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기사 > 전체

애들한테 돈 뽑아내는 게임 만들겠습니다?

/ 2

몇 달 전 한 게임업체의 대표와 대화를 나누던 중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었다.

“작품성이요? 돈 되는 게임 만들어야죠. 왼쪽 손엔 담배를 들고 오른손으로 사냥만 할 수 있는 시스템. 그런 인터페이스를 구사하는게 쉬운 일인 줄 아십니까. 애들(?)한테 돈 뽑아내는게 보통 일이 아니거든요. 안타깝지만 그게 현실입니다”

지난해 게임산업의 규모가 3조 9,000억원이라는 문화관광부의 발표가 있었다. IT사업이 주목할만한 성과를 이루고 있다는 것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지만 음지에서 게임을 즐기던 마니아의 고상한 취미가 이젠 공룡수준의 산업으로 부상했다하니 대수로운 일이 되버렸다. 과연 그런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한국 게임의 ‘조’단위 매출시대는 문화다양성의 논리를 희생시킨 거대한 공모 끝에 탄생한 업적에 가깝다.

리니지 시리즈와 뮤의 성공. 이 두 개의 게임이 빛을 발하고 있을 때 PC방에서 온라인게임을 즐기고자 한 유저들은 허탈한 마음에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너나 할 것 없이 똑같은 게임일색으로 도배된 PC방들의 행군들… 이런 상황에서 이 두 편의 게임이 거둔 상업적 성공을 치하하며 ‘한국게임산업의 발전’, ‘게임도 문화를 대표하는 대표적인 컨텐츠’ 운운하는 상투적인 수사는 이제 좀 지루해지지 않는가.

여러 차례 언급된 상투적인 이야기일지 몰라도 지겨울 정도로 반복되는 레벨노가다와 천편일률적인 공성전, 그리고 일없이 범죄자를 양산하는 아이템 현금거래가 현재 한국을 대표하는 온라인게임의 실태다. 겉포장지만 다른 게임들 속에서 새롭게 ‘게임’이라는 문화를 경험한 유저들은 앞서 언급한 한국 온라인게임의 한계에서 제자리 걸음마를 할 뿐, 그어진 선을 넘어서지 못한 채 오늘도 노가다 아닌 노가다를 반복한다. 이를 두고 한국유저는 무조건적으로 승부욕이 강하고, 단순일색의 게임을 좋아하는 성향이라 단언하기도 하지만 이는 먼저 텃밭에 씨를 뿌린 한국 온라인게임이 거름을 잘못 준 폐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예상하지 못한 가운데 뜻밖에도 재미있게 게임을 만드는 재능이 속속 출몰하고 있는 듯 보이다가도 Top.3의 높은 진입장벽에 부딪혀 허덕이고 있는 신규게임개발사들의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탄식이 이어질 뿐이다. 그럴 땐 습관적으로 한국게임의 발전 운운하는 기사를 썼다가 나중에 스스로 낯선 기분이 든다. “과연 한국게임이 발전하고 있는 것일까. 본인이 여론을 호도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해외시장에서 가시적인 성과를 누린 한국게임회사들의 행보는 물론 환영할만한 일이다. 허나 의례적인 해외 평가들이 과잉된 찬사로 둔갑하고 개인사이트 수준에 불과한 리뷰글귀 하나가 마치 한 국가를 대표하는 원수의 의견처럼 뻥튀기되는 업체들의 보도자료 공습은 ‘밭에서 번 돈 강남땅에 푼다’는 말을 떠오르게 만든다.

개발이익의 사회적 환원이라는 말이 있다. 남극대탐험을 비롯 현금거래근절캠페인 등에 이르기까지 사회적 환원은 여러 방면에서 이뤄지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허나 사회적 환원은 그냥 그럴싸한 포장으로 기업 이미지 홍보를 위한 수단으로 이용되기 보다는 그들의 1차적 수익원이라고 할 수 있는 게이머에게 이뤄줘야 하는게 마땅하다.

보다 훌륭한 컨텐츠를 게임에 입힐 능력이 충분히 되는 입장에서도 눈앞에 떨어지는 이익 때문에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시스템에 손대기를 두려워하는 그들의 모습은 IT산업의 선두주자를 부르짖으면서도 변화를 거부하는 이중적 태도로 일관된다. 또 1차적인 홍보수단에 PC방이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것이라면 삐뚤어진 방향으로 흐르고 있는 PC방 문화의 개선을 위해 투자하고 업주의 수익개선을 위해 최소한의 노력이라도 기울여야 하는게 상식적인 일. 해외온라인게임의 편을 들자는 것은 아니지만 단 하나의 타이틀만이라도 국내에서의 성공을 기원하는 것은 이런 천편일률적인 톱니바퀴의 수레에 일침을 가하고자 하는 의도다.

적어도 문화컨텐츠를 만드는데 있어서의 작품성 의식은 게임회사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다. 배부른 얘기일 수 있겠지만 좀 더 벌어먹고 살기 위해 정도(正道)를 포기하다 보면, 나중엔 모두가 먹고 살기 힘든 상황이 오게 마련이다. 이제 좀 제대로 돌려놓자. 그것이 후발주자들의 숨통을 트여주는 일이며 게임문화의 저변확대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다.

이 기사가 마음에 드셨다면 공유해 주세요
만평동산
2018~2020
2015~2017
2011~2014
2006~2010
게임일정
2025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