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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소프트, 얼굴 마담과 계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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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3~4년 전쯤 게임업계에서 이름만 대면 알만한 한 개발자와 만났을 때다.

당시 그 개발자는 PC게임을 개발하고 있었는데 개발 초기에 보여줬던 베타수준의 게임을 1년이 다 되도록 완성시키지 못하고 계속 개발 상황이 지지부진하던 때였다.

“아니 게임이 전혀 달라진게 없네요? 1년 동안...”

“돈 꾸러 다녔죠”

열악한 국내개발사의 사정상 개발자가 사재를 털어서라도 개발실 식구들을 먹여 살려야 하는데 게임이 완성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유통사들의 투자를 받아서 게임을 만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게임개발에 박차를 가해야 할 시간에 유통사들마다 돌아다니면서 프리젠테이션할 자료를 따로 만들고 게임을 급하게 수정해가며 데모버전과 홍보동영상을 만드느라 많은 시간과 정력을 허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나마 여러 매체에 얼굴이 팔린 자신이라도 돌아다녀야 투자라도 받을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한마디로 그 개발자는 개발자라기보다는 일종의 얼굴마담 역할을 하고 있었고 자신의 유명세를 이용해 회사에 돈을 끌어오는 대출창구에 지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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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이름만 대면 알만한 다른 개발자 이야기를 해보자.

게임에 관해 놀랄만한 열정을 가지고 있‘었’고 언제나 깜짝깜짝 놀랄만한 아이디어를 내놓‘곤 했’던 이 개발자는 기업 인수합병을 몇 번 거치면서 게임보다는 쉽게 돈 벌 수 있는 이야기와 자신의 셀러브리티를 자랑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만나기만 하면 ‘어디에 전망이 좋으니 투자를 해야겠다’, ‘해외의 누구도 날 알아준다더라’, ‘몸값을 더 올려야겠다’... 이 개발자는 묻지마 투자가 횡행하던 시절에 코스닥의 맛을 본 이후에  더 이상 게임개발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관심이 온통 돈이나 유명세를 높이는 데에만 있고 더 이상 머리 싸매고 게임공부도 하지 않는데 게임에 관해서 무슨 주저리 주저리 할 말이 있겠는가? 그래도 연말연시가 되면 각종 매체에서 인터뷰 요청도 들어오고 각종 행사에서는 빠지지 않고 초청장을 보내 귀빈 대접을 해주니 에어컨도 안 나오는 골방에서 게임제작을 할 때보다 훨씬 행복한 삶을 살고 있다고 믿을지도 모른다.

그는 지금도 자신을 유명개발자로 생각하고 있지만 내가 보기에는 더 이상 새로운 아이디어 없이 ‘쪽팔고’ 다니는 장사꾼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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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용처(?)는 조금 다르지만 위의 2가지 경우는 유명개발자가 자신의 셀러브리티(지명도)를 어떻게 사용하는지 잘 보여주는 예다. 이 ‘지명도’라는 것이 무서워서, 한 번이라도 뜬 개발자는 영화감독처럼 한 두게임 정도 말아먹어도 다음에 또 쉽게 투자를 받아 게임을 만들 수 있다.

1999년 이후 우리나라는 게임시장이 급격하게 커지면서(겉보기에는) 해외의 스타급 개발자들의 방한러시가 이루어졌다. 브루스 쉘리와 브라이언 레이놀즈, 브라이언 파고, 피터 몰리뉴, 마크 스켁스, 빌 로퍼 등 거물급 인사들도 심심치 않게 만나볼 수 있다.

업체가 그렇다고 우기니까 ‘게임디자이너’ 라고 해주는 거지 사실 이 중에는 게임개발자의 수명은 이미 몇 년 전에 끝나고 단순히 얼굴마담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그렇게 자주 해외에 얼굴을 들이밀면서 언제 공부하고 언제 게임을 만드나?).

얼굴마담 쪽으로 저울추가 기운 전직 디자이너들에게 한국의 게임매체들은 이상하리만큼 호들갑을 떨고 있는 것일 수도 있다.

엊그제 빌 로퍼 등이 속해 있는 플래그십 스튜디오와 한빛소프트의 조인식을 보면서 기자는 문득 이런 생각을 했다.

그래도 빌 로퍼 급이면 해외게임계에서도 메이저리그에서 노는 일급 뉴스메이커에 속하는데 왜 한빛소프트와 계약을 맺었는가? 블리자드를 뛰쳐나오면서 자신들의 게임을 퍼블리싱할 퍼블리셔를 찾는다고 휴대폰 번호까지 공개했던 빌 로퍼에게 매력적인 제안을 한 해외 퍼블리셔는 한군데도 없었단 말인가?

한빛소프트에게는 섭섭하게 들리겠지만 아직 한빛소프트의 온라인게임 퍼블리싱 능력은 빌 로퍼가 눈딱감고 도장을 찍을 정도로 널리 검증되지 않은 것은 사실이 아닌가?

반대로 한빛소프트는 왜 플래그십 스튜디오와 계약을 맺었는가? 빌 로퍼와 전(前)블리자드 멤버들의 후광 때문에? (이거면 정말 잘못 생각한거다. 이미 전(前)블리자드 프리미엄은 쓰론 오브 다크니스에서부터 박살났다) 그것이 아니라면 한빛소프트의 해외진출에 교두보를 삼기 위해서?(그렇다면 얼굴마담으로서의 빌 로퍼는 충분한 가치가 있지만 고액의(?) 출연료 문제가 남는다). 그것도 아니면 플래그십 스튜디오가 개발하고 있는 ‘모’ 게임이 워낙 훌륭해서? (이 경우라면 베스트지만 현재 스크린샷 하나도 공개하지 않았고 또 해외 퍼블리셔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는데 대한 답변이 궁색하다).

만에 하나라도 한빛소프트가 명장에게 써야할 돈을 마담에게 쓰는 일이 없기만을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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