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육군 전체의 기준이라 불리는 레인저는 미군의 수많은 특수부대의 기반이 되는 부대이다. 현대로 접어들어서는 경보병부대로 활동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미국이 개입하는 분쟁지역에 제일 먼저 투입되는 신속전개부대로의 임무를 주로 수행한다. 이제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화려하게 장식했던 레인저를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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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레인저의 역사 레인저는 미군에서 가장 오랜 전통을 자랑하는 부대로 일반적으로 미국의 독립전쟁 당시에 로버트 로져스에 의해 처음 창설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레인저’라는 명칭과 그 고유의 전술은 이미 1670년대 신대륙에 이주한 이주민들과 인디언들과의 전쟁에서 벤자민 처치에 의해서 사용되었다.
하지만 실질적인 레인저라는 부대의 개념은 1756년 로버트 로져스에 의해서 확립되었다. 신대륙에서 벌어진 프랑스와 영국간의 전쟁에서 프랑스가 신대륙의 원주민인 인디언들을 정찰병으로 활용함에 따라 뉴헴프셔 출신의 로버트 로져스는 이주민들로 구성된 9개의 중대를 편성했다. 이들은 비록 인디언의 문화와는 거리가 멀었지만 척박한 신대륙에 이주한 이래 인디언들과 다를 바없는 열악한 환경에 적응해왔기 때문에 그들 모두가 훌륭한 전투재원이었다. 따라서 로버트 로져스는 그들을 가장 훌륭한 전투 부대로 만드는데 집중했다.
미국의 남북전쟁당시 남군측의 존 S. 모스비 대령은 1862년 북군의 후방에 대한 정찰 임무를 위해서 3인의 정찰팀을 구성했으며 1865년까지 총 8개의 레인저 중대가 창설되었다. 모스비는 레인저의 뛰어난 정찰 능력을 활용해서 경비가 허술한 후방의 한 지점을 찾아낸 후 한번에 20-50명정도로 구성한 소규모 레인저 팀으로 기습을 가하는 작전을 주로 사용했는데, 이 때문에 북군은 남군과의 전쟁과는 별도로 백여개 이상의 후방 지역까지도 경비를 해야만 했다. 남군의 모스비의 레인저와 맞먹는 활약을 보인 레인저 부대로 북군의 민스 레인저를 들 수 있다. 이들은 롱스트릿 장군의 탄약수송 열차를 탈취하기도 했으며 모스비 대령의 레인저 부대와 교전을 벌여 그들 중 일부를 포로로 잡기도 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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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멀티플레이가 지원되지 않는 싱글플레이 전용의 게임이었기 때문에 후에 나온 '레인보우 식스'와 '델타포스'에게 '원조'의 자리를 내줄 수밖에 없었고 지금은 이 게임을 기억하는 사람들도 그다지 많지가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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