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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고] “등급 심의” 정말 너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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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게임업계 관계자의 자유투고이므로 게임메카의 편집방침과는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요즘 온라인 게임시장은 NC 소프트의 온라인 게임 리니지의 심의를 놓고 촉각을 곤두세웠었다. 리니지 심의 결과에 따라 온라인 게임 시장의 판도 변화는 더 이상 이야기 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물론 NC 자체적으로도 사활이 걸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것이다. 주가도 20만원대에서 10만원선으로 하락해 있으며 주가 총액 면에서도 1조원가량이었던 것이 현재 5천억 원 선으로 내려가 있었다. 결국 리지니의 심의는 15세 이상으로 결말을 맺었고 주가도 이제 조금씩 회복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리니지 심의 과정을 지켜보며 아주 중요한 문제를 놓치고 있다. 본인은 그것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다.

여러분들은 가끔 외국 광고들을 접했을 때, 정말 기막힌 아이디어의 광고들을 접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클리오(Clio) 광고대상이나 칸느 국제 광고 대상에서 수상한 작품들은 TV광고 연출자 출신이었던 본인이 보아도 그 신선함은 충격으로 다가오곤 했다. 그 때마다 정말 아쉬운 점이 있다. 그 점은 ‘심의’ 라는 것이다. 국내의 많은 지적 재산의 창작을 행하는 많은 분들이 이 ‘심의’ 라는 거대한 벽 앞에 가로 막혀 창작의 범위를 좁혀가고 있다.

몇 년 전에 상영되었던 장 선우 감독의 `나쁜 영화`를 기억하는가? 본인은 그 영화를 여러 번 보았다. 헌데 마음이 씁쓸했던 것은 미성년자 관람 불가라는 사실이었다.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던지려는 메시지는 “지금 네 친구들이 이렇게 바르지 않고, 힘든 생활을 하고 있어. 이런 친구들을 잡아 줄 수 있는 사람들은 선생님도 아니고 부모님도 아닌, 바로 너희들이야”라는 것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래서 장선우 감독은 15세 이상 관람가로 계속 심의 신청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심의 위원들은 영화 속의 이런 행동들이 청소년들에게 나쁜 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미성년자 관람 불가 판정을 내렸다. 영화는 감독의 의도했던 것과는 너무도 크게 빗나가 버린 것이다.

음악계를 보자. 박상민, 김종서 등등 국내외 여러 가수들이 창작의 고통을 이겨가며 만든 곡들을 심의 위원들은 “미풍양속을 해친다” “노골적인 성 묘사” “반사회적이다” “혐오감을 준다” 등의 이유를 내세워 가위질을 하거나 세상의 평가 자체도 받을 수 없게 만들어버리고 있다. 광고쪽도 마찬가지다. TV 광고에서 만 13세 미만의 어린이가 제품명이나 제품과 직접적인 관련이 되는 멘트를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아는가? 왜? 어린이가 상업적인 면에 휩쓸리게 할 수 없어서… 술 광고는 밤 10시 이후에만 가능하다. 그것도 알코올 %의 기준이 있다. 왜? 그 전에는 청소년이 술 광고를 보고 술을 마실 수 있다는 사실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광고계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아이디어를 떠올리기 전에 심의기준이라는 잣대를 대어볼 수밖에 없는 것이다.

피가 빨간색이면 18세 이상, 다른 색이면 전체 관람가 판정이 내려지기 일쑤인 게임쪽 이야기도 마찬가지다. 조금만 폭력적이어도 상당한 문제가 된다. 게임업계에 종사하는 많은 분들은 기획 문제는 접어두고서라도 멘트 한마디, 그래픽 표현 하나하나에 심의라는 기준에 맞춰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 지면을 이용하는 만화와 여러 서적들도 더 이상 말할 필요가 없다. 이 모든 분야를 점검하는 심의 위원분들의 노고가 신기할 따름이다.

현재 사전 심의를 두고 여론은 찬성과 철폐로 나누어져 있다. 찬성하는 부류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현재 우리 사회는 사후 심의를 하기에 국민들이 성숙되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곧잘 한다. 하지만 전 세계에서 이렇게 정부의 적극적인 주도로 사전 심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나라 밖에 없다. 바꾸어 말해 우리나라 국민들이 전 세계에서 가장 성숙도가 떨어지는 국민들로 이해해야한다는 말인가? 대한민국의 국민의 성숙도가 어느 수준에 다다라야 민간자율심의와 사후 심의를 적용할 생각인가? 어디 한번 그 이야기를 구체적으로 듣고 싶다.

현재 사회를 이끌고 있는 기성세대들은 국가에서 만들어진 사람들이다. 정부의 누구나 똑 같은 교육, 전혀 개성을 살리지 않고 천편일률적인 교육을 받고 자란 인물들이다. 그래서 전 세계적으로 보면, 유독 우리나라 사람들은 특별한 인재가 없다. 한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보이는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교포 2세이거나 어렸을 때 외국으로 건너가서 공부하고 창작을 했던 사람들이다.

왜 우리 정부는 이런 고민을 하지 않는 것일까? 21세기는 지식산업이 선도하게 될 것이라고 떠들고 관계기관에서는 지식산업에 대해서 여러 투자를 모색하면서 궁극적으로 지식을 만드는 사람의 목을 죄는지 모르겠다. 본인 역시 창작활동을 하는 사람이다. 창작하는 사람들을 대표하여 본인은 이야기하고 싶다. 여러 창작자들이 끝없는 고통을 통해 만들어내는 창작물은 절대로 당신들, 즉 심의 위원들에게 심의를 받기 위해 만드는 것이 아니다. 물론 당신들은 세상에 알려지기 위한 하나의 과정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다.

심의 위원들이 얼마나 전지전능한 능력을 지니고 있는지 몰라도 우리 4천만 국민들의 눈과 귀를 대신한다는 것은 절대 있을 수도 없는 일이며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다. 다른 사람들이 고통 속에서 만든 작품에 대해서 내가 스스로 좋고 나쁨을 판단해야지 심의 위원들이 내 귀와 눈을 대신해서 “이런 내용은 보면 안돼. 이런 이야기는 우리 국민이 들으면 안돼”라고 평가한다는 것은 창작자를 비롯해 우리 대한민국 국민들을 너무 무시하는 처사이다.

우리나라의 가장 대법인 헌법에서 보장하듯 창작의 자유와 국민들의 볼 권리와 알 권리를 단지 몇몇 심의 의원들이 가로 막지 않았으면 한다. 그리고 이런 사전심의 법률을 만든 정부는 그 자신이 여러 창작자들을 제한하여 국가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있다는 사실을 과연 알고는 있는지 걱정된다.

많은 창작활동을 하는 사람들은 단지 자신의 작품을 많은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보여줘 국민에 의해 평가받고 싶을 따름이다.

현 사운드 디자인 컴퍼니 ‘무사이(Musai)’ 프로듀서 이인욱

이인욱 PD는?
10년간 광고계의 프로듀서로 활동하며 깜짝이소다, 파파이스, 815 등 200여편의 광고를 제작, 소비자가 뽑은 좋은 광고상을 수상하는 등 영상/사운드 분야의 오랜 경력을 가지고 있다. 현재는 게임 사운드 디자인 회사인 무사이를 설립하여 던전시즈, 결전 2, 에이지 오브 미쏠로지 등 다양한 작품의 현지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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