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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색기획] 남자의 온라인게임 VS 여자의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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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들은 드라마를 즐겨 보고, 남성들은 온라인게임을 즐겨 한다는 것이 우리 사회의 일반적인 인식이다. 따라서 미팅에 나온 여자는 어젯밤에 본 드라마 이야기를 하고, 미팅에 나온 남자는 어젯밤에 했던 온라인게임 이야기를 한다. 여자는 드라마 ‘주몽’의 ‘송일국’에 열광하고, 남자는 WOW의 확장팩 연기사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털어놓는다. 너무 다른 남자와 여자, 두 사람의 대화는 엇갈린다.

과연, 드라마와 온라인게임은 함께 할 수 없는 화제일까?

짐작과 달리, 드라마와 온라인게임은 다양한 부분에서 공통점을 드러내고 있다. 진행형의 개발부터, 높은 접근성, 독특한 배급 방법까지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 이제부터, 드라마를 즐겨 보는 여자와 온라인게임을 즐겨 하는 남자의 만남으로 가상의 대화를 꾸며 본다.

▲ 온라인게임을 즐기는 남자, 쓰랄

▲ 드라마를 즐겨 보는 여자, 소서노

남자는 대표적인 온라인게임 WOW의 용맹하고 지적인 대족장 ‘쓰랄’로, 여자는 MBC 간판드라마 ‘주몽’의 당찬 여자 주인공 ‘소서노’가 되어 가상의 대화를 나눈다. 각각 온라인게임과 드라마의 예를 들어 설명하며, 서로에 대해 공감하는 두 사람의 대화 속으로 함께 들어가보자.

남자(이하 ‘쓰랄’): 얼마 전에 재미있는 장면을 봤어요. 드라마 ‘주몽’에서 주몽이 WOW의 퀘스트를 받는 것 같은 장면을 연출하더군요. 갑자기 나타난 비금선 신녀는 부여의 운명을 예언하며 주몽에게 3개의 신물을 찾으라고 말하고, 깜짝 놀랐죠. 온라인게임에서 퀘스트를 주는 NPC와 다름 없었어요.

▲ MMORPG 주몽에 나타난 NPC 비금선 신녀, 심심할 때 한번씩 나타나 주몽에서 퀘스트를 전해준다

여자(이하 ‘소서노’): 퓨전 사극이라고 봐야 할까요? 드라마에 나타난 온라인게임의 징후라고 보아도 되겠네요. 웃으며 지나갔지만, 의미 있는 장면이란 생각도 들어요.

쓰랄: 최근에 개발자들은 온라인게임과 드라마를 비교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고 있어요. “온라인게임은 한 편의 드라마”라는 주장은 요즘 게임 개발자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내용이죠.

실제로 ‘그라나도 에스파다’의 오픈베타테스트를 진행하면서 IMC게임즈 김학규 대표는 MMORPG는 영화보다는 드라마에 가깝다고 이야기했고요.

소서노: 그렇다면, 온라인게임과 드라마는 정말로 닮은 꼴일까요? 게임과 드라마의 제작환경과 배급구조부터 한 번 이야기해보는 것도 흥미롭겠어요.

◆ 온라인게임은 개발과 서비스를 동시에, 드라마는 촬영과 방영이 동시에

쓰랄: 온라인게임과 드라마의 첫 번째 공통점은 개발이나 제작이 진행형으로 이루어진다는 점이죠. 비디오게임이나 PC게임 같은 패키지게임이 영화와 같다면, 온라인게임은 드라마와 같아요.

온라인게임은 클로즈베타테스트와 오픈베타테스트, 상용화를 거치면서 계속 게임을 개발하죠. 마케팅비용도 2: 4: 4 정도의 비율로 나뉘어 클베: 오베: 상용화 단계에 맞춰 투자되고요. 개발인원이 최대로 불어나는 시점도 오베를 겪으면서죠.

개발과 서비스가 함께 이루어지는 온라인게임의 특성상, 유저들의 반응을 통해 기존의 내용을 수정하거나 새로운 내용을 추가할 수 있는 것도 장점입니다.  

소서노: 완결된 이야기를 다루지만, 드라마의 제작도 온라인게임과 비슷해요. 방송사와 외주제작사(프로덕션)에 의해 기획이 결정되면, 시나리오/캐스팅/스탭 구성 등의 구체적인 제작일정이 나오죠.

방영이 되기 전에 드라마를 완성하는 사전제작 시스템이 보편화되지 않은 국내 사정상, 방영 약 2주일에서 한달 전부터 본격적인 촬영이 들어가요. 드라마가 방영되는 동안, 시나리오도 나오고 촬영이 진행되죠.

드라마도 스토리 수정이나 추가가 가능해요. 시청자의 반응에 따라 내용 전개가 달라지거나 연장방영이 결정되거든요. 사실, 장점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별로 없어요.

◆ ‘컨텐츠 부족’, ‘쪽대본’ 부작용 해결은 철저한 사전 준비로

쓰랄: 이 같은 진행형 개발 관행은 결과적으로 컨텐츠의 질을 떨어뜨리는 원인으로 지적되기도 하죠?

온라인게임의 경우, 미비한 서비스 준비로 인한 컨텐츠 부족, 해킹, 잦은 서버점검 및 밸런스 파괴 등이 고질병이 되었죠. 요즘은 개발사들도 서비스 이전의 다량의 컨텐츠 확보 및 보안시스템 강화 등 대책마련에 나서고 있지만요.

소서노: 네, 방영과 함께 촬영이 이루어지는 드라마 상황도 마찬가지예요. ‘쪽대본’에 대해 아시나요? 완성된 시나리오가 아니고, 앞뒤 없이 촬영분량만 ‘달랑’ 적혀있는 대본인데, 그걸로 촬영을 해요. 또 시청률 때문에 방영기간이 엿가락처럼 늘어나기도 하고요. ‘하늘이시여’가 그랬죠.

▲ 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된 드라마 ‘환상의 커플’의 경우, 마지막 회를 내보내는 동시에 실시간으로 편집이 이루어지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그래서, 드라마에서 대안으로 내놓은 게 사전제작이예요. 이미 미국에서 보편화된 시스템이죠. 우리나라에서도 ‘궁’, ‘연애시대’가 방영 전에 약 50%의 분량을 완성해서, 미술이나 음악 등 드라마의 완성도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얻었죠.

◆ 온라인게임과 드라마, 가까이 있어 너무 편한 당신

쓰랄: 온라인게임과 드라마의 공통점으로 또 뭐가 생각나세요?

소서노: 음, 높은 접근성도 공통적인 특징이 아닐까요?

▲ 무료화 전환으로 신규 유저를 확보하고, 제 2의 전성기를 연 바람의 나라

쓰랄: 맞아요. 온라인게임은 월 정액제로 서비스되는 게임을 제외하면 대부분 무료로 즐기는 것이 가능하죠. 최근에는 월 정액제로 서비스했던 MMORPG마저 대거 부분유료화로 전환하면서, 무료로 즐길 수 있는 온라인게임은 더욱 늘어났죠.

소서노: 드라마도 유료 케이블채널에서 제공하는 드라마를 제외하면 영화와 달리 무료로 시청하죠. 온라인게임의 무료(부분유료화) 서비스 전략은 캐주얼게임 시장의 확대와 남녀노소 누구나 즐기는 게임의 대중화를 유도했죠.

쓰랄: 드라마와 온라인게임은 대중과의 접근성에서 어떤 매체보다도 뛰어나요. Xbox360으로 ‘FIFA07’을 즐기는 것보다 인터넷을 통해 ‘피파온라인’을 즐기는 것이 더 저렴하고 쉬운 세상이죠.

소서노: 영화관에서 ‘괴물’을 보는 것보다 텔레비전으로 ‘주몽’을 보는 것을 쉽고 편하게 느끼는 것처럼 말이죠. 실제로, 무료로 제공되는 온라인게임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중심을 텔레비전에서 인터넷으로 옮겨놓았어요.  

◆ 온라인게임과 드라마 세계의 강자(强者), 게임포털과 방송국

쓰랄: 조금 민감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온라인게임의 서비스는 자체 서비스가 아니라면, 주로 한게임, 넷마블, 피망 등 게임포털을 운영하는 퍼블리셔에서 맡아요. 드라마는 어떤가요?

소서노: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프로덕션에서 제작한 드라마는 KBS, MBC, SBS 등 각 방송사에서 편성하고 방영하죠.

쓰랄: 그렇다면 온라인게임과 드라마의 배급 구조에서도 닮은 점을 찾을 수 있겠는데요.

소서노: 먼저, 드라마 이야길 해볼게요. 드라마 제작의 핵심은 방송사 공중파 프로그램의 ‘편성권’과 ‘제작비 지원(자본)’이라는 두 가지 권력이죠.

시청률을 보장하는 스타급 배우들의 출연료는 회당 1~2천만원 정도이고, 일주일에 2회가 방영되는 미니시리즈 드라마의 경우 회당 평균 제작비는 약 1억원이 나와요.

특별한 투자를 받지 않는 이상 일개 프로덕션에서 혼자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죠. 또한 공중파 프로그램 방영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제작은 불가능에 가까워요.

드라마를 편성, 방송하는 지상파 방송국은 3곳에 불과한데 반해, 외주제작사들 숫자는 날로 늘어나고, 따라서 방송사에 비해 드라마를 제작하는 프로덕션이 상대적으로 불리한 입장에 놓여요. 방송사는 드라마 방영과 제작비 지원을 조건으로 내걸고, 판권을 모두 가져가는 경우도 있어요.

쓰랄: 드라마만큼 심각하지 않지만, 온라인게임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지죠. 온라인게임에서도 게임포털은 자본과 자사의 가입회원, 마케팅 전문인력을 보유한 강자예요.

사실상 규모를 가진 게임포털의 숫자는 한정되어 있는데, 게임개발사의 숫자는 계속 늘어나고. 상대적으로 부족한 자본과 노하우를 가진 개발사들은 적당한 퍼블리셔를 만나지 못해 개발을 중단하는 경우도 있어요.

인터넷의 특성상 소규모 개발사라도 자체 서비스는 가능하지만, 대형 게임포털과 비교할 수는 없겠죠.

◆ 홀로서기 나서는 전문개발사, 스타와 손잡은 프로덕션

▲ 정우성, 전지현, 송혜교, 조인성 등 특 A급 스타를 보유한 연예기획사 싸이더스 IHQ는 김종학 프로덕션을 인수하며 드라마 제작에도 뛰어들었다.

소서노: 그런 관계를 전형적인 갑과 을의 모습이라고 보죠. 하지만, 언제나 해결 방법은 있는 법. 드라마에서 역전의 기회를 잡은 것은 연예기획사들의 프로덕션 사업 진출이예요. 스타를 가진 연예기획사들이 프로덕션을 세우고, 시청률을 보장하는 자사의 스타캐스팅을 전제로 방송사와의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획득하죠. 힘에는 힘, 이라는 논리랄까? 한류 덕분에, 드라마 제작에서 스타의 힘은 더욱 커졌어요.

쓰랄: 온라인게임에서도 기존의 대형 퍼블리셔의 그늘 아래 있던 많은 전문개발사들이 기술력을 바탕으로 홀로서기를 하고 있죠. ‘스페셜포스’를 개발했던 드래곤플라이의 퍼블리싱 사업 진출 같은 사례가 있어요.

◆ 우리들의 부끄러운 자화상, 표절

쓰랄: 온라인게임과 드라마는 ‘표절’이라는 아킬레스건까지 닮은 건 불행한 일이예요. 수많은 국산 온라인게임이 일본의 패키지게임 및 북미의 온라인게임 WOW와 비교되면서 몸살을 앓았죠. 넥슨의 ‘카트라이더’는 닌텐도의 ‘마리오카트’에, 네오플의 ‘신야구’는 코나미의 ‘실황야구’에, 이미 많은 게임들이 도마 위에 올랐어요.

소서노: 네, 독창성 부족은 공통적으로 지적 받는 문제점이죠. 드라마의 경우, 표절 시비로 인해 드라마가 조기 종영되기도 해요. 과거 MBC의 드라마 ‘청춘’이 일본 드라마 ‘러브제너레이션’의 표절시비로 조기 종영했고, 최근에는 SBS의 수목드라마 ‘외과의사 봉달희’가 미국 드라마 ‘그레이 아나토미’와 비슷하다는 비판을 받았죠.

안타까운 동시에 실망스러운 부분이예요. 한류를 타고 아시아 전역은 물론이고, 전세계 사람들이 시간차 없이 볼 수 있는데 ‘눈 가리고 아웅’ 이잖아요.

◆ 아시아를 사로잡은 한류, 온라인게임과 드라마

쓰랄: 온라인게임과 드라마는 한류로 자리잡으며 실속을 챙겼죠. 아직까지는 성공적이라고 생각해요. 온라인게임은 일본,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지역에서 ‘라그나로크’, ‘미르의 전설2’, ‘오디션’, ‘팡야’ 등으로 높은 수익을 거두고 있죠.

소서노: 드라마 역시 ‘겨울연가’, ‘대장금’ 등 대박 한류 드라마를 내놓았고, 스타들은 일본/ 중국 진출의 물꼬를 텄어요. 이제, 드라마는 사회적 위상뿐만 아니라 네티즌의 자유로운 UCC 문화의 주 소재로 부상했어요.

쓰랄: UCC는 온라인게임도 활발해요. 생각해보니 참 많은 공통점을 가졌네요.

그래도 온라인게임이 드라마 이상으로 친근한 소재가 되었다고 생각하는데, 지금의 사회적 위상은 아쉬운 점이 있어요.

소서노: 저도 동감해요. 화성에서 온 남자가 열광하는 로맨스 드라마, 금성에서 온 여자가 사랑하는 MMORPG, 그런 작품이 만들어진다면, 달라지지 않을까요? 그 동안 저는 좀 더 온라인게임을 즐기고요.

쓰랄: 맞아요. 저는 WOW를 좀 줄이고, 드라마를 봐야겠어요.  

소서노: 네, 저도 ‘바람의 나라’만 하지 말고요.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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