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CA BLOG: 게임메카 기자와 필자진들이 ‘뉴스’ 이외의 읽을거리를 제공하는 공간입니다. 영화, 음악, 만화, 게임 등을 소재로 형식 없이 자유로운 이야기가 비정규적으로 펼쳐질 예정입니다.
|
|
그 시절 ‘조작치’인 내가 혼자 열심히 대전액션게임을 하고 있으면, 동전 들어가는 소리와 함께 오락기 너머에서 대전을 걸어오는 남자아이들이 있었다. 살짝 고개를 들어보면 보이는 남자아이의 의미심장한 미소. 무시하고 있다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나는 번번이 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 나는 곧장 옆자리에서 게임을 하던 내 친구를 조용히 불렀다.
그러면 얼마 후 그 남자아이는 자존심 상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서서 우리를 흘깃 보고 사라졌다. 우리 둘은 앉은 자리에서 멀어지는 남자아이의 등을 보며 키득거렸다. 그 시절, 수 많은 남자들을 오락실에서 쓰러뜨리던 친구덕분에 나는 꽤 의기양양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
||
|
그 시절 남자아이들, 여자아이들은 끼리끼리 오락실에서 게임을 즐겼다. |
‘조작치’라는 핑계를 대고 나는 스스로 게임을 즐기기보다 친구의 게임하는 모습을 보는 것을 더 좋아했다. 함께 비디오 게임을 하다가도 어려운 부분이 나오면 손을 놓아버리고, 친구에게 맡겨버리는 나는, 게으른 게이머였다. 덕분에 내 조작치는 지금까지도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게임을 좋아하는 내 친구는 보통의 여자애라면 바비 인형을 가지고 놀았을 나이부터, 게임을 좋아했고, 지금도 몹시 좋아한다. 그것도 여자로서는 드물게도 비디오 게임 마니아. 보통의 여대생도 즐겨 하는 게임이 되어버린 ‘카트라이더’, ‘오디션’ 같은 게임도 그녀에게는 관심 밖이다. 온라인 게임 계정은 만들 줄 알아도, 일주일 이상 즐기는 것은 보기 힘든 일이다. 여전히 그녀는 비디오 게임기 소프트웨어를 잔뜩 쌓아놓고, 가끔은 ‘국전’을 헤매며 중고 게임소프트웨어를 사들이고 있다.
|
‘무심한 듯 쉬크하게’ 게임을 즐기는 것은 내 친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 우리는 함께 ‘D.O.A’의 영화 버전을 보러 가 꾸벅꾸벅 졸았고, 영화버전의 ‘사이렌’을 보고 이건 “호러가 아니고 코메디”라며 허름한 영화관 한 쪽 구석에서 낄낄거렸다. 공포영화라면 질색하는 내게도 그 영화의 과장된 신음소리는 지나치게 코믹했다. ‘하우스 오브 데드’의 새로운 시리즈는 너무 어렵고, 예전의 B급 고어물에서 느낄 수 있었던 재미가 사라져 징그럽기만 하다고 수다를 떤다. 가끔은 가챠퐁을 돌리며 과거 즐겼던 게임 캐릭터의 피규어를 골라내기도 한다. |
우리가 좋아하는 게임은 세상에서 인기가 많은 게임과 다르다는 이야기도 대화에 자주 등장하는 화제다. 나는 이른바 ‘쿠소(쓰레기)게임’으로 낙인 찍혔던 ‘일격살충!! 호이호이상’의 캐릭터성에 열광하고, 그녀는 국내에서 인기 없는 ‘토로 시리즈’의 소프트웨어를 모으기 위해 혈안이 되어있다.
내 친구의 게임에 관한 해박한 지식과 감각은 게임기자인 나조차 부끄럽게 만든다. 그녀의 솔직 담백한 평가와 촌철살인의 말들은 내게 도움이 되고, 나 역시 그녀에게 최신의 게임정보를 전달하는 것을 즐거움으로 삼는다. 특히, 모두가 사랑하는 A급 대작 게임보다 B급 게임에 열광하는 그녀는 B급 게임을 조롱하며 아낌없는 사랑도 함께 퍼준다. 나는 그녀의 악담의 충실한 조언자가 되어, 귀동냥을 하는 것이 변함없는 우리의 일상이다.
|
||
|
명품 가방도 명품 게임도 좋아하는 사람은 따로 있다. 우리 안의 '마이너게임'을 찾아서~ |
세상은 게임을 즐기는 여자를 낯설게 받아들인다. 하지만, 그녀와 내가 즐겨 마시던 음료는 콜라에서 커피로 바뀌고, 우리의 옷차림도 교복에서 정장으로 바뀌었지만, 우리 안에 ‘게임’은 변함이 없었다. 그 동안 ‘펌프’를 즐기던 친구들도, ‘틀린그림찾기’와 ‘보글보글’에 열광하던 친구들도 자라나 숙녀가 되었고 더 이상 오락실을 찾지 않는다. 그 친구 중에 누군가는 이미 결혼해 ‘아줌마’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내 친구와 나는 여전히 게임을 좋아하고, 만화책을 즐겨 보고, 추리소설과 판타지를 손에서 놓지 않고 있다.
우리를 둘러싼 세상도 천천히 변하고 있다. 텔레비전에서는 이나영이 나와 하얀색 NDSL을 들고 ‘뉴슈퍼마리오’를 즐기고 있다. “버튼을 잘못 눌렀어~”라고 크게 팔을 휘두르는 그녀의 행동은 깨물어주고 싶을 만큼 깜찍하다. 너무나 멋들어진 원룸에서 밝고 맑은 표정으로 게임을 즐기는 그녀의 얼굴에는 한 점의 얼룩도 없다.
|
장동건이 그랬던 것처럼, 사람들은 이나영을 보며 게임기를 사고 싶어한다. 게임이 좋은 것일까? 이나영이 좋은 것일까? 나조차 헷갈릴 지경이다. 서툴게 게임기를 조작하는 그녀를 보며 많은 남자들은 이나영 혹은 이나영과 같은 여자친구와 함께 게임을 하는 상상에 빠진다. 환상 속에 그녀들은 결코 내 친구처럼 오락실에서 남자 게이머들을 쓰러뜨리는 화려한 기술을 자랑하지도, 방 한구석에 게임소프트웨어를 잔뜩 쌓아놓지도 않는다. 닌텐도DS는 알아도, 패미콤은 모를 것이다. ‘뉴슈퍼마리오’는 즐겨도 마리오, 피치공주, 쿠파의 삼각관계에 대한 농담은 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
잘 만든 광고는 우리 속에서 오히려 현실에 존재하는 내 친구 같은, 때로는 남자보다 게임에 익숙한 그녀를 낯선 존재로 만들어버린다.
우리 역시 이나영이 등장하는 게임광고가 좋지만, 이나영보다 그녀가 즐기는 ‘뉴슈퍼마리오’의 게임 플레이가 더욱 궁금하다. 어릴 적 추억 속에서 슈퍼마리오는 보습학원에서 돌아와 손의 지문이 닳도록 즐기던 게임이었다. 그녀와 나는 경쟁하듯이 게임을 했고, 부모님이 시골에 가신 날이면 밤이 새도록 컨트롤러를 붙잡고 있었다.
|
||
|
십 년이란 세월은 강산도 변하게 하고, 우리 역시 '낯선 어른'이 되었지만... |
그녀와 내가 게임을 즐기는 공간은 예쁘게 포장된 텔레비전 속 예쁜 그림이 아니다. 가끔은 너저분하게 읽었던 만화책이며, 공략집이 여기저기 펼쳐져 있고, 간식거리로 삼았던 과자봉지가 배를 벌리며 뒹굴고 있는 좁은 방안이다. 집안 어른들의 구박을 받으며 모은 게임 소프트웨어는 어서 플레이해주길 바라며 쌓여있다.
밤새도록 게임을 하자고 찾아간 어느 날 밤에도, 반복되는 게임 플레이에 쉽게 질려버리는 내가 먼저 그녀의 게임 플레이를 보다가 잠이 든다.
|
잠에서 깨어나면 어느새 마법처럼 그녀는 다음 스테이지에 넘어가 있고, 난 지나간 부분의 게임스토리를 듣는다. ‘아, 그렇게 넘어가는 거였구나.’ ‘아, 걔는 그래서 그랬구나.’ ‘어쩌면, 그럴 수가!’ 나는 그녀가 이야기해 주는 게임 스토리가 게임플레이보다 재미있게 다가올 때가 가끔 있다. ‘게임’이 없었던 시절에도 우리는 게임을 했고, 게임을 즐기는 지금도 우리에게 ‘게임’ 그 자체의 의미는 크지 않다. 여가시간의 상당 부분을 게임을 하며 보내는 그녀의 담담한 발언이다. 실제로, 그녀에게는 게임보다 재미있는 책도, 음악도, 만화도 너무 많다. |
하지만, 그녀에게 놓칠 수 없는 신작이 출시되는 날이면 메신저로 게임 홈페이지의 주소가 날아오고 나는 그에 대한 품평을 늘어놓는다. “그 ‘사골게임’에 또 넘어가다니, 너는 바보야.” “이 돈독 오른 개발사 같으니라고. 어떻게 이렇게 머리를 잘 굴릴 수 있지? 아아, 이번 달도 파산이야.”
세상은 여자와 게임이 서로 어울리지 않는 존재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여자들도 그렇게 이야기한다. 심지어 남자 게이머들조차 게임을 너무 좋아하는 여자친구는 싫어요, 라고 말한다. 게임을 ‘너무 좋아하는 여자’란 어떤 정도일까? 게임개발자? 여자 프로게이머? 나 같은 게임기자? 아니면 내 친구? 게임을 취재하는 나도, 게임을 즐겨 하는 내 친구도 종종 게임 없이도 잘 살 수 있어, 라고 말한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사실은, 진지하게 상상해 본 적은 없다.
|
‘온라인 게임’을 모르던 시절에도, ‘던전’을 모르던 시절에도 나와 내 친구는 상상의 던전을 모험했다. 동네 도서관의 공원은 우리에게 진짜 모험의 공간이었다. 낯선 동네에서 사방을 둘러싼 돌벽을 기어오르던 시절의 우리는 말괄량이 소녀였고, 상상 속의 ‘모험가’였다. 사방으로 어스름이 깔리던 동네의 낡은 폐가에서 먼지 뭍은 장난감을 골라내면, 그것은 서랍 속 다시 없는 보물이 되었다. 예나 지금이나 세상이 바라보는 시선은 중요하지 않았다. 서툴게 게임을 하는 이나영이 있기 전부터, 앞서 있었던 무수한 많은 여자 게이머들처럼, 내 친구는 변함없이 그 곳에 있을 것이다. 오빠와 동생보다, 혹은 남자친구보다 더 게임을 좋아하는 처음 모습 그대로. 굳이 ‘게임 좋아하는 여자’라고 부르지 않아도 좋을 변함없는 내 친구의 모습 그대로. (p.s. 오늘같은 저녁이면 전화를 걸어 친구를 부른다. "야근이 늦어질 것 같은데, 들려서 맥주 한 잔 괜찮아?" 언제나 같은 자리, 같은 안주, 같은 화제의 이야기...변함없는 친구를 기다리며 나는 발길을 돌린다.) |
- 지스타 불참사 관계자들이 밝힌 '지스타 패싱' 이유
- "약속 위반" 엔씨, 아이온2 P2W 상품 논란 일자 철회
- 타르코프 스팀판 환불하니, 기존 계정까지 차단 당했다?
- 몬길 PD와 사업부장, 프란시스와 린 코스프레 약속
- 게임 과금에 '배송 실패'가 웬 말? 아이온2의 미숙한 오픈
- 출시 2일 만에 PvP ‘뉴비 제초’ 문제 터진 아이온2
- 최대 96%, 다이렉트 게임즈 ‘블랙 프라이데이’ 할인 시작
- 콘코드 팬 복원 프로젝트, SIE에 의해 중지
- 국산 서브컬처의 희망, 육성 RPG '스타세이비어'
- [순정남] '대책 없는 쓰레기'지만, 평가는 좋은 악당 TOP 5
| 일 | 월 | 화 | 수 | 목 | 금 | 토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