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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딩크와 23인의 태극전사가 우리네 세상에 남기고 간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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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꿈처럼 느껴졌던 격정의 6월, 한달이 쥐도 새도 모르게 지나갔다. 축구를 좋아하건 싫어하건 간에 대한민국 국민의 대부분이 월드컵에 빠져있던 것은 사실이고 이 성대한 잔치가 막을 내리려는 지금 모두들 마치 좋은 꿈을 꾸다가 갑자기 깨어난 듯한 허탈한 기분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단체행사(?)라는 것에 별다른 재미를 붙이지 못하고 있던 필자 역시 시청 앞 광장에서 머리에 태극기를 두르고 버스 위에까지 올라갔던 기억을 되살려보면 정말이지 6월에 있었던 월드컵의 열기는 꿈이라는 말 밖에 달리 표현할 단어가 없는 듯 하다. 이제는 다시 현실로 돌아와야 할 시점이지만 나를 비롯한 주위의 많은 사람은 아직 흐뭇하면서도 아쉬운 표정을 지우지 못하며 얼마 지나지도 않은 그때를 그리워하는 얼굴들이다.

놓고 있던 일을 다시 추스르고 일상을 정리해나가는 과정에서 히딩크와 23인의 태극전사라는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들이 우리네 세상에 남기고 간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뉴스를 비롯한 각종 언론매체에서 지겹도록 듣고 또 들은 이야기였지만 이들에 대한 여담은 아직도 우리들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하고 때문에 필자 역시 지금 관련된 컬럼을 쓰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들이 남긴 ‘준비와 자신감’이라는 단어가 이처럼 각인된 의미로 다가온 적이 없었기에 언제가 되던 언급할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어느 분야인들 아니겠냐만은 그들은 우리나라가 전반적으로 침체의 길을 걷고 있는 게임 제작사에 가장 큰 메시지를 던졌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해답을 제공해 준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보면 히딩크와 그의 전사들은 천운을 타고 난 것이 분명하다. 월드컵 자국 개최라는 유리한 고지를 발판 삼아 평가전 때부터 승승장구하여 국민의 폭발적인 반응을 일으킨 것도 그렇고 시기적절한 시기에 시기적절한 영웅이 탄생할 수밖에 없었던 꿈같은 한달이었다.

어쨌든 그들은 겸손과 자신감의 차이에 명확한 구분을 지어주고 꿈의 레이스를 펼쳐왔다. 이는 그동안 우리가 자신에게 너무 겸손했고 또 필요 없는 부분에 쓸 데 없이 오만을 부려왔다는 점을 상기시켜주는 부분이다. 너무 겸손했던 부분은 실력이 부족해 해외 게임개발사의 뒤를 따라가지 못한다는 지레짐작의 몸짓이었고 오만을 부린 부분은 우물 안의 개구리식으로 국내개발사들과 경쟁을 벌여왔던 온라인 게임의 협소한 시장을 뜻하는 것이다. 실력이 부족하다는 짐작 아래 평가전을 미뤄왔던 과거의 국가 대표팀과 만들어도 안 팔린다고 장담하며 시도조차 해보지 않는 제작사들의 자세가 다를 바가 무엇일까?

물론 월드컵 이전부터 저조했던 국내 축구를 폄하하던 관람객과 언론처럼 만들어지지도 않은 게임을 비하하며 편견을 가지고 개발사를 바라보는 게이머들의 자세에도 문제가 있었다. 어떠한 부분을 따져보아도 국내 개발자들의 실력은 외국 인원에 부족할 부분이 없다는 점은분명하다. 단지 이들을 이끌어 줄 카리스마 넘치는 리더가 부족하고 화제가 되는 요소만을 쫓는 냄비 근성이 문제가 될 뿐, 그렇다고 해서 개발자들에게 파워 트레이닝을 통해 체력 훈련을 하라는 이야기를 할 순 없겠지만 어쨌든 해외 유수의 개발진에 비해 우리네 실력이 부족하지 않다는 점은 국제무대에서도 많은 화제가 되고 있는 국산 기대작품을 통해서도 증명되고 있는 사실이다.

그리고 우린 잠시 착각에 빠져있던 오만한 생각을 씻어내려야 한다. 인프라가 잘 구축된 인터넷 환경에 맞춰 적절한 타이밍에 터진 작품이 과대평가되고 있는 국내 온라인 게임의 발전방향은 짐짓 약체와 평가전을 겨뤄오며 승리에 도취된 축구대표팀과 다를 바 없는 위험한 현상으로 느껴진다. 현재 국내에는 유럽권의 프리미어리그나 세리에A의 클럽팀처럼 국가대표급의 해외 온라인 게임이 상륙을 기다리고 있다. 물론 이들의 플레이 스타일이 국내 게이머의 성향에 들어맞을지는 의문이지만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동시접속자만을 내세우며 최고의 온라인 게임이라 부르짖는 국내 게임시장에 커다란 파장을 미칠 것은 분명하다.

국내에서 자급자족만으로 현실을 타개해나가기엔 게임 시장이 너무나 방대하고 복잡하게 얽힌 현실이다.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배우자. 월드컵이 열리기전 히딩크가 한마디씩 발표한 호언장담이 때때로는 거만한 말로 들리기도 했겠지만 이러한 일들을 추진할 수 있는 능력은 내뱉은 말에 대한 책임감에서 쏟아진다는 점을 알아두고 자신 있는 목소리로 우리네 실력을 자랑하자. 세계 정상급을 자랑하는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과 1인당 PC 보유율은 월드컵 자국 유치에 못지않은 커다란 이점이 되고 있는 부분이기도 하다.

언젠가는 그렇게 되리라 확신한다. 게임계의 월드컵 E3 시장에서, 대한민국의 게임과 깃발이 휘날리며 모든 사람이 주목하는 그런 시대가 오게 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보다 과감한 결단과 주위의 압력에도 굴하지 않는 줏대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바로 그 부분이 히딩크와 23인의 전사가 게임계에 남긴 커다란 교훈이라고 생각한다.

꿈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축구대표팀의 거룩한 도전에 경의를 표하며, 그리고 이를 발판삼아 게임도 세계 4강으로 도약하길 기원하며 잠시 후에 펼쳐질 한국 대 터키전을 열렬히 응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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