 왕입니다. 모습은 사자이지만 실은 사자가 아니지요. 그저 사자의 모습을 하고 있을 뿐이랍니다. 게다가 그림자의 왕은 죽일 수 없어요.”
“죽일 수 없어? 정말로?”
“그렇습니다. 그림자의 왕을 죽일 수 있는 것은 두려움을 모르는 자 뿐이라 알려져 있답니다.”
“두려움을 모르는 자?”
왕자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그 얼굴을 보고 마녀는 진지하게 말했다.
“하지만 살아 있는 자는 두려울 수밖에 없죠. 숲의 왕은 생명을 삼키는 자, 생명을 마시고 스스로 움직이는 자이니까요.”
“두려움이 없으면 잡을 수 있단 말이지?”
“하지만 그건 불가능합니다. 대담한 왕자님도 멀리서 보기만 해도 겁에 질렸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푸케리안의 하소연에도 왕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불안해진 마녀가 막 뭐라 할 때였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기다리다 지친 모양인지 맥갈프가 소리쳐 외치고 있었다.
“왕자님! 왕자님! 무사하십니까?”
“아아.”
왕자는 천천히 일어나 문을 열었다. 어느 새 부츠까지 신은 왕자는 허리에 찬 검을 고쳐 메고는 부른 배를 두들겼다.
“잘 먹었어. 푸케리안.”
“조심하셔야 합니다. 절대로 그런 무서운 생각을 하시면 안 됩니다.”
불안한 얼굴로 그녀가 몇 번이나 말했지만 왕자는 여전히 태연자약한 얼굴로 히죽 웃었을 뿐이었다. 그리고는 질질 끄는 걸음걸이로 걷기 시작했다. 대기하고 있던 창백한 맥갈프는 왕자의 신상에 무슨 문제가 있을까 두려웠는지 몇 번이고 몸을 살폈다.
“저 마녀가 무슨 사악한 짓이라도?”
“귀가 너무 얇으면 못 써.”
왕자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느긋해 보이는 발걸음이었지만 눈빛은 번쩍번쩍 빛나고 있었다. 그의 혈통은 사냥꾼이었다.
목표를 잡기 위해 숨을 죽이고 약점을 잡았다 싶으면 도약해서 상대방의 숨통을 물어뜯는 사냥꾼. 사냥감을 노리지 않는 평상시에는 양순한 모습으로 늘어져 있다. 그 때문에 태평하기 그지없는 느릿한 몸짓에 방심한 자들이 몰려든다.
그렇게 약점을 보이면 한 방에 끝이 난다.
“두려움이라……. 무서워하지만 않으면 된다는 거잖아?”
왕자의 입가가 살짝 벌어졌다. 하얀 송곳니가 드러났다. 빛을 발하는 눈빛은 소년의 것이 아니라 당장이라도 적의 목덜미를 물어뜯을 준비를 마친 야수의 그것이었다.
“왕자님?”
“맥갈프, 궁에 돌아가서 건량 좀 가져와. 며칠 간 먹을 식량 말이야.”
“저는 전하의 호위입니다!”
“그러니까 가져오라고.”
킬킬 웃는 악동의 모습에 맥갈프는 맥이 탁 풀렸다. 안 그래도 마녀와 왕래하는 것 때문에 기사단 안에서도 말이 많고, 왕실 어른들도 불안해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 왕자의 불가사의한 힘에 휘둘려 모두 침묵하고 만다. 유달리 강인한 힘과 자신의 존재감을 자연스럽게 과시하는 이 소년 앞에서는 나이도 무색했다. 괴물에 가까운 그 힘과 대담함에 검을 쥔 자들이라면 자연히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괴물이야. 정말로 저 분이 18살도 채 되지 않았다는 건 믿을 수 없어.’
불안해하면서도 맥갈프는 순순히 왕자의 명에 따라 발길을 돌렸다.
혼자 남은 왕자는 어둠의 숲의 심처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허리에 매달린 검이 철렁철렁 흔들렸고 어깨에 매단 활이 그의 엉덩이를 철썩철썩 때렸다. 왕국 최고의 대장장이가 만든 활과 화살이 불길한 빛깔을 띤 채 아직 어린 왕자의 몸에서 흔들렸다. 아직 어리긴 했어도 왕자는 왕국 최고의 사냥꾼이었다. 최고의 사냥꾼이 노리는 것은 항상 최고여야 하는 법. 왕자는 최고의 사냥감을 택했다.
어둠의 숲의 왕, 검은 그림자의 사자.
태고의 어둠에서 태어났다는 불사의 짐승. 아니, 사실 짐승인지 아닌지도 확실치 않았다. 그래도 왕자는 탐이 났다. 그 불가해한 위엄에 찬 모습을 처음 본 순간부터 그는 그 사자가 자신에게 있어 최고의 사냥감이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저것은 잡아야 해. 저것을 잡아 부왕의 생신축하선물로 바치리라. 최고에겐 최고가 어울려.
항상 느긋하기만 했던 왕자는 난생처음 느끼는 갈망에 몸서리를 쳤다. 심장이 쿵쿵 두 배로 빨리 뛰면서 흥분감을 고조시키고 있었다.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위기감과 동시에 느껴지는 기대감.
“후하!”
왕자는 음지에서 피어난 검붉은 버섯 한 줌을 잡아 주머니에 집어넣었다. 이미 맛본 독버섯이다. 푸케리안은 질겁했지만 왕자는 이 독버섯이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어지간한 독초는 거의 다 맛을 본 뒤다.
그는 주저하지 않고 보기에도 불길한 버섯을 한 입 깨물며 느긋하게 어둠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혀가 아리고 입안이 마비되는 지독한 이 독버섯에는 놀라운 효능이 한 가지 있었다. 붉은 미치광이 버섯이라 불리는 이 버섯은, 이성을 마비시키고 환상을 보여주며 자신감을 부여하는 마약이었다. 물론, 죽기 전까지 말이다.
쓰디쓰다 못해 아예 미각을 마비시키는 독초를 삼키면서 왕자는 숲 안을 걸었다. 숲의 왕은 인간들은 가까이 가지도 못하는 깊숙한 심처에서 지내고 있었다. 검푸른 늪이 거울처럼 매끈하게 펼쳐진 그곳은 벌레마저도 사라진 독지였다.
“킬킬킬....”
미친 사람처럼 웃으면서 왕자는 계속해서 독버섯을 씹었다.
입 안에서 거품이 허옇게 일어났지만 그는 거의 느끼지 못했다. 눈빛이 벌겋게 변하고 걸음걸이가 휘청거렸지만 목표를 잊진 않았다. 전신에서 광포한 활기가 일어났다. 두려움이든 망설임이든 그 모든 소심한 것들은 사라지고 뭐든지 잡아 죽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일어났다.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을 느끼면서 왕자는 검을 뽑았다. 퍼렇게 빛을 내는 검보다 사실 화살이 믿음직스러웠지만 이성이 거의 마비된 터라 판단은 흐려졌다.
하지만 잊지는 않는다. 그의 목표는 탐스러운 사냥감.
“!”
마비된 입안을 게워내면서 그는 킬킬 웃었다.
왕이여, 오라. 나는 두려워하지 않는 자. 두려움을 잊고 달려드는 자.
최고의 사냥꾼에게는 최고의 사냥감이 어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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