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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메카 이코블루, 장마와 함께 일본 다녀 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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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숭이 섬’ 잠임 취재 명령 내려지다

“NHN저팬에서 초대합니다”

NHN으로부터 게임메카로 ‘초대장’을 보내왔다. 장소는 분당 본사가 아닌 현해탄 건너 일본 도쿄. 일본 최대 엔터테인먼트 사이트로 자리매김한 ‘일본 한게임’을 만든 NHN저팬에서 초대한 것. 내가 한국에 없는 동안 우리나라 게임계는 누가 지키지? 하는 쓸데없는 걱정부터 떠올랐다.

▲ NHN저팬 사업담당 모리카와 아키라 이사

▲ 우는 아이 울음도 그치게 한다는 '게임과 만화'

어릴 적부터 만화와 게임의 은총(주변인들은 ‘저주’라고 부름)을 듬뿍 받으며 자라온 나에게 ‘파라다이스’인 곳이 일본이건만, 이렇게 갑자기 가야 하다니! 아무리 이웃나라라지만, 생판 모르는 동경 시내를 돌아다니며 취재까지 할 수 있단 말인가. 취재명령을 받고 살짝 반항했지만, 속으로는 좋아했다. 체력과 근성만 있다면 크게 문제될 리 없으리라. (그렇게 생각했다) 동경이면, 서울이랑 별로 다른 게 없잖아?

▲ 해외출장은 근성과 지리능력, 체력으로 해결 (개념 및 판단력은 측정 불가능)

그러나 동경 출장 명령은 서막이었을 뿐, 일본을 가는 나의 품에 여기저기서 선물(?)을 안겨주기 시작했다. ‘게임천국’ 일본에 가는 게임메카 기자로서, 유저들에게 재미있는 기삿거리를 전달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일본에 놀고 먹다 오게 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에) 불타는 선배, 동료기자들의 친절한(!) 심부름 목록을 받았다.

▲ 게임메카 기자 가는 곳에 퀘스트(노가다)도 따라간다.

 ▲ '맛있는 음식'에 약한 이코블루를 유혹하는 보상은 삼겹살 아이템. 당연히 퀘스트 수행!

먼저, 액숀좀비 팀장님은 일본게임문화 취재를 요구하셨다. 비디오게임 타이틀이 팔리는 일본 소매상의 풍경부터 일본 내 온라인게임 사업현황까지, 변화하는 일본의 게임문화를 생생하게 취재해 올 것. ‘무조건 예뻐야 해’를 외치는 미카짱 기자는 일본만의 독특한 피규어문화를 취재해올 것.

▲ 보상에 있는 '미소년' 사진을 보고 퀘스트 '취소'를 누르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얼마 전 명동에 메이드카페를 다녀온 뒤, ‘명랑 건전 서비스’에 감동받은 몬시 기자는 일본 본토의 ‘메이드’를 만나고 오길 바랬다. TRPG 마니아 콜드피어 기자는 “동네 친구들이 모이던 청소년오락실은 이제 성인게임장과 사행성PC방 등으로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며 눈물을 글썽거리며 일본 오락실에 다녀올 것을 부탁했다.

마지막으로 사무실 책상 위에 태연히 미연시(미소녀연애시뮬레이션)패키지를 올려두고, ‘미소녀게임’의 취향과 게임사(史)적 의의에 열변을 토하는 바람길손 기자는 ‘므흣한’ 미소녀게임을 주문했다.

과연 이 모든 게 가능할까?

 

▲ 늦은 장마와 함께 일본 상륙

벨기에 출신의 작가 아멜리 노통브는 일본에 대한 첫인상을 ‘두려움과 떨림’이라고 표현했다. 외교관인 아버지를 따라 어린 시절을 일본에서 보낸 자신이 가진 순수한 동경이 떨림으로, 그리고 서양인 여성으로서 겪는 기묘한 이국의 생활을 두려움으로 설명한 것.

내가 가진 일본에 대한 순수한 동경과 떨림 역시 일본공항을 통과하는 순간부터 낯선 도시에 대한 두려움과 취재에 대한 부담으로 순식간에 바뀌었다. 한국을 통과한 비구름은 비행기와 함께 일본에 도착, 동경 시내를 촉촉히 적시고 있었다.

▲ 고난의 취재를 예고하는 장마 상륙

 ▲ 이국적인 분위기의 긴자의 모습

곧 큰비라도 한바탕 쏟아져 내릴 것 같은 어둑어둑한 풍경으로 회색 건물들이 줄지어 보이기 시작한다. 서울 시내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는 익숙한 동경 시내 모습. 비디오게임 속 그 재기 발랄한 장치들은 어디에 숨어있는 것일까? ‘수퍼마리오’의 벽돌 깨기처럼 건물의 벽돌에 머리라도 들이대야 나오는 것은 아닐까!

▲ 건물 전체가 오락실! 아키하바라를 가다

 ▲ 일본의 '2호선'인 야마노테센을 이용하면 쉽게 아키하바라역에 내릴 수 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오후, 일본 게임산업의 중심지 ‘아키하바라’를 찾았다. 예전의 활력은 사라진 아키하바라지만, 여전히 북적거리는 사람들과 가전제품 및 만화, 게임의 메카로 굳건히 자리매김하고 있다. 아키하바라역에서 큰 가방을 메고 내리는 뚱뚱하고 안경 쓴 사람은 ‘오타쿠’로 오해한다는 소문에 기대감(?)을 가졌으나 아무도 나를 쳐다보지 않고 바쁘게 제 갈 길만 간다. 기대와 다른 싸늘한 반응.

 ▲ 아키하바라를 보면 '용산'의 현실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

 ▲ 총 5층으로 이루어진 아케이드 게임장

아키하바라 시내로 들어가 제법 규모가 큰 오락실을 찾았다. 일본의 대형오락실들은 입구에 수많은 인형 뽑기(크레인게임)기계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여성층이나 어린이 동반 가족을 끌어들이기 위한 전략의 하나. 실제로 입구 주위에는 젊은 여성들이 눈에 띄었으나, 총 5층으로 이루어진 오락실 위층에는 여성 게이머들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과거에나 현재나, 한국이나 일본이나 오락실에서 격투게임을 즐기는 사람은 남성이 대부분이다.

 ▲ 캐릭터상품이 발달한 일본답게 크레인기계의 인형들도 다양, 여성게이머들을 발걸음을 잡는다. 본인이 직접 '리락쿠마'(인형)을 갖기 위해 두 번 도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일본의 오락실은 흡연이 가능, 재떨이를 옆에 둔 넥타이부대들이 터치스크린 방식의 조용히 게임을 즐기고 있다. 높은 층으로 올라갈수록 게임을 즐기는 넥타이부대들은 더욱 많아진다. 기껏해야 대학생층 정도가 오락실을 이용하는 ‘최고령’인 우리의 오락실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이미 우리나라 넥타이부대들은 성인PC방과 경품게임장으로 빠르게 옮겨갔다.

무엇보다 일본 오락실에서는 국내에서 보기 힘든 터치스크린방식의 게임이나 ‘아이돌마스터’와 같은 네트워크 육성게임, 다양한 체감게임을 즐길 수 있다. 실제로 일본 오락실에는 그저 구경만 해도 흡족할 만큼 게임 종류가 다양하다.

 ▲ 터치스크린 방식으로 게임을 진행

 ▲ 남코의 '아이돌 마스터' 네트워크 육성게임으로 마니아들에게 인기가 높다

문제는 게임 한판에 ‘최소 100엔’이라는 압박! 일본 오락실에서 1000엔(한화 약 8,500원)을 쓰는 데는 삼십 분도 길다. 실제로 일 분 사이에 200엔이 사라졌다. -_-

▲ 18세 이상만 출입, 금단의 ‘미소녀 파라다이스’

오락실을 나와 들어선 곳은 아키하바라의 대형 만화 관련 서점. 오락실처럼 건물 전체가 만화, 애니메이션 관련 상품을 파는 곳으로 만화책, 화보집, 애니메이션 DVD에 피규어까지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망가’의 왕국다운 모습.

그 중에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만화 전문 서점 지하에 마련된 미소녀 관련 상품만 취급하는 매장이다. 미소녀게임부터 만화책, 애니메이션 등 관련 상품 일체를 모아놓은 지하의 미소녀 전문 매장에는 18세 미만은 출입할 수 없다. 교복차림 역시 출입불가.

 ▲ 18세 미만, 교복 착용자는 미소녀 매장에 출입을 할 수 없다는 경고문구

 ▲ 벽에는 미소녀 게임의 출시일이 빼곡하게 정리되어 있다

일본의 PC게임산업을 이야기할 때 빼 놓을 수 없는 미소녀게임산업은 시장의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미소녀를 제외한 나머지 역시 PC기반 온라인게임 타이틀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 일본 PC게임산업의 현주소. 아키하바라는 이미 캐릭터산업 및 모에 산업(예쁘고 귀여운 것을 애호하는 문화)과 긴밀하게 연결된 미소녀 게임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하고 있었다.

미소녀매장이 있는 지하로 내려가는 입구에는 미소녀게임 출시일과 관련 정보를 알려주는 낯뜨거운 홍보 전단지가 빼곡하게 벽을 채운다. 입구 근처에서 서성거리는 나를 수상쩍게 바라보는 사람들. 사실 미소녀매장 앞에 (호기심 가득한 눈을 반짝거리며) 여자가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들은 충분히 불편해 보였다.

 ▲ 입구에는 매장 안에서는 사진촬영을 할 수 없다는 경고문고가 있다

▲ 게임, 공략집, 피규어로 이어지는 게임의 ‘천국’

난데 없는 미소녀게임 매장 방문(모모 기자의 퀘스트를 위해!)으로 심란해진(?) 마음을 달래기 위해 대형 가전제품 매장인 ‘요도바시 카메라’의 게임매장을 방문했다. 비가 오는 중에도 게임패키지를 사러 나온 사람들 중에는 어린 게이머들보다 정장을 말쑥하게 차려 입은 직장인이나 대학생으로 보이는 젊은 층이 더 눈에 띈다.

 

마침 인기 고양이캐릭터 ‘토로’의 새로운 PSP게임인 ‘어디에서라도 함께! 렛츠 학교’가 발매된 직후라 게임 소프트웨어가 토로파우치와 함께 매장의 ‘명당자리’에 진열되어 있었다.

일본의 게임은 비디오게임이든 PC, 온라인게임이든 항상 공략집과 함께 나온다. 소매상 한 쪽에는 각 게임브랜드 별로 공략집 서고가 따로 마련되어 있다. 게임 소프트웨어를 사면서 자연스럽게 공략집도 같이 사는 문화. 우리나라 게이머들 중에서도 일본어 공략집과 게임 플레이를 오가며 시나브로 일본어를 배운 이들이 적지 않다.

북적거리는 비디오게임 매장에 반해 PC게임 매장은 ‘삼국지 11’과 한국 온라인게임 패키지뿐. 미소녀게임을 제외하고 한국과 마찬가지로 ‘전멸’한 일본 PC게임시장에 현재 온라인게임이 새롭게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 한국 온라인게임의 본격적인 열도 상륙작전

한반도를 삼킨 한국 온라인게임은 이제 본격적인 열도 상륙작전을 앞두고 있다. 과거 ‘라그나로크 열풍’이라고 불러도 좋았을 만한 일본인들의 온라인게임 애호는 보다 대중적으로 자리잡았고, 한국 기업들도 현지법인을 통해 직접 행동에 나섰다.

 ▲ NHN저팬에서 브리핑한 일본 온라인게임 시장, 2004년을 기점으로 시장이 급격히 성장하고 있다

현재, 일본에 진출한 한국 온라인게임 업체들의 전략은 다양하다. 특히 아바타 기반의 커뮤니티, 캐주얼게임 서비스로 ‘대중화’ 전략을 펼치고 있는 NHN저팬과 충성도 높은 게이머들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한빛유비쿼터스엔터테인먼트(HUE)가 대표적이다.

NHN저팬 모리카와 아키라 이사에 따르면 한게임저팬의 목표는 온라인의 ‘텔레비전’이 되는 것. 게임, 아바타, 커뮤니티 컨텐츠를 전달하는 엔터테인먼트의 장(場)이 되겠다는 전략이다. 남녀노소 다양한 유저층을 포섭할 수 있는 대중적인 캐주얼게임이나 보드게임을 서비스하고 있다.

 ▲ "사무실은 다 똑같아" 한국 내 NHN 본사와 몹시 비슷한 일본NHN 사무실 풍경

 ▲ 사무실 내 음료수 자동판매기만큼은, '자판기천국'답게 다채로운 선택이 가능하다

‘그라나도 에스파다’의 대형 업데이트 및 상용화를 준비 중인 HUE는 충성도 높은 일본 유저들을 기반으로 잡겠다고 말한다. 눈높이가 높아진 코어 유저층을 상대, 단계적으로 시장을 확대하겠다는 것.

특히, HUE 송진호 이사는 일본 온라인게임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지만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2004년 160여개가 공개되던 온라인게임이 2005년 314개가 공개되는 등, 하루에 한 개씩 새로운 온라인게임이 나오면서 ‘코피 터지게’ 경쟁하는 상황. 그는 단순히 많은 게임을 서비스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며 ‘퀄러티 높은 게임’과 ‘치밀한 전략’만이 성공의 지름길이라고 강조했다.

▲ "온라인의 TV 되겠다" NHN저팬 모리카와 이사

▲ "코어유저부터 잡는다" HUE 송진호 이사

반도에서 시작해 열도로 넘어간 온라인게임 열풍. 전반적으로 사양이 낮은 컴퓨터와 콘솔중심의 게임문화 등 변화는 느리지만, 그 파급효과는 누구도 짐작할 수 없다.

▲ 일본취재 결론: 네모난 상자에 ‘행복’을 담아라

많은 사람들이 ‘일본’하면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도시락, 만화, 오락, 게임, 그리고 비디오게임의 대명사인 닌텐도와 수퍼마리오.

수퍼마리오에 등장하는 ‘물음표상자’처럼 깜짝 놀랄 즐거움을 상자 속에 감춰두고 있는 나라, 일본. 거대한 선물상자 같은 동경 시내는 깨끗했고, 환상적인 볼거리와 쇼핑거리로 가득했다.

▲ 각양각색 도시락이 눈에 띄는 편의점 진열대

▲ 즐거움을 캡슐에! 가챠퐁의 뿌리칠 수 없는 마력

그렇게 2박 3일의 짧은 취재기간 동안 내가 느낀 일본은 작은 상자에 ‘행복’과 ‘즐거움’을 담아내기 위해 노력하는 나라라는 사실이다. 작은 성냥갑 같은 집에서 살면서, 네모난 도시락에 담긴 음식을 먹고, 네모난 책과 게임에 열광하는 소박한 사람들. 그들은 경쟁적으로 상자에 ‘맛’을 담고, ‘재미’를 담는다. 심지어 ‘죽음’마저도 상자에 담아 집안과 마을에 보관한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상자와 함께 일생을 살아가는 일본을 돌아보며 기자 또한 그들이 만들었던 게임의 의미를 다시 찾을 수 있었다. 오래된 수퍼마리오를 꺼내 벽돌을 깨고 물음표 상자를 두드리고 싶은 기분이다. 판도라의 상자 같은 그 안에서는 어떤 행복이 튀어나올까? 잠이 오지 않는 일본의 밤이 깊어간다.

▲ 그 날밤, 이코블루는 꿈 속에서 무한 수퍼마리오 플레이를 했다나~ 어쨌다나~

▲ 일본 취재 보너스! 일본 메이드 촬영기

“부르셨나요? 주인님!” 빡빡한 일본 취재일정으로 시름에 잠긴 기자 앞에 어디선가 상냥한 얼굴의 메이드가 나타났다. 아키하바라 시내에서 메이드 복장의 일본 아가씨들이 카페 홍보 전단을 나눠주고 있던 것. 조심스럽게 다가가 사진을 찍어도 괜찮겠냐고 물어보았다.

▲ 상냥하지만, 깍쨍이같은 메이드 카페 아가씨 "사진 좀 찍게 해주세요, 네에~"

그러나 잇따라 만난 세 명의 미소녀 메이드들은 모두 사진촬영은 사양하며 메이드카페 홍보 전단만 손에 쥐어준다. 사진 찍고 싶으면 여기 와서 돈 내고 하라는 걸까? 이렇게 돌아가면 얼굴을 들 수 없다. 조심스럽게 카메라를 들었다.

이건 나를 위한 게 아냐, 메카 독자들을 위한 것이야. 영혼은 무간지옥행 급행열차를 탄다.   

▲ 첫눈에 반해버린 깜찍한 일본 꼬마아가씨

▲ 사요나라,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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